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여학교는 1905년의 을사조약체결을 계기로 국가의 형세가 지극히 어려운 지경에 이른 상황하에서 국력을 발전시키고 국가의 독립을 보존해 나가기 위해서는 남녀 국민 모두가 열심히 학문하고 사업에 힘써야 하고, 특히 여자교육을 통해서 국가의 독립권을 영구히 보존한다는 것을 취지로 하여 1906년 3월에 평양의 유지들이 평양에 설치한 여자교육기관이다.
평양애국여학교는 여성들의 민족감정을 배양하는 것을 교육이념으로 하여 국문과 역사 교과를 주로 가르침으로써 여학생들에게 애국계몽의 교육을 실시하였다. 평양애국여학교는 개교시 학생수가 60여 명이었고, 교과목은 국문·한문·산술·지지·역사·일어 등으로 하였다.
평양애국여학교는 교복·뱃지·교가 등도 마련함으로써 현대적인 학교체제를 어느 정도 갖추고 있었다. 평양애국여학교는 1907년에 교명을 평양진명여학교(平壤進明女學校)로 개명하고, 30여 명의 여학생을 모집하여 소정의 교육을 실시하였다.
한편 한성에 있던 진명여학교의 총교사인 여메례황여사가 1907년부터 1911년까지 평양진명여학교의 교장을 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