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일본의 발의로 해마다 아시아 회원국들이 돌아가며 개최하고 있다. 한국 · 일본 · 자유중국 · 홍콩 · 인도네시아 · 필리핀 · 말레이시아―싱가포르 · 타이 · 베트남 등 아시아 9개국의 영화단체들로 구성된 영화제작자연맹(F.P.A)이 주최하여 경쟁식의 영화제를 창설하였다.
제1회 영화제는 1954년일본 동경에서 개최되었고, 극영화 부문 작품상인 골든 하베스트상을 비롯하여 감독 · 각본 · 촬영 · 편집 · 음악 · 녹음 · 미술 · 주연 및 조연 남녀배우상, 그리고 비극영화 부문 작품상인 실버 하베스트상과 촬영 · 기획상이 마련되었다. 이 영화제 본래의 목적은 영화예술의 향상과 각국 영화인들의 우호증진이었으나, 1960년대 후반 이후 영화의 매매 알선을 위한 전시장으로 그 성격이 변질되어가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영화산업의 경제적 변동에 따라 행사경비의 대부분을 주최국이 부담하고, 또 영화제의 효과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시작하여 1970년 제16회 영화제에서 일본이 경쟁제도 폐지와 영화제 개혁안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그에 따라 연맹규약이 크게 개정되었고 영화제도 1972년 제18회부터 비경쟁으로, 또 주최국이 견본시(見本市)를 겸하는 것으로 바뀌게 되었다.
1971년에는 새로 캄보디아가 가맹하였고,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가 분리되어 가맹국은 11개국이 되었으나, 그 뒤 통일 베트남의 가입과 오스트레일리아 · 뉴질랜드가 새로 가맹하여 현재 구성국은 14개국이며 발족 당시와는 많이 달라졌다. 1982년 제27회 영화제부터는 명칭을 ‘아시아태평양영화제’로 변경하고 부분경쟁을 도입하였다.
우리 나라는 1957년 동경에서 열린 제4회 영화제에 〈시집가는 날〉 · 〈백치 아다다〉를 출품한 이래 해마다 4, 5편의 작품을 출품하고 있다.
우리 나라의 역대 주요 수상작으로는 〈시집가는 날〉(1957, 희극상) · 〈사랑방손님과 어머니〉(1962, 최우수작품상) · 〈김약국의 딸들〉(1964, 비극상) · 〈남과 북〉(1965, 비극상) · 〈초혼 招魂〉(1965, 비극영화 작품상) · 〈좌선 坐禪〉(1984, 최우수다큐멘터리상) 등이 있다.
그리고 주요 수상자는 음악상에 김성태 · 전정근 · 정윤주 · 황문평, 미술상에 정우택 · 이명수, 촬영상에 최동학 · 정일성, 녹음상에 이경순 · 김한근, 편집상에 양성난 · 유재원, 감독상에 신상옥 · 김수용 · 변장호 · 배창호 · 임권택, 각본상에 김강윤 · 이은성, 남우주연상에 김승호 · 신영균 · 김진규 · 박노식 · 최무룡 · 하명중, 여우주연상에 도금봉 · 최은희 · 김지미 · 김창숙 · 이미숙 · 장미희, 남녀조연상에 김희갑 · 허장강 · 장혁 · 김일우 · 고두심 · 방희 등이 있다.
초기의 영화제 성격은 작품의 경쟁에 있었으나 경쟁의 과열 등 부작용 때문에 요즈음에 와서는 경쟁적 요소보다는 친선 축제로 성격이 바뀌었고, 회원국 상호간의 영화수출입의 촉진과 문화교류에 목적을 두고 있으나 사실상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다.
한국은 1962년서울에서 처음 아시아영화제를 연 것을 비롯, 1997년 제42회 제주 유치까지 일곱 차례나 개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