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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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개념
16세기 종교개혁 이후천주교에서 초인간적 존재의 계시를 신앙과 이성으로 연구하는 분야의 학문. 개신교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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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6세기 종교개혁 이후천주교에서 초인간적 존재의 계시를 신앙과 이성으로 연구하는 분야의 학문. 개신교신학.
내용

로마 가톨릭의 신학이 실천적이며 성직자 중심의 성례전적 신학이고 동방 정교회의 신학이 사변적이며 신비적이라고 한다면, 개신교 신학은 말씀을 중심으로 한 십자가의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개신교 신학은 루터파 신학과 칼뱅의 사상을 계승하는 개혁파 신학에서 발전해 온 것이다. 이 두 신학의 공통점은 ‘성서만’ ‘믿음만’ ‘은총만’을 강조하는 것이다. 여기에 근거하여 신학의 중심적 주제인 신과 인간과의 관계를 규명한다.

17∼18세기에 개신교 신학은 독일에서 경건주의운동, 영국에서 웨슬리운동, 미국에서의 대각성운동으로 나타난 복음주의 신학이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19세기에는 칸트의 비판철학, 합리주의 사고, 계몽주의, 낭만주의 등의 영향을 받아 슐라이어마허의 감정의 신학, 알브레흐트 리출의 도덕적 가치의 신학, 에른스트 트뢸치의 과학적 종교사의 신학 등으로 발전해 갔다.

19세기는 개신교 역사에서 양적으로 팽창한 선교의 세기였을 뿐 아니라 사상의 지적인 생기와 방향을 재정립하는 세기였다. 19세기를 대표하는 개신교 신학의 새로운 흐름은 넓은 의미에서 자유주의 신학이었다.

성서비판학이 발달한 것도 19세기였다. 그러나 20세기가 되면서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의 부정적인 요소가 신정통주의 신학에 의해서 극복이 된다. 그 중심 인물이 바르트와 브루너 등이다.

신학은 교회를 봉사하는 학문이고 교회는 사회(세상)를 봉사하는 것이 그 사명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개신교 신학은, 특히 제2차세계대전 이후 시대의 흐름과 함께 남미에서는 해방신학, 아프리카에서는 흑인신학, 아시아에서는 물소신학 등 소위 제3세계의 신학이 창출되었다.

그리고 사변적이며 관념적인 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신 죽음의 신학, 성숙한 시대에 복음의 세속적 해석을 주장한 세속화 신학, 각 민족 또는 지역의 토착문화에 의한 복음 해석과 선교를 위한 토착신학 등이 주장되었다.

한국에서의 개신교 신학은 1885년 선교사의 입국 후 15년이 지난 1900년부터 시작되었으며, 성서신학과 조직신학의 문제가 일반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잡지를 중심으로 한국 개신교 신학사를 시대구분 한다면, ① 한국 신학의 태동기(1900∼1915):『신학월보(神學月報)』시대, ② 한국 신학의 발아기(1916∼1927):『신생명(新生命)』시대, ③ 한국 신학의 정초기(1928∼1939):『신학세계(神學世界)』·『신학지남(神學指南)』시대, ④ 한국 신학의 혼란기(1940∼1956):『십자군(十字軍)』시대, ⑤ 한국 신학의 개화기(1957∼1972):『기독교사상(基督敎思想)』시대, ⑥ 한국 신학의 전개기(1973∼):『신학사상(神學思想)』시대로 나눌 수 있다.

또 다른 차원으로 구분한다면, ① 한국의 전통사상에서 기독교의 수용과 해석의 시기(1784∼1900), ② 선교사 신학에 의해 지배받던 한국 신학의 바빌론 포로기(1901∼1933), ③ 보수와 진보주의 신학의 갈등과 투쟁기(1934∼1959), ④ 한국 토양에서 주체적인 한국 신학을 형성하려는 해산의 고통기(1960∼1972), ⑤ 한국의 문화, 역사 현실에서 한국 신학의 전개기(1973∼)로 나눌 수 있다.

초기 한국 개신교 신학연구사에서 최병헌(崔炳憲)의 문화대화적 토착신학은 주목할 만하다. 그의 주된 학문적 관심은 기독교의 진리를 타종교와의 비교, 관계에서 규명하려는 데 있었다.

1907년에 출판한 『셩산유람긔(聖山遊覽記)』(1912년에는 ‘聖山明鏡’으로 제목을 고쳤음)에서 유·불·선과 기독교와의 대화라는 형식으로 전통 종교와 기독교의 만남에 대한 문제를 해명하려 하였다.

그는 타종교에 대하여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고 대화를 통한 변증법적 긍정과 부정에 의한 창조적인 종교신학을 수립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한국에 온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이른바 ‘청교도적 율법주의 신학’ 또는 교리의 문자적 해석을 강조하는 점에서 ‘교리문자주의 신학’의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성서의 고등비평적 연구를 반대하고 축자영감설에 근거한 성서 문자주의 신학을 주장하였다.

이와 같은 신학적 입장을 미국의 근본주의 신학이라고 하는데, 이 입장의 한국인 대표자가 박형룡(朴亨龍)이다. 그는 『기독교근대신학난제선평(基督敎近代神學難題選評)』(1935)에서 모든 기독교 근대 신학사상을 근본주의 신학의 입장에서 부정적으로 비판하였다.

이러한 보수주의적 정통주의 신학에 대해서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 신학이 김재준(金在俊)으로 대표되는 한국 진보주의 신학이다.

그는 1930년부터 구약의 예언자 연구를 통하여 역사의식의 중요성을 인식하였고(1937년에 『십자군』 발간), 1970년에는 『제3일』을 통하여 한국 교회의 주체적 자의식을 강조하면서 죽음을 넘어 희망과 부활을 보는 역사 참여적 진보주의 신학을 형성하였다.

한국 진보주의 신학 계열은 보수정통주의 신학 계열의 부정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세계 신학의 흐름과 호흡을 같이하면서 1960년대에 문화대화적 토착신학을 재형성하였다.

윤성범(尹聖範)의 「환인·환웅·환검은 곧 하나님이다」(『思想界』, 1963)라는 논문은 본격적인 신학논쟁을 일으켰으며, 유동식(柳東植)은 기독교와 샤머니즘과의 관계를, 변선환(邊鮮煥)은 기독교와 불교와의 관계를 다루면서 한국의 전통적인 문화적 맥락 속에서 기독교사상을 재해석하려고 하였다.

1960∼1970년대의 경제개발에 의한 도시화·산업화의 급격한 사회적 변화 속에서 신 죽음의 신학, 세속화 신학, 하나님의 신교신학 등을 수용 전개시켰다.

그래서 신은 ‘문제의 해결사’도 아니며, 인간의 필요에 응하는 ‘실용적 가설’도 아니고 ‘임기응변책’도 아니라는 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하게 되었고, 성숙한 세대에서의 기독교의 비종교화를 주장하게 되었다.

또한 교회(교파) 선교에 대한 반성으로 신이 주체가 되어 인간 삶의 전 영역에 그리스도가 증거되고 평화가 확립되는 선교신학이 강조되었다.

한국 진보주의 신학 계열에서 가장 한국적인 신학으로 창출된 신학이 1970년대 후반에 태동된 ‘민중신학’이다. 이 신학은 전세계적으로 한국 신학을 대표했다.

성서신학의 입장에서 김정준(金正俊)·안병무(安炳茂), 조직신학의 입장에서 서남동(徐南同)·서광선(徐洸善)·김용복(金容福), 교회사의 입장에서 주재용(朱在鏞), 윤리학의 입장에서 현영학(玄永學) 등에 의해 전개되었다. 이 신학은 제2세대의 젊은 신학자들에 의해 계승 발전되고 있다.

한국의 개신교 신학은 초월적 신 중심주의적이며 하향적 계시 중심적인 정통보수주의 신학 계열과 성육신한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 중심적인 진보주의 신학 계열, 그리고 오순절 성령의 역사를 강조하는 성령주의 신학 계열이 있다.

그러나 한국 개신교 신학은 서구의 전통적 신학을 하나의 신학으로 참고하면서 우리의 정치·경제·사회 현실을 삶의 자리로 하여 과거 문화전통과의 만남에서 신학적 주제들을 재조명, 재해석하는 것을 앞으로의 과제로 삼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그리스도교 신학사』(주재용, 한국기독교성서회, 1998)
『한국신학의 광맥』(류동식, 전망사, 1982)
『민중과 한국신학』(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신학연구위원회 편, 한국신학연구소, 1982)
『한국적 신학』(윤성범, 선명문화사, 1972)
「한국종교와 한국신학」(『유동식박사 고희기념 논문집』, 한국신학연구소,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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