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의 지도층에 불만을 품은 홍진(洪震)·유동열(柳東說)·유진동(劉振東)·안원생(安原生) 등이 일부 조선민족혁명당원(朝鮮民族革命黨員) 등과 조직하였다. 조직은 주석단제(主席團制)를 채택하였으며, 주석단이 당의 최고기관이었고 홍진·유동열, 그리고 김붕준(金朋濬)이 주석이 되었다.
그 아래 4명의 상무위원에는 김원서(金元敍)·안원생·유진동·신기언(申基彦)이 당선되었고, 조직부·선전부·재정부·비서부의 4부 부장은 상무위원이 겸임하였다.
당원 수는 20명 안팎으로 이 당은 설립 초부터 귀국할 때까지 짧은 기간 동안 존속하였기 때문에 당세 확장에는 별진전이 없었다. 이 당의 조직동기는 창립선언에 잘 나타나 있다.
“본 당은 전민(全民)이 공동으로 마땅히 앞으로 하여야 할 임무의 집단행동을 수행하는 데 있으며, 같은 사상이나 같은 주의, 혹은 어떠한 계급의 정치단체는 결코 아니며 정권을 욕망하는 정당도 아니며, 민족을 구하고 맹국(盟國)을 광복하고 민주를 실천하는 애국주의의 결사(結社)”라고 밝히고 있다. 이 당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할 일을 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당의 조직구호로 내세웠다.
따라서 이 당의 조직준비 기간 중, ① 모든 힘으로 국내민중을 급속히 조직하고 또한 발동하여 전면적으로 기의(起義)하게 하고 유격전쟁을 연합군과 상호합작한다. ② 각지에 산재하여 있는 무장역량을 적극적으로 확대, 공고히 하며 적중에서 압박받고 있는 백만 무장동포들의 반정(反正)을 쟁취하도록 강대한 작전무대를 편성한다.
③ 동포들에게 호소하여 모두가 수시로 지역에 따라 적의 시설물을 파괴하고 적정(敵情)을 살피며 적에 대하여 파업·태업으로 불합작운동을 전개한다. ④ 신속히 재난과 빈고(貧苦)의 동포를 구제하는 운동을 조직하고 또한 발동한다.
⑤ 최단기간 내에 적당한 지점에서 국내외의 민주영수(民主領袖)들을 초청하여 독립운동자대표대회를 개최하고, 절박한 모든 문제를 해결하며, 또한 때가 되면 정권을 회수할 필요한 조처를 한다는 다섯 가지의 구체적인 임무를 설정하였다.
이 당은 대내로 임시의정원과 임시정부를 개혁하자는 주장이 있었으므로, 해외의 독립운동자대표대회를 소집하는 책략을 채택하였다. 이에 따라 임시의정원은 어쩔 수 없이 각 당 통일회의를 거행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대외적으로 이 당은 적후활동(敵後活動)의 공작을 특히 중시하였는데, 이 계획은 중국군사기관의 환영을 받았기 이 때문에 당의 경비 일부를 중국군통국(中國軍統局)으로부터 받았다는 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