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계평(季平), 호는 영하정(暎霞亭) 또는 어은(漁隱). 양배(楊培)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양공준(楊公俊)이고, 아버지는 사복시부정(司僕寺副正) 양홍(楊洪)이다. 어머니는 순흥안씨(順興安氏)로, 안극함(安克諴)의 딸이다.
노진(盧稹)·유희춘(柳希春)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1579년(선조 12)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1588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군자감(軍資監)의 봉사(奉事)·직장(直長) 등을 역임하였다. 1592년 벼슬을 사임하고 남원에 낙향하였는데, 그 해 여름에 왜적이 침범하자 이대윤(李大胤)·최상중(崔尙重) 등과 군량을 모아 금산의 전지로 보냈다. 1594년 윤두수(尹斗壽)가 체찰사로 삼남지방을 순시할 때 참좌하였다.
또 변사정(邊士貞)·정염(丁焰) 등과 의병으로 활동한 공로가 평가되어 병조정랑에 오르고, 이어서 춘추관기사관·경기도사·남평현감(南平縣監)·예조정랑을 거쳐 1599년 영광군수(靈光郡守)로 임지에서 죽었다. 승정원도승지의 증직이 내리고, 원종공신(原從功臣) 2등에 책봉되었으며, 남원 화산사(華山祠)에 봉안되었다. 저서로는 『어은유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