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1980. 충청남도 청양출생. 공주 영명학교를 거쳐 배재 중학에서 수학하였다. 당시 양악의 선구자인 김인식(金仁湜)·김형준(金亨俊)·이상준(李尙俊)으로 부터 노래를 배우면서 음악에 심취하였다.
1917년 연희전문학교에서 김영환(金永煥)으로부터 음악을 공부하였으며, 미국 오리건주의 엘리슨화이트음악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하였다. 1928년에 귀국하여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로 취임하였다.
그는 작곡가로서 향토가극 분야를 새로 개척하여 경가극(오페렛타)을 본따 전통적인 우리나라 설화들의 이야기를 오음음계로 구사하여 안기영류 가극의 바탕을 이룩하였다. 그 당시의 상황으로는 이러한 가극의 정착이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민족적인 정서를 창출하는 데 기여하였다.
가극으로는 「콩쥐팥쥐」·「견우직녀」·「에밀레종」 등이 있으며, 동요로는 대표작으로 「그리운 강남」, 가곡으로는 「작별」·「마의태자」 등이 있다.
그는 성악이론과 작곡의 음계구조에 대한 스스로의 이론을 정립시켰으며, 문필활동을 통해서도 음악계에 영향을 끼쳤다. 원래 기독교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일반적인 성향과 달리 민족적 정서를 탐구하였다.
1946년 월북하여 공산주의식 해방 전사의 노래들을 작곡하여 공산주의 체제수호에 앞장섰으며 조선음악가동맹 부위원장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