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익현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후기 내섬시제조, 오위도총부도총관 등을 역임한 문신. 서예가.
이칭
가회(可晦)
죽오(竹塢)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41년(인조 19)
사망 연도
1683년(숙종 9)
본관
청송(靑松)
주요 관직
부마|청평위(靑平尉)|내섬시제조|오위도총부도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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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내섬시제조, 오위도총부도총관 등을 역임한 문신. 서예가.
개설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가회(可晦), 호는 죽오(竹塢). 순천부사 심종침(沈宗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심설(沈偰)이고, 아버지는 영의정 심지원(沈之源)이다. 어머니는 부사 윤종지(尹宗之)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0세 때 효종의 부마로 뽑혔다. 1652년(효종 3)에 효종의 둘째 딸 숙명공주(淑明公主)에 장가들어 청평위(靑平尉)에 봉해졌다. 그뒤 궁중에 자주 출입하여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오위도총부도총관을 여러 차례 역임하였고, 만년에는 내섬시제조를 지냈다.

1666년(현종 7) 사은사로, 1674년과 1680년(숙종 6) 주청사로 세 차례에 걸쳐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 때 받은 금과 비단 등의 하사품을 모두 수행원들에게 나누어줌으로써 청렴하다는 칭송을 받았다. 서예에 뛰어나서 산릉지(山陵志)·옥책문(玉冊文)·교명(敎命)의 글을 많이 썼는데, 특히 촉체(蜀體)에 능하였다.

서예작품으로는 「우의정장유비(右議政張維碑)」(고양 소재), 「영의정이경여비(領議政李敬輿碑)」, 「경림군이정표(慶林君李淀表)」, 「인경왕후익릉표(仁敬王后翼陵表)」(고양소재), 『효종영릉표(孝宗寧陵表)』(여주 소재), 「좌승지송시철비(左承旨宋時喆碑)」 등이 있다.

참고문헌

『효종실록(孝宗實錄)』
『현종실록(顯宗實錄)』
『숙종실록(肅宗實錄)』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조선금석문총람(朝鮮金石文總覽)』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오세창, 계명구낙부,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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