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호리의 천불산(千佛山) 서남쪽 기슭에 수백기가 밀집되어 분포하고 있다.
일제시대부터 도굴의 피해를 입었으며, 외형상으로는 작은 규모의 봉토(封土)를 갖추고 있어 당시의 민간인 집단묘로 여겨지고 있다. 지금까지 정식으로 학술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무덤에 대한 정확한 내용과 성격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도굴된 상태에서 관찰된 무덤의 내부구조는 냇돌을 이용하여 돌덧널[石槨]의 벽을 마련한 작은 규모의 돌덧널무덤[石槨墓]으로 확인되고 있다. 주변에서 수습되는 유물 가운데 신라토기편(新羅土器片) 등이 있어 이 무덤이 신라시대에 조성된 집단 민묘(民墓)지역으로 판단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