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시 ()

아산향교 명륜당 정측면
아산향교 명륜당 정측면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충청남도 서북부에 위치한 시.
정의
충청남도 서북부에 위치한 시.
개관

동쪽은 천안시, 서쪽은 당진시, 남쪽은 예산군과 공주시, 북쪽은 경기도 평택시, 서북쪽은 아산만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6°50′∼127°06′, 북위 36°39′∼36°55′에 위치한다. 면적은 542.16㎢이고, 인구는 29만 7737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2개 읍, 9개 면, 6개 행정동(19개 법정동), 398개 행정리(143개 법정리)가 있다. 시청은 충청남도 아산시 온천동에 있다.

자연환경

차령산맥이 시의 남부를 지나 높은 산지를 형성하는데, 이 산지는 오랜 침식을 견딘 잔구(殘丘)들로서 노년기 지형을 이룬다. 남부의 산지에는 광덕산(廣德山, 699m)·망경산(望京山, 600m)·봉수산(鳳首山, 534m)·설화산(雪華山, 441m)·배방산(排芳山, 361m) 등이 있으며, 북부에는 영인산(靈仁山, 364m)·고용산(高湧山, 294m)·연암산(燕巖山, 293m) 등이 있을 뿐이고 대부분이 화강암 침식으로 매우 낮아진 저산성 구릉이 발달하였다.

지대가 낮은 서북부에는 아산만이 내륙 깊이 만입해 있고, 아산만으로 흘러드는 삽교천과 안성천의 하구에 인공호수인 삽교호와 아산호가 있다. 곡교천(曲橋川)이 남쪽 산지에서 발원해 군의 중앙을 관통한 다음 북류해 아산만으로 흘러들고, 무한천(無限川)이 선장면과 예산군 신암면과의 경계를 따라 흘러 삽교천에 합류해 삽교호로 흘러 들어간다.

이 외에 둔포천(屯浦川)이 군의 북부 경계를 따라 서류해 아산호로 흘러든다. 이들 하천유역에 탕정평야 등의 넓은 퇴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기후는 여름과 겨울의 구분이 뚜렷한 대륙성 기후이다. 연평균 기온 12.5℃, 1월 평균기온 -1.9℃, 8월 평균기온 25.8℃이며, 연 강수량은 1,562.4㎜이다.

역사

구석기와 신석기 유적은 아직 발견된 적이 없지만, 가까운 당진 지방에서 신석기 유적이 많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아산만 지역에도 장차 신석기 유적지가 발견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청동기시대 유적으로는 둔포면 둔포리에서 석기와 토기, 백암리 석관묘에서 심발형토기(深鉢形土器)가 출토되었고, 신창면 남성리의 석관묘에서는 동검·방패형동기·민무늬토기·흑도 등의 유물이 다량 출토되었다.

지금의 아산시는 본래 백제의 탕정군(湯井郡)·아술현(迓述縣)·굴직현(屈直縣) 지역이었다. 백제의 탕정군은 신라 671년(문무왕 11)에 주(州)로 해 총관(摠管)을 두었고, 뒤에 주를 폐해 군으로 하였다. 아술현은 신라 경덕왕이 이름을 음봉현(陰峯縣 또는 陰岑縣)으로 고쳐 탕정군의 영현으로 했으며, 굴직현도 신라 경덕왕이 이름을 기량현(祈梁縣 또는 祁梁縣)으로 고쳐 탕정군의 영현으로 삼았다.

탕정군의 배방(排芳)은 백제 개로왕 때 지략을 겸비한 성배(成排)·성방(成芳) 형제의 이름을 따서 지은 지명이라고 한다. 백제의 유명한 충신 성충(成忠)이 그들의 후손이라고 하는 전설이 있다. 645년(선덕여왕 14)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건립했다는 염치면 신심사(神心寺, 일명 洗心寺)에 신심사 다층석탑이 있다.

지금의 아산은 고려시대에는 천안부의 영현(領縣)이었던 온수군(溫水郡)·아주(牙州)·신창현(新昌縣) 등이 있었던 지역이다. 온수군은 백제의 탕정군을 고려 초에 온수군으로 고쳐 1018년(현종 9) 천안부에 내속시켰고, 1172년(명종 2)에 감무(監務)를 두었으며 이 지역에 온천이 있었다.

아주는 신라의 음봉을 고려 초에 인주(仁州)라 했다가 995년(성종 14)에 자사(刺史)를 두고 1005년(목종 8)에 폐했으며, 1018년(현종 9)에 천안부에 내속했다가 뒤에 아주로 개칭하고 감무를 두었으며 별호(別號)를 영인(寧仁)이라 하였다.

신창현은 신라의 기량현(祈梁縣)을 고려 초에 신창현으로 고쳐 1018년(현종 9)에는 천안부에 내속시켰다. 1391년(공양왕 3) 신창현 장포(獐浦)에 성을 쌓고 부근 주현의 조세를 경창으로 운반하도록 함에 따라 만호(萬戶)를 설치해 감무를 겸하게 하였다.

1275년(고종 44) 몽골군이 직산을 침범했을 때 서산 사람 정인경(鄭仁卿)이 격퇴시켜 공을 세웠다. 고려 말 왜구가 침입해 노략질을 일삼았을 때 아산 지역도 공민왕 즉위 이후에만 10여 차례의 침입을 받아 피해가 컸다.

고려 말 조선 초의 명상(名相) 맹사성(孟思誠)이 이곳 출신인데 청백리로 유명하였다. 구주정(九柱亭)에는 황희(黃喜)·맹사성·허조(許稠) 등 3정승이 심었다는 괴목이 남아 있다.

지금의 아산 지역에는 온수현·신창현·아산현이 있었다. 온수현은 1414년(태종 14)에 태종이 온수군을 신창군과 합쳐 온창(溫昌)으로 했다가 1416년에 다시 분리시켜 온수현과 신창현으로 정비하였다. 1442년(세종 24) 세종의 온천 행행(行幸) 후 온수현을 온양(溫陽)으로 고치고 군으로 승격시켰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조선 초 온양의 호구는 343호에 1,516명이었다.

신창현은 1401년(태종 1)에 만호를 혁파하고 감무를 두었으며, 1414년(태종 14)에 온수를 합병해 온창으로 했다가 1416년에 다시 신창현으로 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조선 초 신창현의 호구는 338호에 1,555명이었다. 아산현은 1413년(태종 13)에 현감을 두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조선 초기 아산의 호구는 483호에 1,822명이었다.

이후 지금의 아산 지역을 1458년(세조 4)에 세조가 아산현을 온양·평택·신창에 나누어 소속시켰다가 1464년 아산현으로 복구시켰다. 1505년(연산군 11)에는 아산현이 경기도에 이속되었다가 중종 초에 충청도에 소속되었다. 세종 때 아산에는 공세관(貢稅官)이 전국 8개 수조처의 하나로 설치되었는데 이후 세조 때에는 전국 9조창(漕倉)의 하나였던 공세관창(貢稅官倉)을 설치해 인근 40개 고을의 조세를 운반하였다. 현재에도 인주면 공세리에 공세관창의 유지(遺址)와 석성이 남아 있다.

세종 때의 장영실(蔣英實)은 아산 출생의 관노(官奴)로서 우리나라 과학기술 분야에 큰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는 간의대(簡儀臺)를 세우고 동활자인 갑인자(甲寅字)를 제작하였다. 또한 김빈(金鑌)과 더불어 우리나라 최초의 물시계인 자격루(自擊漏)를 만들었으며, 측우기(測雨器)·천평일구(天平日晷)·앙부일구(仰釜日晷) 등을 만들었다.

임진왜란 때 나라의 운명을 지탱해 나간 민족의 영웅 이순신(李舜臣)은 서울 건천동에서 태어났지만, 선조들이 대대로 살아오던 고향은 염치면 백암리였다. 1704년(숙종 30) 이곳 유생들이 건의해, 1706년 이순신을 봉안한 사당을 세우고 ‘현충(顯忠)’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1866년(고종 3) 병인양요를 겪은 뒤, 흥선대원군이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서울 종로와 전국 각지에 세운 척화비 가운데 하나가 신창면에 있다. 둔포면 신촌에서 태어난 윤치호(尹致昊)는 조선 말의 정치가로 활약하였다.

1895년 홍주부 소속의 온양군·아산군·신창군으로 개편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온양·아산·신창 세 군을 통합해 아산군이라 하고 관하에 12개 면을 두었으며, 군청 소재지는 온양이었다. 1944년 10월 1일 온양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19년 3·1운동 때는 3월 11일 온양공립보통학교 학생 일동의 교내시위를 시작으로 4월 4일까지 7회의 만세시위를 벌여 시위군중이 약 5,000명에 이르렀는데 일본군이 3개 지역에 출동, 발포해 시위를 진압하였다.

1973년 7월 1일 탕정면 모종·권곡리를 온양읍에 편입했으며, 1983년 2월 15일에는 배방면 남리와 탕정면 신리, 신창면 점량·득산·실옥리 등 5개 리를 온양읍에 편입시켰다. 1986년 1월 온양읍이 시로 승격되어 아산군으로부터 분리되었다. 1990년 염치면이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95년 1월 1일 도농통합에 따라 아산군과 온양시가 통합되어 새로운 아산시가 되었다. 1997년 1월 1일 시청사를 온천1동 1626번지로 이전하였다. 2003년 9월 1일 아산시 동지역 행정 명칭을 온양1~6동으로 변경하였고, 2009년 5월 1일에 배방면이 배방읍으로 승격되었다.

유물·유적

이 지역에서 구석기·신석기 유적은 아직 발견된 적이 없으나 청동기시대의 유적·유물은 풍부하다. 신창면 남성리 석관묘에서 세형동검을 비롯한 최고급 청동기가 나왔고, 그 일대에는 무문토기 산포지가 있다.

선장면 궁평리에서는 청동기 일괄 유물이 나왔는데 석관묘 유적으로 추정되며, 둔포면 둔포리에서도 석관묘 유적이 조사되었다. 또 염치읍 백암리에서 청동기시대 토기가 발견되었고, 영인면 신봉리에서는 마제석기가 출토하였다. 영인면 신남리, 인주면 관암·도흥리에서는 무문토기 산포지가 조사되었다.

청동기시대의 무덤유적인 고인돌은 음봉면 월랑리에서 발견되었고, 선돌은 배방읍 북수리, 신창면 창암리에 분포하고 있다.

고분은 송악면 장강리, 신창면 황산리, 염치읍 동정리, 음봉면 신수·산정·삼거리, 영인면 신봉·신운리, 인주면 도흥리, 선장면 신동리 등지에서 발견되었는데, 백제시대의 석곽이 대부분이다.

관방유적으로는 영인면의 성내리 산성(城內里山城)·영산성(榮山城), 음봉면의 꾀꼴성[鶯里山城]·물앙성[水漢山城]·용와산성(龍臥山城)·연암산성(燕巖山城)·무명산성, 인주면의 금성리 산성(金城里山城), 탕정면의 호산리 산성(虎山里山城)·매곡리 산성, 염치읍의 백암리 산성(白巖里山城), 배방읍의 세교리 산성(細橋里山城), 신흥리의 배방산성(충청남도 기념물, 1988년 지정), 아산시의 성안말 산성·읍내리 산성·기산동 산성(岐山洞山城), 신창면 읍내리의 신창학성(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선장면의 군덕리 산성(君德里山城)이 있고, 음봉면 연암산에는 봉수유적이 있다.

인주면 공세리에는 아산 공세곶고지(충청남도 기념물, 1979년 지정)가 있다.

가마유적으로는 백자가마가 송악면 거산리·지루골·종곡리·수곡리·거산리 성골·거산리 당산매, 도고면 화산·덕암·오암·농은리, 음봉면 월랑·신수리, 배방읍 북수리, 인주면 냉정리에 분포하며, 송악면 마곡·유곡리에서는 분청사기 가마가 조사되었다.

기와가마는 영인면 성내리 쇠재, 염치읍 강청리에서 발견되었고, 야철지유적은 송악면 마곡·거산리, 배방읍 수철리, 도고면 덕암·화천리, 읍봉읍 신수리 큰숯골에 분포하고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신창면 인취사(仁翠寺), 염치읍 세심사(洗心寺), 송악면 봉곡사(鳳谷寺)·용담사(龍潭寺)·강당사(講堂寺)·용화사(龍華寺), 아산 오봉암(五峰庵)이 있으며, 절터로는 송악면 종곡리·절골사지·마곡리·송학리·강당리·동화리, 배방읍 회룡리·공수리·수철리·윤정리, 도고면 오암리·불당골·덕암리·시전리, 신창면 황산리, 탕정면 매곡리, 음봉읍 산동리·월랑리·쌍룡리, 선장면 삼봉암(三峰庵)·신동리·선창리, 둔포면 송용리·신항리, 영인면 동림사지(桐林寺址)·절골·아산리·관음사지·신현리·신운리·안골·고종산·쇠재, 인주면 금성리·운정암(雲精庵)·관암리·해암리, 염치읍 동정리·수암사지 등의 많은 절터가 있다.

또 송악면의 아산 평촌리 석조약사여래입상(보물, 1971년 지정), 아산리 보살입상, 용화사 석가여래입상, 관음사 석조여래불상(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영인 신현리 미륵불(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34호), 공세리 미륵불, 인취사 삼존불, 송암리 미륵불, 온천리 석불(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읍내동의 아산 읍내동 당간지주(보물, 1971년 지정), 아산리 오층석탑, 염치읍 산양리의 세심사 다층탑(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영인면 아산리의 관음사 석탑(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신창면 읍내리의 인취사 석탑(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여인면 아산리의 영인 오층석탑(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윤정사 오층석탑, 회룡리 삼층석탑, 오봉암 삼층석탑, 세심사 부도, 송악면 유곡리의 봉곡사 불화(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봉곡사 대웅전 및 고방(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93년 지정) 등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영인면 아산리의 아산향교(충청남도 기념물, 1997년 지정), 신창면 읍내리의 신창향교(충청남도 기념물, 1997년 지정), 읍내동의 온양향교(충청남도 기념물, 1997년 지정)가 있고 서원 터로는 인산(仁山)서원지·정퇴(靜退)서원지·도산(道山)서원지·금곡(金谷)서원지가 남아 있다. 사우유적으로는 조선 후기의 문신 홍만조(洪萬朝)를 모신 자은영당(自隱影堂)과 충무공 이순신을 모신 염치읍 백암리의 현충사가 있다.

읍봉면 삼거리에 아산 이충무공 묘(사적, 1963년 지정)가 있으며, 현충사에는 이순신 난중일기 및 서간첩 임진장초(국보, 1962년 지정)·이순신 유물 일괄(보물, 1963년 지정)이 전시되어 있다. 염치읍 백암리의 아산 이충무공 유허(사적, 1967년 지정), 영인면의 김옥균선생 유허(충청남도 기념물, 1976년 지정) 가 있다.

온천동의 영괴대(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신정비(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이충무공 사적비(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신창면 읍내리의 신창 척화비(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김육 비(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인주면 공세리의 삼도해운판관비(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가 있다.

관아 건물로는 아산현 관아가 남아 있으며 읍내동의 온주아문 및 동헌(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73년 지정), 영인면 아산리의 여민루(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73년 지정)가 있다.

배방읍 세교리의 기사계첩(보물, 1978년 지정), 염치읍 대동리의 홍가신 선생 교지(충청남도 유형문화재, 2011년 지정), 배방읍 중리의 창녕성씨 종중 문서(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9년 지정), 송악면 강당리의 외암선생문집 판각(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94년 지정) 등이 있다.

중리의 아산맹씨 행단(사적, 1963년 지정), 도고면 시전리의 아산 용궁댁(중요민속문화재, 1984년 지정), 송악면의 아산 외암마을 참판댁(중요민속문화재, 1984년 지정), 둔포면 신항리의 윤보선 전 대통령 생가(중요민속문화재, 1984년 지정), 둔포면 신항리의 윤일선 가옥(충청남도 민속자료, 1986년 지정)·윤제형 가옥(충청남도 민속자료, 1986년 지정)·아산 윤승구 가옥(충청남도 민속자료, 1990년 지정), 배방읍 중리의 전세 맹고불 유물(중요민속문화재, 1990년 지정), 송악면 외암리에 아산 외암마을 건재고택(중요민속자료, 1998년 지정)·아산 외암마을(중요민속문화재, 2000년 지정) 등이 있다.

아산 연엽주(충청남도 무형문화재, 1990년 지정)가 있다.

아산 공세리 성당(충청남도 기념물, 1998년 지정)이 있다.

아산시 온천동의 온양 어의정(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9년 지정) 등이 있다.

인주면 해암리의 형제송(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이 있다.

교육·문화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으로는 온양향교·아산향교·신창향교와 정퇴서원(靜退書院)·인산서원(仁山書院)·도산서원(道山書院) 등이 있었다. 온양향교는 조선 초기에 당시 온양읍 법곡리에 세웠는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던 것을 1610년(광해군 2)에 읍내동에 재건해 현재에 이른다.

아산향교는 영인면 아산리 동쪽 향교골에 창건했으나, 1575년(선조 8)에 아산현감으로 있던 토정 이지함이 현재의 영인면 아산리 일대로 이전하였다. 신창향교는 조선 숙종 때 건립했다고 하나 정확한 기록이 없으며, 1872년(고종 9)에 당시 현감인 왕경렬(王景烈)이 도고면의 진주사(震主寺)를 신창면 읍내리에 이전해 향교로 삼았다고 한다.

인산서원은 1610년에 염치면 서원리에, 정퇴서원은 1634년(인조 12)에 배방읍 중리 부근 정퇴동에, 그리고 도산서원은 1670년(현종 11)에 도고면 도산리에 각각 창건되었다. 이 서원들은 1871년(고종 8)에 서원철폐령에 의해 모두 훼철되었다.

1706년 염치읍 백암리에 현충사가 건립되었는데, 1932년에 중건하고 1960년에 대대적으로 보수해 성역화하였다. 근대교육기관으로는 1908년에 온양공립보통학교가 최초로 설립되었고, 이어 1910년에 신창공립보통학교, 1911년에 아산공립보통학교, 1930년에 온양신정공립보통학교가 각각 설립되었다. 중등학교로는 1946년에 아산중학교가 설립되고 1951년에 온양고등학교가 설립되는 등 많은 학교가 개교하였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44개교, 중학교 17개교, 고등학교 11개교, 특수학교 1개교와 아산정보기능대학·순천향대학교·선문대학교·호서대학교가 있다. 서남대학교는 2018년 2월 폐교하였다. 기타 시설로는 충청남도교육청 산하의 충무교육원이 있다.

온양도서관 및 온양문화원이 있으며, 신문사, 실내체육관, 수영장, 일반공연장, 영화관, 미술관 등이 있다.

민속

이 고장의 민속놀이로는 연날리기·종경도(從卿圖)놀이·줄다리기·널뛰기·쥐불놀이·윷놀이·풍년빌기·지신밟기·그네뛰기·씨름 등을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종경도놀이는 주로 정초에 문벌이 좋은 양반집 부녀자와 소년·소녀들 사이에서 널리 행해지던 놀이였으나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이 놀이는 넓은 백지에 유학(幼學)에서부터 퇴직 후 임명되는 벼슬인 봉조하(奉朝賀)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관직명을 적어 놓고, 유학에서 출발해 누가 먼저 영의정을 거쳐 봉조하의 명예로운 자리를 차지하느냐를 겨루는 놀이이다.

놀이방법은 길이 10㎝쯤 되는 나무를 육각으로 다듬고 모진 곳을 칼로 저며 1에서 5까지의 수를 나타낸 다음, 이 나무를 방바닥에 굴려 나타난 수만큼 종경도판에 그려진 관직 순대로 승진하는 것이다. 낮은 수보다는 높은 수가 나올수록 빨리 승진해 상대방보다 먼저 중앙의 현직(顯職)을 거쳐 최고 봉조하의 영예를 차지하게 되지만, 관운이 나빠 파직을 당하거나 변방의 수령으로 나가면 좀처럼 중앙에 들어오기가 어렵게 된다.

지신밟기는 매년 정월 초사흗날부터 대보름 사이에 행해진다. 놀이패는 ‘지신밟기’라고 쓴 기를 앞세우고 농악대로 이어지며, 그 뒤에는 가장행렬이 따른다. 행렬은 동네의 부유한 집들을 차례로 돌며 지신을 밟아 준다.

지신밟기의 절차는 우선 마당에서 ‘마당놀이’를 한바탕 벌이고 이어 대청 앞에서 ‘대청지신풀이’를, 큰방 앞에서 ‘큰방성조풀이’를, 각 방 앞에서 ‘각방치장풀이’를, 부엌에서 ‘부엌(조왕)지신풀이’를, 우물에서 ‘우물지신풀이’를, 장독에서 ‘장독지신풀이’를, 곳간에서 ‘곳간지신풀이’를, 뒷간에서 ‘뒷간지신풀이’를, 대문에서 ‘대문지신풀이’를 순서대로 한다.

그런 다음 마지막으로 ‘주신(酒神)풀이’를 하는데, 이 주신풀이가 끝나면 음식이 나오게 된다. 지신을 밟을 때는 반드시 “좋고 좋은 지신아, 잡귀 잡신은 뭍 아래로, 천행만복(天幸萬福)은 이 집으로!”라고 창을 하고 농악을 울리면서 집안 구석구석을 밟는다.

이 시의 당제들은 제의 규모나 목적 면에서 서로 비슷하다. 과거 아산만방조제가 축조되기 이전의 해안지역 당제는 풍어제적인 성격이 짙었으나, 근래에는 풍농제적 성격의 제의로 바뀌어 행해지고 있다.

영인면 신현리의 당제는 약 300∼400년 전부터 지내 왔다. 풍어와 마을의 안녕에서, 풍농과 마을의 안녕을 비는 것으로 목적이 바뀐 신현리의 당제 제장은 마을 어귀에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산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제일과 제주의 선정은 마을 유지들이 결정한다. 제주는 당주(堂主)라고 하며, 당주 외에 제관과 축관이 따로 선정된다.

당주는 제의의 전체적인 잡무를 총괄하고 제관은 제의진행을, 축관은 제의시 고축을 담당한다. 제물은 이장이 아산장에서 구입해 당주에게 넘겨주면 당주 집에서 만든다. 이렇게 만든 제물을 제의 당일 초저녁에 당집으로 가져가 진설하는데, 메만은 제장 주변에서 짓는다.

제관과 축관에 의해 제가 거행되고 나면 당주나 제관은 동네를 향해 “마중 시루를 올리시오.” 하고 외친다. 그러면 동네에서는 준비해 놓은 떡시루에 불을 지핀다. 만일 마을에 출산이나 초상 등 부정한 일이 생기면 제를 일주일 정도 연기한다. 그리고 제를 지내는 당일에 타인이 마을에 들어오는 것은 무방하나, 일단 들어오면 제가 끝날 때까지 나가지 못한다.

소지는 대동소지를 올리고 이장소지를 올린 다음 각 호주의 소지를 올린다. 제물을 준비할 때 사용하는 우물이 따로 있으며, 쌀은 방앗간에서 찧은 쌀이라도 다시 손수 찧는다. 제가 끝난 뒤에는 재수가 있다 해 떡을 아이들에게 나누어 먹이고, 또 동전을 놓아두는데 이것도 아이들이 가져간다.

신현리와는 달리 백석포리의 당제는 제주가 부부인 점이 주목된다. 이 당제는 100여 년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데, 풍어·풍농과 마을의 안녕을 위해 지낸다. 제장은 동네 어귀에서 보아 오른쪽의 백석산에 자리 잡고 있다. 당집 내부에는 산신령과 각종 무속신들의 초상화가 모셔져 있다.

과거에는 음력 섣달 중에 일정한 날을 택해 제를 지냈으나, 10여 년 전부터는 섣달그믐날 밤 12시부터 새벽 2시경까지 지낸다. 제관은 제주 내외와 화장 두 사람, 축관 한 사람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섣달그믐날 자정 무렵에 제장에 올라가 제를 지낸다. 소지는 각 호수별로 올리는데, 만약 소지가 잘 안 오를 때에는 두세 번 계속해서 올리며, 그래도 잘 올라가지 않을 때에는 개인적으로 독산제(獨山祭)를 지낸다.

설화·민요

이 시의 설화에는 이 고장과 연관을 맺고 있는 이지함·맹사성·이순신과 그 밖에 이항복·박문수(朴文秀) 등의 인물에 관한 일화가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소화(笑話)가 많다. 그리고 음봉면의 꾀꼬리성과 물한성의 내력에 관한 「오뉘힘내기전설」이 유명하다.

이지함에 대해서는, 흙으로 쌓은 정자에서 살았기 때문에 토정이라 했다는 이야기부터 그의 신통력·인격·죽음에 이르기까지 많은 설화가 전하고 있다. 『토정비결(土亭祕訣)』이라는 책의 내력과 『토정비결(土亭祕訣)』이 모두 맞지 않는 경우에 대한 해명으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이지함에게는 무위도식하는 작은아버지가 있었다. 이에 이지함이 작은아버지에게 돌아다니며 비결을 봐 주고 밥이나 얻어먹게 하기 위해 비결책을 만들어주었다. 그런데 그 비결책이 너무도 적중해 이지함이 일부러 몇 군데 틀리게 고쳐 놓았다. 그래서 『토정비결(土亭祕訣)』에 맞지 않는 곳이 있다는 것이다.

또 이지함의 신통력을 나타내는 이야기로, 그가 예언하기를 “몇 날, 몇 시에 아산이 물에 잠길 터이니 피신하라.”라고 했는데, 과연 바닷물이 넘쳐 아산이 물바다가 되고 그의 예언을 믿지 않고 피신하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는 홍수전설이 전한다. 그렇게 예언을 적중시켰던 이지함도 자기의 죽음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흑심을 품은 아전의 속임수에 넘어가 죽었다는 일화도 있다.

이 밖에 탕정면 명암리 장무기(將舞起)에는 「아기장수전설」이, 염치면 장자못에는 「송곡리 장자못전설」이 전한다. 또 도임인사차 찾아온 군수를 땡볕에 서서 기다리게 함으로써 농민의 어려움을 깨닫게 했다는 「맹정승 관장 훈계이야기」도 있다.

다음은 꾀꼬리성과 물한성의 내력에 관한 전설이다. 어떤 노파가 기상이 넘치는 딸과 평범한 아들에게 죽음을 건 성쌓기 경쟁을 시켰는데, 노파가 아들 편을 들어 결국 아들이 먼저 성을 쌓게 되고, 경쟁에서 진 딸은 목숨을 끊었다는 전형적인 「오뉘힘내기전설」로 그 성이 아직도 음봉면에 남아 있다.

이 고장에는 학이 많은 관계로 학이 등장하는 설화가 많은데, 「환혼석전설(還魂石傳說)」에 학이 등장해 신비한 구실을 한다. 온천에 관한 전설로 「청댕이고개전설」은 지명유래설화이면서 주제면에서는 효행설화이다.

옛날에 남편을 일찍 여읜 젊은 과부가 노시부모를 봉양하며 매우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어느 해 흉년이 들어 온 식구가 굶어죽을 지경이 되자 견디다 못해 며느리가 구걸에 나섰으나 며칠을 헤매도 쌀 한 톨 구하지 못하였다.

그러다 어느 고개에 이르러 그 곳에 있는 바위에 대고 식량을 구하는 소원을 빌었다. 이 때 지나가던 개가 생쌀과 보리쌀을 토해내고 있었다. 며느리는 꺼림칙했지만 이것을 모아 죽을 쑤어 시부모에게 올렸다. 그런데 갑자기 천둥번개에 벼락이 내려쳤다.

며느리는 개가 토해 낸 것을 시부모에게 드린 것이 죄스러워 소원을 빌었던 그 바위에 가서 이번에는 회개기도를 하였다. 이 때 벼락이 바위를 때리더니 바위가 두 조각으로 갈라졌는데, 그 속에서 누런 금덩어리가 나왔다. 며느리는 이것으로 시부모를 공양하며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그 뒤 이 며느리의 효성을 기리며 이 고개를 ‘청동고개’라고 불렀는데, 와전되어 오늘날 ‘청댕이고개’가 되었다. 벼락에 맞아 황금이 나온 바위는 ‘벼락바위’또는 ‘효성바위’라고 한다.

온양의 탕정에는 병을 고치는 효험이 있다는 유래에 관한 전설이 있다. 가난한데다가 절름발이라는 이유로 삼대독자를 혼인시키지 못하는 노파가 백일기도를 드렸더니,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내일 마을 앞 들판에 나타난 절름발이 학의 거동을 살펴보라.” 하고 일러주었다. 다음 날 정말 학이 날아와 앉는데 절뚝거리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며칠을 한 발로 껑충껑충 뛰더니 완치되어 날아가는 것이었다.

노파가 학이 날아간 자리에 가 보니 펄펄 끓는 물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노파가 이상하게 여겨 아들의 다리를 끓는 물에 넣었더니 신통하게 치료가 되고 그 뒤 아들은 양가의 처녀와 혼인을 해 노파의 소원이 성취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그 다음부터 병을 고치겠다고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 밖에 「남산(南山)과 유금필장군전설」·「풍기동지명유래전설」·「시산과 씨름꾼설화」 등이 있다.

이 시의 경우 기능요는 전승이 거의 중단되었고 타령 및 잡가류가 주류를 이룬다. 기능요는 의식요로서 「상여소리」와 「달고소리」가, 노동요로서 「논매기노래」와 「집터다지기노래」 정도가 전승되고 있다. 그리고 「장타령」·「달거리」·「지치캐는 처녀」·「화투풀이」·「초한가」·「백구타령」 등 잡가류가 많았다.

「집터다지기노래」를 보면 “어여루차아/ 어여루차아/ 저산냉맥이 뚝떨어져서/ 어여루차아/ 삼각산냉맥이 솟았구랴/ 어여루차아/ 삼각산냉맥이 떨어나져서/ 어여루차아/ 어디루갔는지 몰랐더니/ 어여루차아/ 저산냉맥이 솟았구랴/ 어여루차아/ 저산냉맥 떨어져서/ 어여루차아/ 어디루갔는지 몰랐더니/ 어여루차아/ 이자리와서 생겨났네/ 어여루차아/ 이집터다 집을짓구/ 어여루차아/ 아들을나면 효자로다/ 어여루차아/ 딸을나며는 열녀나요/ 어여루차아/ 소를멕이면 우마가되구/ 어여루차아/ 말을멕이면 용마가되네/ 어여루차아/ 닭을멕이면 송아지되고/ 어여루차아……”와 같다.

집을 짓기 위해 집터를 다지며 힘든 노동을 즐겁게 하기 위해 부른 이 가사에는 이 집에 살게 될 사람들에게 복이 오도록 빌어주는 내용이 있다.

「지치캐는 처녀」는 창부타령에 속하는 유행민요로 “아니노지는 못하리라/ 황해도봉산 구월산밑에/ 지치를캐는 저처녀야/ 너의집이 어디기에/ 해가다가두 아니가니/ 나의집을 찾으랴거든/ 삼신산 안개속에/ 초가삼간이 내집일세/ 맘에들거든 찾어를오구/ 맘에없거든 그만두오……일보일보 부일보로/ 남향을하여 걸어가면/ 일간초당에 앉은처녀가/지치를캐던 그처녀라/ 얼씨고절씨고 지화자좋아/ 아니노지는 못하리라.”와 같다.

「달거리」는 부모를 그리워하는 주제의 잡가이다. “하사월 초파일날/ 팔을비고 누웠이니/ 대장부 살림살이/ 요만하며는 넉넉하지/ 일촌간장 맺힌설움/ 부모생각 뿐이로구나…….”

산업·교통

이 시는 평야지대에 논이 많고 북부의 구릉성 산지에는 밭과 과수원 및 목장 등이 널리 분포하며, 특히 삽교호와 아산호 주변의 간척지에 농경지가 조성되어 있다. 이들 지역에는 곳곳에 염치저수지·새터저수지·도고저수지·송악저수지·쌍룡저수지(일명 신휴저수지)·봉재저수지·성내저수지·영인저수지·월랑저수지 등이 있어 농업관개용수로 이용된다.

2015년 현재 총경지면적은 188.07㎢로 논이 130.99㎢, 밭이 57.08㎢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 등이며, 배추·무·파·마늘·양배추·고추·당근·수박 등의 소채류와 사료용 옥수수의 생산이 많고, 남부 산지에서는 사과·배·복숭아·포도·밤 등의 과실류가 많이 산출된다. 특용작물로 잎담배를 재배하며, 소·돼지·닭·사슴 등의 사육이 활발하다.

예전에는 아산만 연안에서 어업·제염 등이 이루어졌으나 아산만방조제와 삽교천방조제 축조 이후 어업이 쇠퇴하였다. 그러나 도고온천에서 온천수를 이용해 수출용 뱀장어를 양식하는 내수면수산업이 시작되어, 신창면과 선장면에서도 뱀장어를 양식한다.

공업으로는 배방읍을 중심으로 면사·면방직·마방직 등의 섬유공업, 펄프 및 제지공업, 식품가공업, 도자기·전자·석재·화학공업이 이루어진다. 상업활동은 아산시내의 상설시장과 정기시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정기시장으로는 4·9일에 열리는 온양장과 2·7일에 열리는 둔포장·도고장이 있다.

온천동을 중심으로 천안시와 예산군 예산읍으로 향하는 21번 국도, 경기도 평택시 현덕면과 공주시 유구읍으로 향하는 39번 국도,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으로 향하는 45번 국도 등이 교차하고, 천안시 성환읍과 당진시 신평면으로 향하는 34번 국도가 북부의 아산만 연안에 개설되어 있는데다가 623번·628번·632번 지방도 등이 이들 국도의 지선으로 연결되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특히 21번 국도의 천안시와 아산시 연결도로는 왕복4차선 고속화도로로 되어 있어 양 지역의 교통이 아주 편리하다. 인주면은 아산만방조제와 삽교천방조제를 통해 각각 경기도 평택시 현덕면과 당진시 신평면으로 통하는 길목으로서 새로운 교통의 요지를 이룬다.

또한 동서 방향으로 시의 남부를 지나는 장항선 철도에 배방역·온양온천역·신창역·도고온천역 등이 개설되어 시내 및 시외지역 간의 교통접근도가 대단히 크며, 경부고속선이 관내를 지나 교통이 편리하다.

시의 북부가 아산만에 연해 있어 아산만방조제와 삽교천방조제가 축조되기 이전에는 대안의 평택시와 당진시로 향하는 해상교통이 활발했으나, 두 방조제의 축조 후 해상교통은 거의 소멸되었다.

관광

이 시는 온천과 현충사가 있는 온천휴양 및 성역관광지이다. 관광은 거의 아산시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아산시내에서 염치읍 백암리의 현충사와 산양리의 신심사를 둘러본 다음 음봉면 산정리의 이충무공 묘에 가서 참배하거나, 영인면 상성제를 거쳐 아산리의 아산향교와 이지함 공적비를 보고 아산만 방조제로 나가 넓은 바다를 보면서 숭어·게 등의 신선한 해산물을 즐길 수 있다.

또는 신심사에서 인주면 해암리에 있는 형제송의 장관을 보고, 인주면 공세리의 삼도해운판관비와 아산 공세곶고지를 지나 밀두리의 밀두 낚시터와 삽교천 방조제로 이어지는 관광을 해도 좋다.

아산시에서 남쪽으로 가면 송악면 유곡리 태화산(泰華山) 기슭에 887년(진성여왕 1)에 창건한 봉곡사(鳳谷寺)와 외암리의 민속마을, 강당리의 관선재, 궁평리의 송악저수지를 돌아볼 수 있으며, 배방읍 중리의 아산맹씨 행단, 신흥·공수리의 배방산성(또는 伏釜城) 등의 유적을 살펴볼 수도 있다.

또한 아산시에서 출발해 신창면 읍내리의 신창학성을 거쳐 도고면 신언리의 도고 저수지·도고 온천·도고 레저타운 등으로 이어지는 관광코스도 있다. 특히 도고온천은 동양 4대 유황온천의 하나로 위장병과 관절염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국민보양휴양지로 지정되었다.

또 전망대·관광식당·주차장 등의 시설을 갖춘 삽교호는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으며, 현충사를 중심으로 하는 성역순례탐방로의 개설로 군내의 관광자원이 정비, 개발되고 있다.

읍·면
  1. 배방읍(排芳邑)

시의 동부에 위치한 읍. 면적 49.63㎢, 인구 6만 7198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공수리이다. 본래 아산군 동상면(東上面)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하면(東下面)의 세모리(細模里) 등 11개 리, 군내면의 16개 리, 이북면(二北面)의 일부, 모산리와 전 천안군 군서면(郡西面) 송곡리(松谷里) 등을 병합해 배방산의 이름을 따서 배방면으로 개편해 아산군에 편입되었다. 1995년에 아산군과 온양시가 도농복합 형태의 아산시로 개편되면서 이에 속하게 되었다. 2009년 5월 1일에 읍으로 승격되었다.

지형은 남서부 산지와 북동부 저지대로 크게 나누어진다. 산지는 배방산과 설화산, 남쪽의 태화산과 망경산이 온양천 구조곡을 사이에 두고 동서 간에 대칭을 이룬다. 북동부 저지대는 곡교천 유역의 탕정평야로 이어지는 곡창지대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이며, 옥수수·콩·팥·감자 등의 곡물 이외에 무·배추·오이·수박·고추·파·참깨 등도 많이 생산된다. 과실류로 감이 조홍시(早紅枾)라 해 예로부터 유명하며, 호두·대추 등의 생산도 많다. 축산업으로는 공수리를 중심으로 젖소·돼지·사슴 등을 사육한다.

공업으로는 곡교천의 수자원과 교통의 편리로 입지조건이 좋아 장재리의 방직·도자기공장, 공수리의 요업·석재공장, 휴대리의 전자공장 등이 있어 공업단지로 조성되고 있다. 교통은 공수리를 중심으로 장항선 철도와 국도가 동서로 지나며, 서쪽에서 남동 방향으로 온양천 계곡을 따라 아산시와 천안시 광덕면을 이어주는 도로가 나 있다.

문화유적은 신흥리에 배방산성, 중리에 아산맹씨 행단과 맹사성 유물, 창녕성씨 종중 문서가 있고, 세교리에 기사계첩 등이 있다. 공수리(公須里)·중리(中里)·수철리(水鐵里)·신흥리(新興里)·북수리(北水里)·회룡리(回龍里)·세출리(世出里)·갈매리(葛梅里)·세교리(細橋里)·휴대리(休垈里)·장재리(長在里)·구령리(九靈里) 등 12개 리가 있다.

  1. 염치읍(鹽峙邑)

시의 중부에 위치한 읍. 면적 42.15㎢, 인구 7,599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염성리이다. 본래 아산군 근남면(近南面) 지역이었으나 1911년원남면(遠南面)의 4개 리를 병합해 아남면(牙南面)이라 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아산군 삼서면의 8개 리와 온양군 일북면·이북면의 일부, 서면 실옥리의 일부를 합해 염치의 이름을 따서 염치면이라 하고 아산군에 편입시켰다.

1989년에 온양시 신동의 일부가 염치면에, 염치면 석정리 일부가 온양시에 각각 편입되었다. 1990년에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95년에 온양시와 아산군이 도농복합형태의 아산시로 개편되면서 이에 속하게 되었다.

읍의 서북단에 있는 영인산에서부터 동단의 경기편마암복합체 산지까지 산줄기가 이어져 있으며, 곡교천 하류의 유역에는 비옥한 충적범람원이 발달해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이며, 송곡·백암리에서 배추·무·상추 등의 소채류, 서원·염성리에서 복숭아·사과, 동정리에서 배, 백암리에서 포도, 서원·쌍죽리에서 밤이 생산된다. 축산은 부업형태로 젖소·소·돼지·닭 등을 사육하며, 백암·방현·서원리에는 사슴목장이 조성되어 있다.

광업으로는 수정이 매장되어 있으며, 중방·대동리의 석회석이 농공용 석회석의 원료로 사용된다. 공업으로는 석정리에 소규모 직물공장이 있으며, 상권은 아산시내에 속한다. 도로는 아산∼평택 간의 국도와 아산리∼온양 간의 국도가 남북으로 통과하고, 이 두 도로를 동서로 이어주는 군도가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백암리에 이충무공 유허인 현충사와 이순신 유물 일괄이 있으며, 신양리에 세심사 다층탑과 이충무공 비각, 대동리에 홍가신선생 교지 등이 있다. 명승지로는 현충사와 동정리의 염치저수지·충무유원지 등이 있다.

염성리(鹽星里)·산양리(山陽里)·강청리(江淸里)·서원리(書院里)·중방리(中方里)·쌍죽리(雙竹里)·동정리(東亭里)·곡교리(曲橋里)·석두리(石斗里)·석정리(石亭里)·방현리(芳峴里)·송곡리(松谷里)·백암리(白巖里)·대동리(大洞里) 등 14개 리가 있다.

  1. 도고면(道高面)

시의 남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43.83㎢, 인구 4,87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신언리이다. 본래 신창군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하면(南下面)의 20개 리, 남상면(南上面)의 22개 리, 대서면(大西面)의 8개 리, 예산군 금평면(今坪面) 장곶리(獐串里), 천안시 덕흥면(德興面) 언리(堰里), 신흥면(新興面) 밀두리를 합해 도고면으로 개편하고 아산군에 속하게 하였다. 1995년에 아산군과 온양시가 도농통합형태의 아산시로 개편되면서 이에 속하게 되었다.

지형은 동쪽의 덕암산(德巖山, 261m), 남서쪽의 도고산(道高山, 482m)이 대칭을 이루는 산지로 둘러싸인 분지이다. 남쪽에는 예산군 대술면으로 이어지는 구조선이 형성되어 있으며, 그 사이로는 남은들고개를 분수령으로 도고천이 흘러 삽교천과 합류한다. 도고천 하류인 신언·기곡리에는 범람원이 발달했으며 도고저수지를 이용해 관개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이며, 배추·무·참외·수박 등의 소채류와 사과·배·복숭아·밤 등 과실류의 생산이 많다. 특히 참외·수박은 이 지방의 특산물이며, 특용작물로 잎담배를 재배하고 누에치기도 한다. 우강목장·경인목장 등을 중심으로 축산업이 이루어지고, 온천수를 이용해 뱀장어를 양식하는 내수면수산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하자원으로는 향산리의 화강암 건축석재가 개발되고 있는데, 이 화강암은 질이 좋아 수출된다. 면의 북서단에는 장항선 철도가 통과하는 도고온천역이 있으며, 북부에는 천안·아산·예산·서산을 잇는 국도가 가로지르고, 이와 교차해 도고온천에서 예산군 신양면으로 이어지는 도로 등이 나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도산리에 도고산 봉수와 도산서원, 시전리에 아산 성준경 가옥이 있으며, 휴양지로는 도고 온천이 있다. 신언리(新堰里)·봉농리(鳳農里)·효자리(孝子里)·금산리(金山里)·시전리(枾田里)·신류리(新柳里)·도산리(道山里)·화천리(禾川里)·농은리(農隱里)·오암리(梧巖里)·덕암리(德巖里)·석당리(石堂里)·향산리(鄕山里)·와산리(瓦山里)·신통리(新通里)·기곡리(基谷里) 등 16개 리가 있다.

  1. 둔포면(屯浦面)

시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41.21㎢, 인구 1만 2009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둔포리이다. 본래 아산군 삼북면(三北面)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일북면(一北面)의 백양리, 천안군 모산면(毛山面) 관대리 등 18개 리를 병합해 해운의 기점이었던 둔포리의 이름을 따서 둔포면이라 하였다. 1995년에 아산군과 온양시가 도농복합형태의 아산시로 개편되면서 이에 속하게 되었다.

지형은 대보화강암 침식준평원 지형이 대부분이며 아산만 쪽으로 함몰, 침강해 있다. 경기도와의 도계를 이루는 둔포천과 그 지류 유역은 시포리나 둔포리 등의 지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바다가 깊숙이 들어왔던 곳이며, 하천범람에 의해 형성된 충적평야가 아산호 간척지에 이어져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이며, 복숭아·사과·배 등의 과실류와 고추·배추·무 등의 소채류가 많이 생산되어 아산시내와 평택시내 등지로 출하된다. 젖소사육도 매우 활발해 동부 성환의 구릉지대에서 이루어지는 한우사육과 더불어 중요한 축산업지대를 형성한다.

공업으로는 산전리의 벽돌공장, 둔포리의 낚싯대공장 등이 있다. 둔포면은 한때 경기도·충청북도·충청남도의 내륙지방을 배후지로 삼아 소금·곡물 교역을 하던 곳이었으나,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교역기능은 철도역에 흡수되고 아산·평택의 상권에 속하게 되었다. 교통은 둔포리를 중심으로 평택과 아산·당진 등으로 통하는 국도와 지방도가 교차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둔포리의 선사시대 석광묘(石壙墓)에서 회색토기·돌도끼 등이 출토되었으며, 신항리에 윤보선 전 대통령 생가·윤일선 가옥·윤제형 가옥 등이 있다. 둔포리(屯浦里)·송용리(松蓉里)·시포리(市浦里)·신법리(新法里)·신남리(新南里)·신항리(新項里)·관대리(館垈里)·산전리(山田里)·신양리(新陽里)·봉재리(鳳在里)·운교리(雲橋里)·석곡리(石谷里)·운룡리(雲龍里)·신왕리(新旺里)·염작리(念作里) 등 15개 리가 있다.

  1. 선장면(仙掌面)

시의 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37.65㎢, 인구 3,65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군덕리이다. 본래 신창군 대서면의 17개 리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북면(北面)의 7개 리, 천안군 돈의면(敦義面)·덕흥면(德興面)의 8개 리, 예산군 신종면(新宗面)·금평면의 3개 리, 면천군 비방면(菲芳面)의 4개 리 등을 합해 아산군의 초정면(椒井面)이라 했다가, 1917년도고면 신성리를 합해 선장포(仙掌浦)의 이름을 따서 선장면이라고 개칭하였다. 1995년에 아산군과 온양시가 도농통합형태의 아산시로 개편되면서 이에 속하게 되었다.

예당평야의 일부로서, 삽교천·무한천·곡교천이 합하는 하류유역에 넓은 충적범람원이 발달해 있다. 삽교천방조제가 준공된 이후 호안은 물론 전 지역이 전천후 농경지로 크게 변모되어, 경지면적 중 논이 80% 정도를 차지하는 아산시 최대의 미작지대가 되었다.

또한 내륙부 구릉지대에서는 노지채소재배가 활발해 배추·무 등을 생산하며, 군덕·죽산·선창리에서는 복숭아·배 등을 많이 산출한다. 군덕리에서는 뱀장어를 양식해 수출산업으로도 발전시키고 있다. 교통은 장항선 철도가 통과하고 군덕리를 중심으로 도로가 Y자형으로 분기하나, 간선도로에서 벗어나 있어 불편하다.

군덕리(君德里)·돈포리(頓浦里)·신덕리(新德里)·대정리(大井里)·장곶리(獐串里)·신성리(新聖里)·죽산리(竹山里)·신동리(新洞里)·선창리(仙倉里)·대흥리(大興里)·홍곶리(洪串里)·가산리(佳山里)·신문리(薪門里)·궁평리(宮坪里) 등 14개 리가 있다.

  1. 송악면(松嶽面)

시의 최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61.16㎢, 인구 4,190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역촌리이다. 본래 온양군 남상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하면의 방산리(芳山里) 등 13개 리와 신창군 남하면 외덕암리(外德巖里) 일부를 병합해 송악산의 이름을 따서 송악면이라 해 아산군에 편입되었다. 1995년에 온양시와 아산군이 도농통합 형태의 아산시로 개편되면서 이에 속하게 되었다.

대부분 선캄브리아기 경기편마암복합체 지질이며, 황산(荒山, 344m)·설화산·광덕산 등과 그 주변에 여러 산봉이 솟아 있고, 봉수산 깊숙이 송악골이 있다. 남북과 동서 간 지체구조선을 따라 유곡천(楡谷川)과 근대골내가 흐르며, 유구천(維鳩川)이 면의 중앙을 북류하고 도중에 송악저수지가 있어 관개용수와 온양온천의 상수도원으로 이용된다.

북부 평촌·역촌리 일대의 곡간 충적지와 그 양쪽 동화·외암리 등지의 대보화강암지대에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 등이며, 이 밖에 콩·팥 등의 잡곡류와 소채류가 생산되고, 태화수박과 참외는 이 지방 특산물이다. 특용작물로 잎담배를 재배하며, 교통이 편리한 역촌·평촌·외암리 등의 저지대에서 소·사슴 등을 사육하고, 벌꿀도 생산한다.

임산물로 표고와 약초가 산출되고, 호두가 많이 생산되며, 밤단지 조성으로 밤의 산출이 많다. 광업으로는 설화산지구의 화강암이 수출용 건축재로 개발되고 있으며, 거산리에 흑연광이 있다. 공업으로는 외암리의 직물공장, 유곡리의 기계공장이 있다. 상권은 남부 일부지역이 공주시 유구읍에 속하고, 대부분이 아산시내에 속한다.

교통은 유구천을 따라 아산∼공주 간의 국도가 지나고, 면의 서부에는 예산으로 통하는 국도가 통과한다. 문화유적은 평촌리에 석조약사여래입상, 유곡리에 봉곡사와 봉곡사 불화, 외암리에 오층석탑과 외암리 참판댁, 강당리에 이간 생가·유품전시관·한옥취락 등이 있는데, 특히 아산의 외암마을은 전통건조물보존지구로 지정되어 있다. 명승지로는 광덕산과 송악저수지가 있다.

역촌리(驛村里)·평촌리(坪村里)·외암리(外巖里)·강당리(講堂里)·마곡리(馬谷里)·궁평리(宮坪里)·유곡리(楡谷里)·송학리(松鶴里)·종곡리(鍾谷里)·거산리(巨山里)·강장리(江長里)·수곡리(首谷里)·동화리(東花里) 등 13개 리가 있다.

  1. 신창면(新昌面)

시의 중앙에 위치한 면. 면적 39.69㎢, 인구 2만 2840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오목리이다. 본래 신창군 군내면(郡內面)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대동면(大東面)의 20개 리, 소동면(小東面)의 22개 리, 대서면·소서면(小西面)·북면의 일부, 아산군 삼서면(三西面), 온양군 서면(西面)의 일부를 병합해 학성면(鶴城面)으로 했다가, 1983년 점량(占梁)·득산(得山)·실옥(實玉) 등 3개 리를 아산군 온양읍에 편입시켰다. 1995년 아산군과 온양시가 도농통합형태의 아산시로 개편되면서 이에 속하게 되었다.

동쪽에 치학산(峙鶴山, 135m), 서쪽에 학성산(鶴城山, 183m)·맹산(孟山), 남쪽에 덕암산(德巖山, 261m) 등의 산지가 있고 대체로 구릉지대로 되어 있다. 북부의 곡교천과 오목천(烏木川) 유역은 탕정평야로 이어지는 비옥한 충적평야이다. 이 평야지역은 상류에 있는 온양저수지를 이용해 관개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이며, 오목·남성리 등지에서 보리·콩 등이 생산된다. 사과·배 등 과실류의 생산이 특히 많으며, 고추·파·수박·참외 등의 소채류와 잎담배·약초 등이 산출된다. 공업으로는 갈포를 제조하는 업체가 있고, 상권은 아산시내에 속한다.

교통은 장항선 철도가 북부를 동서로 횡단하고 아산시내와 예산군을 잇는 국도가 면의 중앙을 가로지르며, 선장면과 배방읍으로 통하는 군도가 각각 개설되어 있어 편리하다. 읍내리는 장항선 철도가 경유하는 오목리에 세력을 빼앗겼다가 인근에 대학교와 농공단지가 들어서면서 다소 활기가 돌고 있다.

문화유적은 읍내리에 신창학성과 인화사 석탑·신창향교 등이 있다. 오목리(五木里)·읍내리(邑內里)·창암리(昌巖里)·황산리(黃山里)·행목리(杏木里)·수장리(水長里)·신달리(新達里)·남성리(南城里)·궁화리(宮華里)·가덕리(佳德里)·신곡리(新谷里)·가내리(佳內里) 등 12개 리가 있다.

  1. 영인면(靈仁面)

시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56.28㎢, 인구 6,22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아산리이다. 본래 아산군 현내면(縣內面)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일북면의 3개 리와 이북면의 15개 리, 신흥면 신성리(新星里)를 병합해 아산군에 편입시키고, 영인산의 이름을 따서 영인면이라고 하였다. 1995년에 아산군과 온양시가 도농복합형태의 아산시로 개편되면서 이에 속하게 되었다.

면의 동부에 고용산, 서남단에 영인산, 북부에 창룡리구릉 등 산지가 있고, 이들 산지 사이에는 지체구조선을 따라 곡간의 충적지가 아산호의 간척지까지 이어져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 등이며, 완초와 구기자·작약 등의 약초가 생산되고 밤도 산출된다. 누에치기는 농가부업으로 이루어지며, 수도권과의 교통망이 구성되면서 젖소와 소의 사육도 증가하고 있다. 상권은 둔포와 아산시내에 속한다.

도로는 평택과 둔포를 거쳐 아산호의 호안을 따라 아산만방조제로 이어지는 국도가 있고, 백석포·영인면 아산리·아산시내를 연결하는 국도와 둔포·역리·아산리로 통하는 군도가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아산리에 여민루·김옥균선생 유허·아산향교·관음사 석탑·관음사 석조여래불상·영인 오층석탑·영인석불, 신현리에 영인 신현리 미륵불 등이 있다. 명승지로는 신봉산(新鳳山)에 신봉사(信鳳祠) 터가 있다.

아산리(牙山里)·상성리(上星里)·신현리(新峴里)·월선리(月船里)·신운리(新雲里)·백석포리(白石浦里)·와우리(臥牛里)·구성리(九星里)·창룡리(蒼龍里)·신봉리(新峰里)·성내리(城內里)·신화리(新化里)·역리(驛里) 등 13개 리가 있다.

  1. 음봉면(陰峰面)

시의 북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59.05㎢, 인구 1만 6112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삼거리이다. 본래 아산군 일동면(一東面)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동면(二東面)의 16개 리와 천원군 성환면(成歡面) 공수리(公須里)를 합해 아산의 옛 이름인 음봉을 따서 음봉면이라고 하였다. 1995년에 아산군과 온양시가 도농복합형태의 아산시로 개편되면서 이에 속하게 되었다.

지형은 서쪽의 국사봉(國師峰, 223m)에서 둔덕산과 중부의 연암산 등으로 이어지는 경기편마암복합체 산지를 분수령으로 동쪽의 율지천(栗枝川)·매곡천(梅谷川), 북쪽의 원남천(院南川) 유역으로 나뉜다. 북부 신정리와 쌍룡리의 가재산, 쌍암리 용암산 일대의 쥐라기 대보화강암 침식구릉지대를 제외하고는 남북 하천유역은 충적평야를 형성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이며, 배추·파·무·고추 등 소채류와 잎담배가 생산되고, 밤이 산출된다. 천안시에 인접하는 농목지대를 이루어 목장면적이 아산시내에서 제일 넓으며, 젖소·소 이외에 동천·삼거·월랑리 등지에서의 사슴사육도 활발하다. 쌍룡리에는 직물공장이 있다.

도로는 삼거리를 중심으로 평택∼아산시내간의 국도와 천안∼영인면 간의 국도가 교차하고, 성환읍∼영인면 간의 지방도가 면의 북부를 가로지르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신정리에 월추산성(月抽山城), 탕정면과의 경계에 꾀꼬리성·물한산성 등의 성지, 삼거리에 이충무공묘가 있다.

삼거리(三巨里)·동천리(東川里)·신수리(新壽里)·산정리(山亭里)·원남리(院南里)·소동리(小東里)·신휴리(新休里)·의식리(衣食里)·쌍암리(雙巖里)·쌍룡리(雙龍里)·월랑리(月朗里)·산동리(山東里)·덕지리(德地里)·동암리(銅巖里)·송촌리(松村里) 등 16개 리가 있다.

  1. 인주면(仁州面)

시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45.02㎢, 인구 7,825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밀두리이다. 본래 아산군 신흥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일서면(一西面)의 6개 리, 이서면(二西面)의 3개 리, 삼서면의 5개 리, 현내면의 3개 리, 천안군 돈의면의 2개 이를 합해 아산군의 고려시대 명칭인 인주를 따서 인주면이라 하고 아산군에 편입되었다. 1995년에 아산군과 온양시가 도농복합형태의 아산시로 개편되면서 이에 속하게 되었다.

지형은 동단의 영인산에서 입안산(笠巖山, 213m)·용두산(龍頭山, 89m)을 잇는 선캄브리아기 경기편마암복합체 지질의 산지가 아산만 연안 가까이까지 뻗어 있다. 삽교천방조제 준공 후 면의 서부와 북부의 호안은 간척지로 바뀌었으며, 북부 중간 부분만 해안선으로 남아 있다. 남부는 곡교천 유역에 충적범람원이 형성되어 있으며, 삽교천방조제의 건설로 잦았던 침수피해에서 벗어났다.

주요 농산물은 쌀이며, 공세리를 중심으로 파·마늘 등의 채소단지가 조성되어 이곳에서 생산된 소채류가 수도권 지역으로 출하되고, 잎담배도 많이 생산되는 편이다. 냉정리를 중심으로 젖소의 사육이 활발하며, 밀두리에서 가내수공업으로 직물을 제조한다. 상권은 아산시내와 경기도 평택시, 당진시 신평면 등 여러 권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교통은 공세리를 중심으로 각각 평택시·당진시·아산시내로 통하는 국도들이 十자형으로 교차하며, 밀두·신성리에서 지선도로가 남쪽으로 갈라져 곡교천 유역을 지나 도고면으로 통한다. 문화유적은 공세리에 아산 공세곶고지와 삼도해운판관비·성당, 해암리에 형제송, 공세리에 팽나무가 있다.

밀두리(密頭里)·모원리(牟元里)·신성리(新城里)·걸매리(傑梅里)·공세리(貢稅里)·문방리(文方里)·대음리(大音里)·금성리(金城里)·해암리(海巖里)·도흥리(挑興里)·관암리(觀巖里)·냉정리(冷井里) 등 12개 리가 있다.

  1. 탕정면(湯井面)

시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24.21㎢, 인구 2만 303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용두리이다. 본래 온양군 일북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북면의 10개 리와 아산군 원남면 정좌리(正座里) 등 4개 리를 병합해 온양의 옛 이름인 탕정으로 고쳐 아산군에 편입시켰다. 1973년 모종·권곡 등 2개 리를 온양읍에 이관시켰고, 1983년 신리를 온양읍에, 1987년 구령리를 배방면에 각각 편입시켰다. 1995년에 아산군과 온양시가 도농복합 형태의 아산시로 개편되면서 이에 속하게 되었다.

지질은 쥐라기 대보화강암의 침식저지 지형이 대부분이며, 국사봉(國師峰, 155m)을 비롯한 북부 산지와 중앙의 삼봉산(133m)도 구릉성 산지이다. 이들 산지 사이를 매곡천·용두천(龍頭川)이 남쪽으로 흐르며, 곡교천과의 합류지역 주위는 충적평야로서 아산시의 곡창지대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콩 등이며, 용두·명암·갈산리 등의 서부지역은 집단적인 포도재배지이고, 배추·시금치 등의 소채류가 생산되어 수도권 지역으로 출하된다. 축산은 명암리를 중심으로 북부에서 소, 동산·호산리 등지에서 젖소, 매곡·용두리 중심으로 돼지, 매곡·갈산리 등지에서 닭, 용두·갈산·명암리에서 사슴 등의 사육이 이루어진다. 공업으로는 직물·제지·석재 계통의 공장이 있다. 상권은 아산시내에 속한다.

교통은 아산시내에서 염치읍의 동단을 지나 갈산·동산리를 이어 직산으로 통하는 도로가 있다. 문화유적은 명암·음봉·동천 사이에 물한산성, 그 동쪽에 꾀꼬리성이 있다. 용두리(龍頭里)·명암리(鳴巖里)·동산리(銅山里)·호산리(虎山里)·매곡리(梅谷里)·갈산리(葛山里) 등 6개 리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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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지』지방편Ⅱ(건설부국립지리원, 1984)
『아산군지』(아산군지편찬위원회, 1983)
『충남의 맥락』(충청남도,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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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지』(충청남도지편찬위원회, 1979)
『한국지명총람』(한글학회, 1974)
아산시(www.asan.go.kr)
충청남도아산교육청(www.cnased.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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