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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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서예
유적
국가유산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쌍계사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건립된 승려 진감선사 혜소의 탑비.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河東 雙磎寺 眞鑑禪師塔碑)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국보(1962년 12월 20일 지정)
소재지
경남 하동군 화개면 쌍계사길 59, 쌍계사 (운수리)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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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쌍계사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건립된 승려 진감선사 혜소의 탑비.
내용

887년(진성여왕 1)에 건립되었다. 전체높이 3.63m, 비신높이 2.13m, 너비 1.035m, 두께 22.5㎝.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귀부(龜趺)와 이수(螭首) 및 탑신이 완전한 탑비로, 신라 말기에 나타나는 탑비 양식에 따라 귀두(龜頭)는 용두화(龍頭化)되었으며, 귀부의 등에는 6각의 귀갑문(龜甲文)이 크고 간편하게 조식되어 있다.

이수에는 보주를 다투는 반룡(蟠龍: 승천하지 아니한 용)이 힘차게 조각되었고, 이수 앞면 가운데에는 전액(篆額)이 양각되었으며, 그 위로 앙련판(仰蓮瓣) 위에 보주를 얹었다.

진감선사혜소(慧昭)는 최씨로 804년(애장왕 5) 세공사(歲貢使)의 배에 편승하여 당나라의 신감대사(神監大師)에 의하여 중이 되었고, 각지를 편력한 뒤 830년(흥덕왕 5) 귀국하여 역대왕들의 숭앙을 받다가 77세의 나이로 쌍계사에서 입적하였다.

그 뒤 3기(三紀)가 지난 885년(헌강왕 11) 왕은 진감선사대공영탑(眞鑑禪師大空靈塔)이라 시호를 추증하여 탑비를 세우도록 하였다. 비문을 짓고 쓴 이는 당대의 대표적 문인인 최치원(崔致遠)으로, 특히 최치원의 사산비명(四山碑銘)의 하나로 유명하다.

비면에는 건립연대를 알 수 있는 부분이 손상을 입었으나, 다행히 1725년 (영조 1)에 목판에 모각(摹刻: 그대로 본떠 새김)한 비문이 있어 887년임을 알 수 있다.

비문의 글씨는 자경 2㎝ 정도의 해서로 상하로 긴 짜임새를 하고 있으며, 붓의 자연스런 흐름을 살려 조형의 변화를 느끼게 한 신품(神品)이라 하겠다. 이수의 전액 또한 최치원의 글씨로 공간이나 자형에 구애받지 않는 신묘한 필치로 생동감이 넘친다.

참고문헌

『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
『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2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상
『한국금석문대계』4(조동원, 원광대학교출판국, 1985)
『국보』7 석조(정영호 편, 예경산업사, 1984)
『朝鮮金石攷』(葛城末治, 國書刊行會, 1974)
집필자
김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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