재위 1197∼1204. 이름은 왕탁(王晫), 초명은 왕민(王旼), 자는 지화(至華). 인종(仁宗)의 다섯째 아들이며 명종(明宗)의 동모제이고, 비(妃)는 강릉공(江陵公) 왕온(王溫)의 딸인 선정태후(宣靖太后)이다. 평량공(平凉公)에 봉해진 뒤 최충헌(崔忠獻) 형제가 명종을 폐하고 왕으로 추대하여 대관전(大觀殿)에서 즉위하였다.
1198년 산천비보도감(山川裨補都監)을 두었고, 관서(關西) 민가의 안대(安碓: 방앗간을 차림)를 금하였다. 그 해 사노(私奴) 만적(萬積)의 난이 일어난 것을 비롯하여 이듬해에는 명주(溟州: 지금의 강원도 강릉)·동경(東京: 지금의 경상북도 경주), 뒤이어 진주(晉州)·전주·합주(陜州: 지금의 경상남도 합천) 등지에서 민란이 계속 일어났다.
1199년에 최충헌이 문무관의 전주(銓注: 인사행정)를 도맡아 행하였는데, 이로부터 모든 실권은 최충헌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해 수양장도감(輸養帳都監)과 오가도감(五家都監)을 두었다. 1202년에 탐라(耽羅: 지금의 제주도)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소부소감(少府少監) 장윤문(張允文)과 중랑장(中郎將) 이당적(李唐積)을 안무사(安撫使)로 보내어 평정하였다. 1204년 등창이 심하여 태자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시호는 정효(靖孝)이며, 능은 양릉(陽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