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천일(千一), 호는 벽절(碧節) 또는 구송정(九松亭). 아버지는 종부시주부(宗簿寺主簿) 심학령(沈鶴齡)이며, 어머니는 진성 이씨(眞城李氏)로 어모장군(禦侮將軍) 이상(李祥)의 딸이다.
1582년(선조 15)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부친의 상을 당한 이후로는 벼슬길에 나갈 것을 단념하고, 집 뒤에 벽절정(碧節亭)을 지어놓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형도(趙亨道)·조동도(趙東道) 형제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적과 싸웠다.
1594년 체찰사 이원익(李元翼)이 심청의 전공을 상주하여 훈련원봉사에 제수되었으며, 주사산(朱砂山)에서 적병을 대파하였다. 1596년 다시 청송의 의병장으로 대구 팔공산에 들어가 경상도 각처의 의병장과 부시동맹(賦詩同盟)을 맺고 전투에 참가하여, 여러 차례 공을 세웠다. 이듬해 12월 도산(島山) 싸움에서 전사하였다.
경적(經籍)에 깊이 통하고 천문·역수(曆數)와 성리학에 정통했다고 한다. 저서로 『벽절유고』가 있는데, 『청기세고(靑己世稿)』에 합편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