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군 ()

인문지리
지명
광복 당시 함경남도 중남부에 있었던 군.
정의
광복 당시 함경남도 중남부에 있었던 군.
개관

동쪽으로는 북청군과 홍원군, 서북쪽으로는 장진군, 남쪽으로는 함주군, 북쪽으로는 풍산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7°23′∼127°58′, 북위 40°02′∼40°44′에 위치하며, 면적 2,379㎢, 인구 8만 8451명(1943년 현재)이다. 8개 면 132개 이로 되어 있으며, 군청 소재지는 신흥면 흥경리이다.

자연환경

함경산맥의 능선이 군의 서쪽으로 뻗고, 부전령산맥이 군의 중앙부를 동서로 뻗어 있어 고산준령이 중첩한 내륙의 산악 지대이다. 부전령산맥은 부전령을 분수령으로 하여 사면(斜面)의 남쪽은 성천강(成川江) 상류의 저지대, 사면의 북쪽은 개마고원의 남단인 부전고원으로 양분된다.

이 일대의 대표적인 산으로는 금패령(禁牌嶺, 1,676m)·백산(白山, 2,379m)·차일봉(遮日峰, 2,506m)·유린산(有麟山, 1,925m)·수침산(水砧山, 1,938m)·용암산(龍巖山, 2,100m)·옥련산(玉蓮山, 2,164m)·부전령(赴戰嶺, 1,445m) 등이 있다.

이 밖에 서고천면 중흥리 큰골에 있는 관음방(觀音坊)과 성천강변 백사장에 큰 바위 일우암(一遇巖)이 있으며, 천불산(千佛山, 1,455m) 계곡에 백악폭포, 영고면 고대산(高大山)에 삼부연(三斧淵)이 있다.

동부와 북부의 산악 지대에서 발원하는 고산천(高山川)·대동천(大洞川)·도동천(道洞川)·우상천(右上川) 등의 크고 작은 여러 하천들은, 금패령에서 발원하여 군의 중앙을 남류하는 성천강에 합쳐져 함주군을 지나 동해로 들어간다. 이들 하천 유역에 협소한 평지가 형성되었고, 성천강 유역은 이 군에서는 가장 큰 평야로서 농경과 거주의 중심 지대가 된다.

한편, 부전령에서 발원하는 하천들은 모두 북쪽으로 흘러 부전강(赴戰江)이 되고 이어 장진강(長津江)에 합류한다. 지질은 시생대(始生代) 화강암과 편마암이다.

고위도이고 내륙 지방이므로 뚜렷한 대륙성 기후를 나타내며 한서의 차가 심하고, 또한 남쪽의 평야 지대와 북쪽 고원 지대의 기온은 큰 차이를 보인다.

연평균 기온은 평야 지대 10.3℃, 고원 지대 2.5℃, 1월 평균 기온은 평야 지대 -6.1℃, 고원 지대 -17.0℃, 8월평균 기온은 평야 지대 24.4℃, 고원 지대 18.0℃이며, 연 강수량은 863㎜이다.

역사

[고 대]

이 군은 일제강점기 초기에 함경남도에 신설된 군이다. 본래 부전고원에서 발원하여 함흥평야와 함흥군을 거쳐 동해로 흘러 들어가는 성천강의 상류를 수상(水上), 하류를 수하(水下)라고 불렀는데, 신흥군의 중심지는 수상이다.

수상의 역사를 더듬어 보면, 서기전 1세기 전후에 옥저에 속하여 있다가 56년(태조왕 4) 고구려에 복속되었고, 244년(동천왕 18)에는 위장 관구검(毌丘儉)의 침공으로 국내성이 함락되고 위나라 군사가 계속 추격해오자, 동천왕은 강계―장진―황초령을 지나 멀리 동해안의 남옥저 방면 매구(買溝:지금의 함경남도 문천)로 피난하였으므로 이 지방은 한때 직접 전화를 입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삼국이 정립하여 쟁패를 거듭하고 있을 때, 553년(진흥왕 14)에 신라는 한강 유역을 점령하고 그 여세를 몰아 세력을 함경남도에까지 뻗쳐 진흥왕순수비의 하나인 황초령비를 지금의 함주군 하기천면 지흥리에 세우고, 또 마운령비를 이원군 동면 사동에 있는 마운령에 세웠으므로, 신라의 영토가 지금의 함주군과 이천군 지역까지 미쳤던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때 수상 지방은 신라 영토에 편입되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통일신라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건국된 발해가 남쪽으로 평안도와 함경도의 대부분을 차지하여 지금의 영흥 부근에서 신라와 접경하고 있었으므로 당시 수상은 발해에 속하여 있었을 것이다.

이때 남경용원부, 즉 지금의 북청군 부근에 살고 있던 여진족은 점점 더 남하하여 영흥·안변까지 와서 흩어져 살며 변경을 노략질하는 일이 많았다.

[고 려]

태조는 개국 후 동북경 방면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920년(태조 3)에 유금필(庾黔弼)을 골암진(鶻巖鎭)에 파견하여 북변을 회유 혹은 토벌함으로써 안변·영흥 방면이 다시 고려 영토에 편입되었다.

그리하여 969년(광종 20)에 화주와 장평진(長平鎭:지금의 영흥 지방)에 성을 쌓고, 이보다 4년 뒤에는 장평진과 박평진(博平鎭) 및 고주(高州)에 각각 성을 쌓아 영흥·함흥 방면의 방비를 강화하였다.

덕종 때 거란과 여진에 대한 항구적인 방어선으로 이른바 천리장성이 구축되었다. 뒤에 여진의 완안부(完顔部) 세력이 대거 남하하여 숙종 때 추장 우야소(烏雅束)가 함흥평야 일대의 여진 부락을 공략함으로써 이곳 여진 부락의 귀속 문제를 둘러싸고 고려는 우야소와 정면으로 충돌하게 되었다.

이때 윤관(尹瓘)이 함흥평야를 탈환하고 함주를 비롯하여 영주·웅주·길주 등지에 성을 쌓았는데, 9성 중의 하나인 영주성지(英州城址)가 지금의 가평면에 있다.

원의 간섭기에는 잠시 이 지역이 쌍성총관부의 통치를 받게 되었으나, 1356년(공민왕 5)에 수복하고, 뒤에 함주에 지주사를 두었다가 이어 만호부로 고쳐 영(營)을 설치하였다. 1369년에 목(牧)으로 승격하였다.

[조 선]

1416년(태종 16)함흥부로 승격시키고, 화주로부터 도관찰사영을 옮겨 함길도의 수부로 삼았다. 이 군의 중심지인 수상은 본래 독립된 군현이 아니고 함흥부의 행정구역에 불과하였다.

그래서 따로 이 지역에 행정관리가 주재한 일은 없었다. 다만 말단 행정조직인 사(社:뒤에는 面)가 함흥부의 통제하에 있었을 뿐이다. 따라서, 이 지방의 행정 및 군사 일반은 모두 함흥부의 지시에 따랐으며, 도윤(都尹:뒤의 執綱, 面長)-이정(里正, 혹은 里長)-통수(統首)를 거쳐 백성에게 전달되었다.

사는 한 지역을 대표하는 기관이기는 하지만 일종의 자치기관이어서 중의에 따라 도윤을 뽑으며 수령이 임명하도록 되어 있었다. 조선 시대의 인물로는 동고천사(東古川社)에서 출생하여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만호를 지낸 유응수(柳應秀)가 있다.

그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웠으며, 정유재란 때에는 영남방어사로 참전하여 울산 부근의 화원(花院)에서 전사하였다. 또, 1837년(헌종 3) 상원천면에서 출생한 이제마(李濟馬)는 사상의학(四象醫學)의 창시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근 대]

일제가 신흥군을 신설한 이유는 함흥군의 지역이 너무 넓어서 행정구역을 재편할 필요가 있었고, 또 수상 지방의 풍부한 수자원과 관광자원을 효과적으로 개발하기 위함이었다.

부전고원을 흘러 장진강과 합류하는 부전강을 동산면 한대리에서 막아 부전호를 만들고, 부전호의 물을 터널을 통하여 부전령 쪽으로 역류시켜서 성천강에 흘러 들어가게 하여 발전을 하였다.

1929년에 부전강전기주식회가 준공되었으며, 총발전량 약 20만㎾에 달하는 대규모의 발전소가 가동되기 시작하였다. 한편, 1920년 12월에 함흥에서 신흥에 이르는 철도가 부설되었고, 1930년 1월에는 신흥에서 부전호반에 이르는 철도가 완성되었다.

이와 같이 부전호의 풍부한 발전 및 관광자원 개발로 종전의 불모 지대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 인구의 급격한 증가를 가져왔다. 1918년의 호구는 6,416호, 3만 8654명이었으나, 18년 후인 1936년의 호구는 1만 5685호, 9만 4154명이었다.

근대의 인물로는 가평사(加平社)의 유유(劉惟)를 들 수 있다. 그는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을사오적을 처형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상소를 올렸으며, 《대한매일신보》에 〈고충가하 孤忠可賀〉라는 제목으로 상소문을 게재하였다.

1919년 3·1운동 당시에는 3월 4일에 가평면 보통학교에서 집결하여 원평장으로 행진하면서 만세시위를 벌였다. 그 뒤 읍내 여러 곳에서 시위가 벌어져 많은 사람이 체포되기도 하였다.

유물·유적

선사 시대 유적으로는 하원천면 반석리에 고인돌이 있으며, 영고면 흥경리의 토축, 타원형 고분과 당하리의 석실 고분 등이 있다.

성곽지로는 신흥면에서 함흥쪽으로 12㎞ 지점의 성천강 동쪽 옛 가평사에 자리잡고 있는 영주성지를 비롯하여 이 성지에서 서북으로 4㎞ 지점 원평사와의 경계되는 곳에 장성지(長城址)가 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영고면 부전리 부전령 아래에도 둘레 220m의 석성이 있으며, 신흥면 중흥리에도 석성지가 있다. 그리고 함흥과 경계를 이루는 성천강을 횡단하여 함관령 부근에 이르는, 28㎞나 되는 석축성곽이 있다.

이 밖에 하원천면 흥경리·신풍리·서양리·축전리 등에 석축으로 된 방형의 봉수지가 산꼭대기에 있으며, 또한 상원천면 문성리·중양리·원상리, 서고천면 도상리, 원평면 우하리 등의 산꼭대기에도 봉수지가 있다.

불교 유적으로는 상원천면 흥동리 사지를 비롯하여 구중리 사지, 영고면 부전리 사지, 흥복리 사지 등 많은 사지들이 분포하고 있으며, 그 밖에 원평면 천불산의 개심사(開心寺) 및 대승암(大乘菴)·견불암(見佛菴)·벽송암(碧松菴)·관음암(觀音菴)·은적사(隱跡寺) 등 현존하는 사찰과 암자가 천불산과 신흥면 기린산에 유존하고 있다.

사원으로는 목조(穆祖)의 왕자들인 6대군(大君)을 배향한 선원사(璿源祠) 및 안풍대군사우(安豐大君祠宇)가 있다. 또, 가평면 능리에는 목조와 그 비의 묘인 덕안릉(德安陵)이 있는데, 원래 함경북도 경흥에 있던 것을 1410년(태종 10)에 이곳으로 옮겼다. 또, 신흥읍에는 임진왜란 때 의병대장 유응수와 그 가족을 기리기 위한 육충사비(六忠祠碑)가 있다.

교육·문화

이 군은 조선 시대까지 함흥의 수상 지방에 지나지 않아서 독자적인 향교는 없었고 유림들은 함흥향교에 다녔다. 서원으로는 1563년(명종 18)에 창건된 문회서원(文會書院)과 1667년(현종 8)에 창건된 운전서원(雲田書院)이 있었다.

그 밖에 서고천면 길촌의 정씨 문중의 사숙이었던 일서재(一書齋)는 문중 자제와 인근의 학동들이 수업하였으며, 근대에는 길명의숙(吉明義塾)으로 개명하여 신교육을 담당하였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906년 원풍면 전동에 박장관(朴長觀)·염하구(廉河龜)·최영인(崔永仁)·박춘길(朴春吉) 등이 설립한 전동학교(典洞學校)가 시초였으나 1913년 폐교되었고, 1910년 원풍면 상동에 상동학교(相洞學校)가 개교하였으나 1915년 폐교되었다.

1916년 이근화(李瑾和)·유탁하(劉鐸夏)·염하구 등이 설립한 원평학교(元平學校)가 원평면 풍성리에 있었으나 1930년 폐교되고 천불산공립초등학교로 변경되었다.

그 밖에 1911년부터 1926년 사이에 동성(東成)·서흥(西興)·영고(永高)·동흥(東興)·원흥(元興)·가평(加平)·대성(大成)·고산(高山) 등의 사립학교가 잇따라 개교하였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폐교되거나 공립초등학교로 전환되었다.

1926년 이후 박영호·송종우 등이 일으킨 전국적인 민중계몽운동의 일환으로 이 군에서도 각 마을에 야학이 개설되었고, 80여 개의 야학이 모여 ‘신흥군야학연합회’를 조직하여 야학연합대운동회·연극·강연회 등을 개최하였다.

1926년 신흥면 동상리에 이 군의 사립학교 중 마지막으로 동성학교(東成學校)가 개교하였고, 원평면 남리 살구골에 1925년경 야학으로 발족하여 성장한 행동학원(杏洞學院)이 있었다.

194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6개교가 있으며, 그 밖에 2년제 간이학교 5개교와 공민학교 1개교가 있다. 종교 상황으로는 불교 사찰 7개, 천도교 종리원 1개, 개신교 교회 12개가 있다.

이 고장의 설화로는 험준한 고개와 강물을 배경으로 한 전설 및 조선태조의 이야기 등이 전하며, 천불산·부전고원·백악폭포·관음방·삼부연·일우암 등의 형성 또는 연기설화 등도 널리 유포되어 있다.

〈금패령과 직소(直沼)에 얽힌 이야기〉는 옛날 헌 도포와 떨어진 갓으로 변장을 하고 고을 인정과 민정을 살피던 어떤 암행어사와 여인 간의 이야기이다.

암행어사가 북쪽 변방을 살피고 남으로 내려오던 중 하늘에 닿을듯한 험준한 고개에 이르러 간신히 고갯마루까지는 다다랐으나 기갈이 심하고 허기가 져서 쓰러졌다.

때마침 산 아래 마을에서 산나물을 캐러 산 위까지 올라왔던 젊은 여자가 이 광경을 보았다. 죽어 가는 사람을 그냥 둘 수 없다는 마음에서 자기 젖을 짜서 그 나그네의 목숨을 구하였다.

이에 감격한 어사는 관청에 나아가 목숨을 건져 준 은혜를 갚으려고 그 여인의 소원에 따라 자기가 길을 잃고 정신을 잃었던 산 어귀에 있는 연못 직소에 송어(松魚) 채어책(採魚柵)을 만들어 주고 많은 비단과 돈도 주었다.

어사가 쓰러져 죽을 뻔한 고개는 사람이 상할 고개라 하여 ‘금패령’이라는, 통행을 금지하는 푯말을 세웠다. 그 뒤로 이 고개를 금패령이라 부르게 되었다.

〈개명골과 염산군(塩山君)에 관한 이야기〉는 이성계(李成桂)와 소금장수에 얽힌 전설이다. 옛날에 어떤 소금장수가 산골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다가 커다란 노송 밑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는데 한밤중에 산신들이 서로 주고받는 이야기를 우연히 엿들었다. 그곳에서 백일기도를 마치고 다음날 하산하는 이성계에게 장차 고려 왕위를 계승하도록 옥황상제에게 주청하자는 내용이었다.

소금장수는 날이 밝기를 기다려 이성계를 찾아가 같이 하산하면서 산신들의 이야기를 전하니 이성계는 비밀에 부치고 발설하지 말 것과 일이 그 내용대로 된다면 크게 보답하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얼마 되지 않아 이성계가 왕이 되자 전날 약속대로 소금장수를 찾아 염산군에 봉하였고 ‘원노’의 땅을 주었으며, 죽은 뒤에는 왕릉 규모로 크게 묘를 써 주었다.

이 염산군묘는 현재 원평면 행동에 있고, 이성계가 기도하던 심산은 이성계골에서, 왕의 이름을 무엄하게 부를 수 없다 하여 마을 사람들이 개명골로 바꾸었는데 현재 신흥면 흥덕리에 있다. 염산군은 개국공신 연사종(延嗣宗)의 다른 이름이라는 설이 있는데 확실히 알 수 없으며, 연사종의 유적이 이 부근에 같이 있다.

이 고장의 민요로는 대체로 함흥이나 북청 등과 비슷한 것이 전해 오는데, 〈애원성〉·〈물방아 찧기가 나는 싫어〉·〈삼삼이노래〉·〈성주풀이〉·〈삼베타령〉·〈호미타령〉·〈집짓기노래〉·〈각씨노래〉 등이 있다.

그중 특별한 것으로 〈삼베타령〉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노다가 죽어도 원이라는/이 삼을 삼다가 죽으면 나는 어이하리오/흥 응 응 에헤야/세월아 봄철아 가지를 말아라/알뜰한 여자가 다 늙어 간다/흥 응 응 에헤야/모란봉 고지에는 안개가 도는데/우리네 여자들은 삼삼기나 합시다/흥 응 응 에헤야.”

이 고장의 민속놀이는 함흥·북청 등과 비슷하나 비교적 여유있는 유한층은 골패·바둑·장기·매사냥·낚시 등을 즐겼으며, 일반 서민은 윷놀이·장기·연날리기·씨름·자치기·돈치기 등을 하였다. 부녀자들은 널뛰기·그네 등을 즐겼고, 명절 때에는 마을 처녀들이 방 안에서 노래와 춤을 즐기기도 하였다.

동제로는 제신이 다양하여 여제(厲祭)·별기도제(別祈禱祭) 등을 지낸다. 이 밖에 산신제·성황제와 시기존신(時氣尊神)·잡신(雜神)을 제사하는 행위 등이 산발적으로 행하여진다.

여제는 춘추로 3월과 9월 두 차례 제관이 미리 정한 날 일몰 시에 지낸다. 마을 북방 약 300㎡ 평지에 신당을 지어 놓고 제단으로 삼는데, 큰 것은 너비 5m, 높이 2.5m의 기와집이며 종이로 지패(紙牌)를 써 놓고 지낸다.

신목으로 수령 100년가량의 소나무와 느티나무가 서 있고 제에 쓰는 육류는 마을 공동으로 장만하며, 그 밖의 음식은 각 가정에서 준비하여 제물로 진설한다. 예전에는 제물의 다과와 값에 따라서 진설의 차이가 있었으나 근년에 와서는 차이가 없어졌다.

제에서는 축문으로 “성황신은 무사귀신(無祀鬼神)인데 전사자, 맹수·독충에 죽은 자, 혹은 산적을 만나 찔려 죽은 자, 수재나 화재, 굶고 얼어서 죽은 자, 목을 매어 죽은 자 등 그 죽음이 편치 못한 원혼·고혼들이 어디 의지할 데가 없으므로 여기 음식을 차려 놓고 동민이 모여 제사를 지내 오니 많이 드시고 편히 잠드시어 우리 마을을 복되고 화평하게 하소서.”라는 내용을 고한다. 그 내용이 너무나 절실, 애통하여 귀신이 감읍할 만하다.

산업·교통

산악 지대로 되어 있어 밭농사를 주로 한다. 전체 경지면적은 2만 6799㏊로 경지율은 11.2%이며, 그중 논은 1,885㏊로 전체 경지면적의 7%에 불과하고, 밭이 2만 4914㏊로 약 93%를 차지한다.

남부의 평야 지대는 토지가 비교적 비옥하고 관개시설도 좋아 쌀·조·밀·콩·보리·과일 등이 골고루 산출되며, 북부 고원 지대는 귀리와 감자가 주요 농산물이고, 대마·옥수수·피·녹말 등도 생산된다.

화전에 의한 생산이 많은 것이 특징이며, 이 고장의 대마를 원료로 하여 생산되는 베는 함포(咸布)라고 불리는데, 서고천면의 길촌(吉村)배와 더불어 이 지방 특산물이다. 소·돼지·닭을 많이 사육하고 농가의 부업으로 양봉도 활발히 행하여진다.

전체 임야 면적은 약 1,100㎢이며, 수종은 한대림인 침엽수림이 가장 많다. 원목은 건축재·전주·침재·교량재 등으로 주로 사용되는데, 벌목된 재목들은 송흥선(松興線) 철도나 부전강을 통하여 운반된다.

광산자원으로는 금을 비롯하여 매장된 것은 많으나 실제 채굴 실적은 높지 않다. 천불동·명태동의 금광, 동상면의 사금광이 있으며, 가평면 장풍리의 함흥탄광에서 갈탄이 산출된다.

공업으로는 동상면 한대리에 1931년 완성된 부전강댐이 있다. 이 댐은 부전강을 높이 1,200m 지점에서 약 81m 높이의 둑을 쌓아 면적 24㎢, 둘레 80㎞의 저수지를 만들고, 수력발전소는 저수지 물을 백암산 밑의 터널을 통하여 역류시킨 뒤 동해 사면(東海斜面)의 성천강에 떨어뜨려 그 낙차를 이용하여 발전한다. 4개 발전소(1∼4호)의 총발전량은 약 20만㎾이며, 흥남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 송전되어 각종 공업의 원동력이 된다.

상업 활동은 주로 5일 정기장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3일과 8일의 신흥장(新興場), 1일과 6일의 가평장(加平場)·송흥장(松興場)·신풍장(新豐場)·원풍장(元豐場), 4일과 9일의 천불산장(千佛山場)·함지원장(咸地院場), 2일과 7일의 경흥장(慶興場)·도안장(道安場), 5일과 10일의 초리장(初里場) 등이 있다.

역사가 가장 오랜 시장은 원평장(元平場)과 초리장인데, 원평장은 천불산에 철도역이 생긴 뒤 천불산역으로 이전하여 천불산장으로 되었고, 초리장은 유서 깊은 전통을 계승하고 있으며, 특히 해마다 8월에 열리는 소시장은 인근 지방에도 알려져 성황을 이룬다. 주로 직물·잡화·가구·어염·땔감 등의 생필품과 가축류가 거래된다.

교통망으로는 신흥에서 성천강과 병행하여 함흥시에 이르는 34㎞의 2등도로와 북쪽으로 풍산·북청 방면에 통하는 7.5㎞의 2등도로가 있으며, 그 밖에 각 주요 마을에 이르는 등외도로가 있다. 관광도로로는 부전고원의 순환도로 50㎞와 한 대리∼장진군 간의 우회도로 49㎞가 있다.

철도는 함흥을 기점으로 하는 송흥선이 부전호반에 이른다. 그 도중에 고원 지대인 백암산 남단의 경사 35°의 약 1.5㎞에는 강삭 철도(鋼索鐵道, incline)라는 특수 장치가 가설된 철도가 있다.

수운으로는 송흥선의 최북단인 부전호반에서 부전강댐이 있는 한대리까지의 약 16㎞ 호수에 연락선이 정기적으로 운항된다.

원평면 신성리천불산 개심사에 있는 백악폭포(白岳瀑布)는 길다란 바위들이 석벽을 이루고 있는 위로 한 줄기의 푸른 물이 명주를 흩어놓은 것 같은 물무늬를 퉁기면서 쏟아져 내려오므로 일명 산주폭포(散珠瀑布)라고도 한다.

남구만은 〈십경도서 十景圖序〉에서 “그 소리는 질뢰(疾雷)가 산을 깨뜨리는 것 같고, 그 모양은 하늘의 은하수가 쏟아져 내려오는 것 같다.”고 하였으며, 주정(朱椗)의 시에서도 이 폭포의 절경이 묘사되고 있다.

읍·면

[가평면加平面]

군의 최남단에 위치한 면. 면적 84.83㎢, 인구 8,967명(1943년 현재). 면 소재지는 풍상리이다. 1910년 함흥군 동가평면과 서가평면을 통합하여 가평면이 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신흥군에 편입되었다.

남류하는 성천강의 중류 유역에 위치하며, 면의 동남부에 평야가 전개되고, 서북부에는 대암산(大巖山, 992m)을 비롯한 산줄기가 함주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보리를 비롯하여 조·감자·옥수수·콩·과일 등이 골고루 많이 생산된다. 장풍리의 함흥탄광에서 갈탄이 연 8,000여 톤 생산된다.

도로는 성천강을 따라 함흥∼신흥 간의 2등도로와 송흥선 철도가 면의 중앙을 남북으로 지난다. 문화재로는 능리에 이성계의 4대조인 목조와 그 비의 능인 덕안릉이 있다.

성천강 동쪽에 영주성지라고도 하는 가평고성지(加平古城址)가 있는데, 이는 1107년(예종 2)에 윤관이 축조한 9성 중의 하나라고 한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가 있다.

풍상(豐上)·능(陵)·동흥(東興)·중(中)·중상(中上)·중양(中陽)·흥남(興南)·화장(花藏)·상(上)·관수(觀水)·지동(芝洞)·장풍(長豐)·풍서(豐西) 등 13개 이가 있다.

[동상면東上面]

군의 최북단에 위치한 면. 면적 834.41㎢, 인구 2만 7537명(1943년 현재). 면 소재지는 원풍리이다. 본래 장진군 동장진(東長津)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신흥군에 편입되면서 동상면으로 개칭하였다.

이 면은 함경산맥과 부전령산맥이 교차되고 있어 전국에서 고도가 제일 높은 산악 지대이다. 면의 동부에는 차일봉·백산·옥련산 등이 풍산군과의 경계를 이루며,서쪽에는 소남산(小南山, 1,969m)·대남산(大南山, 1,989m)·수침산 등이 솟았고, 남쪽에는 백암산(白巖山, 1,741m), 중앙에는 용암산·누응산(樓應山, 1,628m)·내간산(內澗山, 1,530m)등이 있다. 따라서 면 전체가 1,200m 이상의 개마고원 남단인 부전고원에 해당하며, 면의 북쪽은 북류하는 부전강을 따라 지세가 낮다.

부전고원에는 부전호가 있으며, 고산식물 및 곤충류가 많고, 특히 내한성의 박달나무·자작나무·전나무·이깔나무 등의 원시림이 무성하다.

인구가 희박하고 조방적인 화전농업이 주로 행하여지며, 귀리·감자·옥수수·기장 등이 주요 농산물이고 특산물로는 녹말·대마 등이 있다.

축우 사육이 활발하며, 원시림에서 생산되는 지름 1m 이상의 거목은 전주·침목·건축재로 이용된다. 곳곳에 사금광이 있고, 부전강을 이용한 유로 변경식 댐이 한대리에 있다.

도로는 성천강을 따라 2등도로가 부전령을 넘어 면의 중앙을 지나며, 관광도로로서 부전 공원 회유 도로와 장진까지의 도로가 있다. 신흥∼부전호반 간의 개척 철도인 송흥선 철도가 면의 중앙을 관통하며 호수에는 정기 연락선이 있다. 특히, 백암산역의 남단면 35°의 급경사에는 강삭 철도가 가설되어 있다.

원풍리에 부처꽃[千屈菜]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4개교와 2년제 간이학교 2개교가 있다. 원풍(元豐)·신성(新成)·도안(道安)·광대(廣大)·달아(達阿)·연동(囦洞)·한대(漢垈) 등 7개 이가 있다.

[상원천면上元川面]

군의 동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185.08㎢, 인구 5,918명(1943년 현재). 면 소재지는 구중리이다. 본래 홍원군 상원천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신흥군에 편입되었다.

성천강이 면의 중앙을 서류하고, 남부에는 기린산 줄기가 면계를 이루며, 북부 경계에는 백시산과 명당봉의 고원이 자리잡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조·감자·옥수수 등이며, 특산물로는 대마가 생산되는데 올이 곧고 섬유가 강하고 광택이 좋아 이 대마로 짠 베는 함포라 불리며 품질이 우수하다.

임업으로 목재의 생산이 많으며, 소의 사육이 많아 매년 8월에 열리는 초리장의 소시장에서 많이 팔린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가 있다.

구중(舊中)·흥봉(興鳳)·문성(文成)·신풍(新豐)·신성(新成)·흥평(興坪)·구창(舊倉)·풍동(豐東)·원상(元上)·내동(內洞)·중흥(中興)·중양(中陽)·구하(舊下)·원풍(元豐)·풍상(豐上)·복흥(福興)·흥동(興東) 등 17개 이가 있다.

[서고천면西古川面]

군의 중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115.67㎢, 인구 5,521명(1943년 현재). 면 소재지는 창서리이다. 본래 함흥군 서고천면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신흥군에 편입되었다.

성천강이 면의 동쪽 경계를 이루며 흐르고, 면의 서쪽이 오봉을 비롯하여 천불산의 높은 산지이므로 서고동저(西高東低)의 경사를 보인다. 계곡과 경사지가 많아 밭농사가 활발하며, 면의 동부 하천 유역의 평야는 신흥면의 군청 소재지와 가까워 학교·시장·의료·교통 등의 문화시설을 함께 이용한다.

주요 농산물은 귀리·감자·옥수수·조·쌀·밀·콩 등이며, 길촌에서 나는 길촌배는 알은 작으나 껍질이 얇고 맛이 달며 섬유질이 적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수확량이 적다. 창서리에 부전강 수력제4발전소가 있어 약 1만 2000㎾의 전기를 생산한다.

송흥선 철도가 면의 동부를 남북으로 지나고 있으며, 명승지로는 중흥리에 소금강으로 불리는 관음방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가 있다.

창서(昌瑞)·삼상(三上)·길봉(吉峰)·동덕(東德)·도상(道上)·요중(蓼中)·중흥(中興)·신상(新上)·풍향(豐鄕)·신하(新下)·주양(周陽)·길흥(吉興)·길(吉)·기양(岐陽) 등 14개 이가 있다.

[신흥면新興面]

군의 중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180.45㎢, 인구 1만 715명(1943년 현재). 면 소재지는 흥경리이다. 본래 함흥군 상동고천면(上東古川面)과 하동고천면(下東古川面)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두 면을 통합하여 동고천면(東古川面)으로 하고 신흥군에 편입시켰으며, 1941년 신흥면으로 이름을 고쳤다.

면의 동부에 토끼령과 연봉(鳶峰, 1,164m), 남부에 적봉(積峰, 688m), 북부에 이봉(二峰, 1,464m)과 팔봉(八峰, 1,681m) 등이 있고, 중앙에는 기린산이 있어 북동부 지역은 대체로 지대가 높다.

서부의 면계에는 성천강이 남쪽으로 흐르고 있어 지대가 낮고 그 지류가 면의 중앙을 서류하여 이들 하천 유역에 곡저평야가 발달하였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조·밀·수수·보리·감자·과일 등이 산출되며, 여사리와 기린산에 금광이 있다.

도로는 성천강을 따라 함흥에 이르는 2등도로와 풍산·북청 방면의 2등도로가 있으며 송흥선 철도가 면의 서부를 남북으로 지난다.

흥경리에 있는 선원사는, 이성계가 왕위에 오른 뒤 4대조 이하를 추존(追尊)하고 그 아들들 18위를 18대군으로 추봉(追封)하여 향사한 곳으로, 근년에 와서는 9월에 제향하고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와 농업공민학교 1개교가 있다.

흥경(興京)·상(上)·중흥(中興)·중(中)·풍동(豐東)·여사(汝沙)·서흥(西興)·신정(新井)·흥평(興坪)·동상(東上)·풍양(豐陽)·이전(梨田)·신성(新成)·흥덕(興德)·동덕(東德)·풍덕(豐德)·인흥(仁興)·신중(新中)·신풍(新豐) 등 19개 이가 있다.

[영고면永高面]

군의 중부에 위치한 면. 면적 256.03㎢, 인구 1만 3179명(1943년 현재). 면 소재지는 흥경리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영천면(永川面)과 고산면(高山面)으로 되어 신흥군에 편입되었다가 1931년 두 면을 합하여 영고면으로 개편하였다.

면의 서북부는 1,700m 이상의 고산준령인 부전고원을 이루어 오봉·고대산(高大山, 1,768m)이 있고, 백암산·백역산(白亦山, 1,856m) 사이에 부전령이 걸쳐 있다. 면의 동남부는 성천강 상류인 고산천이 흐르면서 낮은 급경사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감자·귀리·옥수수 등이며, 광업으로는 구상리 등에서 흑연·형석·주석 등이 산출되고, 부전강수력제1·2·3발전소가 있어 약 20만㎾의 전기를 생산한다.

성천강을 따라 2등도로와 송흥선 철도가 면의 중앙을 남북으로 지나고 있다. 명승지로는 동흥역 남쪽 기린산 아래에 일우암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와 2년제 간이학교 2개교가 있다.

흥경(興慶)·흥동(興東)·흥복(興福)·복흥(福興)·중흥(中興)·부전(富田)·당하(塘荷)·송하(松下)·신풍(新豐)·인평(仁坪)·송흥(松興)·흥남(興南)·중(中)·신덕(新德)·구상(舊上)·서흥(西興)·경흥(慶興)·동평(東坪)·신평(新坪)·동흥(東興)·당복(塘福)·창평(昌坪)·연동(淵洞)·연흥(淵興) 등 24개 이가 있다.

[원평면元平面]

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166.57㎢, 인구 1만 145명(1943년 현재). 면 소재지는 풍서리이다. 본래 함흥군 동원평면(東元平面)과 서원평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두 면을 합하여 원평면으로 하고 신흥군에 속하게 되었다.

면의 동쪽에 있는 적봉과 서쪽에 있는 천불산 줄기와 마안산(馬鞍山, 1,189m)이 각각 함주군과의 경계를 이루고, 면의 중앙을 성천강이 남류하여 전체적으로 V자형 계곡을 이루고 있다.

평지가 적어 산지와 경사지를 이용한 밭농사가 활발하며, 주요 농산물은 조·콩·기장·옥수수·메밀·감자 등이다. 신성리에 금광과 동광이 있다.

성천강을 따라 송흥선 철도와 신흥∼함흥 간의 2등도로가 남북으로 관통하고 있다. 유적으로는 신성리 대바위골에 한말 의병들의 묘인 의병총(義兵塚)이 있으며, 원평장 부근에 임진왜란 당시 유응수·박중립(朴仲立)·정해택(鄭海澤) 등이 1,000여 명의 의병과 더불어 왜적을 대적하였던 원평고전장(元平古戰場)이 있다.

명승지로는 신성리 산 위에 사람이나 부처 모양을 한 돌이 수없이 서 있는 천불산이 있고 여기에 개심사가 있다. 천불산의 최고봉인 백악산 및 백악폭포는 주변경관이 아름답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교가 있다.

풍서(豐西)·풍상(豐上)·장상(長上)·장하(長下)·서상(西上)·오상(五上)·우상(右上)·우하(右下)·동상(東上)·흥덕(興德)·흥성(興成)·남(南)·남평(南坪)·중(中)·서(西)·풍동(豐東)·신성(新成)·최상(崔上)·남양(南陽)·풍남(豐南)·중상(中相)·신상(新上)·중양(中陽)·장전(長典) 등 24개 이가 있다.

[하원천면下元川面]

군의 동북단에 위치한 면. 면적 354.74㎢, 인구 6,747명(1943년 현재). 면 소재지는 신풍리이다. 본래 홍원군 하원천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신흥군에 편입되었다.

면의 동쪽에는 태백령(太白嶺, 1,143m), 남쪽에는 팔봉·중덕산(中德山, 1,379m)·연봉 등이 솟아 있고, 북쪽에는 명당봉(明堂峰, 1,809m)·금패령이 풍산군과 경계를 이루어, 3면이 고산준령으로 둘러싸인 산간벽지이다.

금패령에서 발원하여 남서쪽으로 흐르는 성천강을 따라서 계곡이 형성되어 있다. 성천강 최상류 분지이기 때문에 경사가 급한 산지이므로 밭농사와 임업을 주로 한다.

주요 농산물은 조·옥수수·감자 등이다. 특산물로는 대마가 있는데, 길차고 올이 곱고 섬유가 강하고 광택이 뛰어나서 이 대마로 짠 베는 함포라 하여 유명하다.

명태동에 금광이 있으며, 흥덕리에서는 전기석(電氣石)·백운모·흑운모 등이 산출된다. 도로는 함흥에서 풍산에 이르는 2등도로가 면의 중앙을 가로지르고 신풍리에서 북청에 이르는 3등도로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와 간이학교 1개교가 있다.

신풍(新豐)·반석(盤石)·서양(西陽)·송흥(松興)·축상(杻上)·축전(杻田)·흥덕(興德)·서하(西下)·대흥(大興)·당풍(塘豐)·문성(文城)·부흥(富興)·복거(福巨)·흥경(興慶) 등 14개 이가 있다.

광복 후 변천

1952년 12월 동상면은 부전군으로, 가평면·원평면 일부는 영광군으로 이관하고, 신흥면·서고천면·원평면·영고면·상원천면·하원천면의 면 단위를 폐지, 이 단위로 분할, 통폐합하여 군 행정구역을 개편하였다.

1954년 10월 부전군의 16개 이를 편입시켰으며, 1961년 3월에는 창서리의 일부가 신흥읍에 편입되었다. 1967년 10월 복거리가 폐지되면서 경흥리와 영웅리에 분리, 편입되었다.

1974년 8월 신흥리와 부흥리가 노동자구로 변경되었다. 함경남도 중부 내륙 지대에 위치하며, 동쪽은 덕성군, 서쪽은 장진군·영광군, 남쪽은 함흥시·홍원군, 북쪽은 부전군과 양강도 김형권군과 접하여 있다. 동경 127°22′∼127°58′, 북위 40°06′∼40°29′에 위치하며, 면적 약 1,192㎢, 인구 14만 4천여 명이다.

행정구역은 신흥읍과 신흥·부흥(富興)·발전(發電) 등 3개 노동자구, 이전(梨田)·흥복(興福)·원동(元洞)·중평(中坪)·서남(西南)·우상(右上)·창서(昌瑞)·대동(大同)·길봉(吉峰)·동흥(東興)·부연(富淵)·경흥(慶興)·영고(永古)·기린(麒麟)·상원천(上元川)·서곡(西谷)·동곡(東谷)·반석(盤石)·하원천(下元川)·축상(杻上)·영웅(英雄)·흥경(興慶) 등 22개 이로 되어 있다. 군 소재지는 신흥읍이다.

북부에는 부전령산맥, 남동부에는 함관령산맥, 동부에는 거두봉산맥이 뻗어 있어 성천강 유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이 산지로 되어 있다.

북부에는 명당봉(1,800m)·백역산(1,858m)·고대산(1,766m) 이 솟아 있고, 금패령(1,637m)·부전령(1,355m)·불개미령(1,657m) 등의 고개들이 있다. 동부에는 배재산(1,918m)·천사대봉(1,976m) 등이 있으며, 동남부에는 팔봉(1,682m)·솔개봉(1,164m) 이 솟아 있다.

성천강이 군의 중앙부를 북동∼남서 방향으로 흐르고 있으며, 지류인 서곡천·부흥천·동덕천·원천강 등 30여 개의 소하천이 흘러들고 있다.

기반암은 편마암·화강암·화강편마암 등이며, 토양은 갈색산림토 및 산악표백화갈색산림토가 우세하고, 낮은 지대에는 사양토가 분포되어 있다. 연평균 기온 22.4℃이며, 첫서리는 10월 18일경, 마감서리는 4월 20일경에 내리며, 연평균 강우량은 933㎜이다.

산림은 군 전체 면적의 85%로서, 주요 수종은 소나무·참나무·분비나무·가문비나무 등이고 피나무·잣나무·이깔나무·황철나무·사스레나무·가래나무·개암나무 등이 섞여 있다. 그 밖에 버들류를 비롯한 떨기나무·머루·다래·들쭉나무·도라지·고사리·만산·오미자·당귀 등 산과일과 산채, 약재 등이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특히 희귀 식물로 알려진 민눈양지꽃이 자라고 있으며, 천불산은 동물보호구역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농경지는 군 전체 면적의 약 10%, 그중 논이 25%, 밭은 55%이다. 주요 농산물은 옥수수·쌀·감자·담배 등인데, 신흥담배는 예로부터 유명하며 생산량도 도내 1위로서 영웅리·서곡리·증평리·시남리·원동리 일대에서 재배된다. 과수밭은 농경지의 11%로서, 주요 과일은 사과·배·포도·살구 등이다.

축산업은 신흥종축장·신흥종우장이 설치되어 소·양·토끼 등이 사육되고 있으며, 양잠업도 발달하여 도내에서 손꼽히는 누에고치 생산지로 알려져 있다. 임업은 풍부한 산림자원을 바탕으로 원목·조선용 목재·광산용 갱목 생산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군은 중요한 전력 생산 기지의 하나로서 발전노동자구, 경흥리, 동흥리, 길봉리에는 부전강을 역류, 유로 변경하여 20만 4030㎾ 규모의 전력을 생산하는 부전강발전소가 있다. 이 발전소는 제6호 발전소까지 건설되어 전력 생산을 늘리고 있으며, 동해 지구 화학공업을 비롯한 각 공장에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광업으로서는 연·아연·석탄·모리부텐 등이 채굴되고 있다. 공업은 식료·종이·직물·피복·도자기 등 소규모 지방 공장들이 있으며, 수지 공예품과 도자기는 이 지방 특산물로 알려져 있다.

신흥선(함흥∼신흥∼부천)은 주로 임산물 운반용 협궤도 철도로서 급경사인 송흥∼부전령 구간에는 강삭선이 부설되어 있다. 그 밖에 함흥과 부전군, 김형권군으로 통하는 도로가 있다.

명승지로는 천불산 관음방과 조선 시대 양사암이 명명했다는 일유함, 부전령 아래에 삼부연폭포가 있다. 유적으로는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쌓은 가평성터·장성터·부전령보루 등이 있다.

단군신화와 관련된 천불산에는 신라 시대 사찰인 개심사와 말사인 기린사·관음사·대승암·불정암·건불암 등이 현존하고 있다. 준원사·원충사·안풍대군사우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신흥고등학교·원흥고등학교 등이 있다. →부전군, 영광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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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고려사절요』
『태종실록』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관북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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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남도지』(함경도지편찬위원회, 1968)
『신흥군지』(신흥군지편찬위원회, 1969)
『이북5도30년사』(이북5도위원회, 1981)
『북한문화재실태와 현황』(문화공보부문화재관리국, 1985)
『인물의 고향』-북한편(중앙일보사, 1991)
『북한지지요람』(통일원, 1993)
집필자
노도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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