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탐진(耽津). 자는 응회(應會), 호는 지헌(止軒). 어려서부터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세서 장사라는 칭찬을 들었다. 선비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책을 읽는 것보다는 무술을 연마하는 데 주력하였다.
원래 총명한 기질인 데다가 한번 시작하면 그칠 줄 모르는 끈기 때문에 문무가 겸전한 재목으로 성장하였다. 고을의 천거로 사옹원봉사에 제수되고 이어서 군자감판관이 되었다. 나라에 외환이 닥칠 것을 미리 내다보고 군수물자의 남용을 막고, 경비를 절감하여 병기의 수선과 확보에 진력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향병을 이끌고 홍의장군 곽재우(郭再祐)의 휘하로 들어가서 유곡(柳谷)·영천·화왕산성(火旺山城) 등지에서 적을 무찔러 많은 전공을 세웠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논공행상 때 당쟁의 제물이 되어 응분의 보상을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원래 행상에는 뜻이 없었으므로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후진교육에만 힘썼다. 죽은 뒤에 논공행상에서, 공적에 비하여 포상이 미약하다는 점이 인정되어 병조참의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