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의 안악지방은 교육구국운동에 앞장섰던 대표적 지역의 하나이다. 즉 1905년의 을사조약 체결 당시 안악에는 김용제·김용진 형제와 최명식·김홍량(金鴻亮) 등의 인사들이 있어 신교육운동이 맹렬하게 전개되었다.
특히 1905년에 일본유학에서 돌아온 김홍량은 김용제·김용진·송종호 등의 인사들과 함께 민립학교 운동을 전개하여 안악에 양산학교(楊山學校)를 설립하고, 김구(金九)를 교사로 초빙하여 영재교육에 힘썼다. 이들은 1907년에 양산학교에 중학반(中學班)을 두었고, 1909년 8월에는 양산중학교를 별도로 설립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양산중학교는 1908년 10월에 신설되었다.
즉, 대한매일신보에 의하면 황해도 안악에서는 김홍량 등 유지들이 자금을 모아 1908년 10월에 양산중학교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안악의 유지 18명은 1908년 10월에 양산학교의 설립과 유지를 위해 의연금을 제공하고, 1908년 12월에도 31명의 인사들이 450원의 의연금을 양산중학교에 희사하였다.
양산중학교는 중학과와 예비과의 과정을 두고 중학과는 16세 이상의 남자 예비과는 15세 이상의 남자를 각각 입학자격으로 하였으며, 입학시험 과목은 중학과는 독서·작문·산수·지지(본국)·역사(본국)·이화(理化)·박물·체격(体格)으로 하고, 예비과의 입학시험과목은 독서·작문·산수·지지(본국)·역사대요·체격으로 하여 신입생을 모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