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광산(지금의 광주광역시) 출신. 의병장 양진여(梁振汝)의 아들이다.
진위대(鎭衛隊) 병사출신으로, 1907년 군대해산 후 잠시 광주경찰서 순사로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의병장이었고, 또한 의병들과 기맥을 통하고 있던 터라 일제에 의하여 파면되는 즉시 의병항쟁에 나섰다.
1908년 5월에 광주를 근거로 거의하여, 약 80명으로 된 의병진을 편성하고 의병장이 되었다. 1909년 5월까지 전라남도의 광주 · 동복 · 담양 · 장성 · 창평 등지에서 친일역도를 처단하고 일본기관을 파괴하며 일본군과 싸웠다.
1908년 11월에는 광주에서, 그해 12월에는 동복에서, 1909년 3월에는 광주와 동복군 외북면 서유마을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찔렀다. 그리고 그해 5월에는 담양군 무정면 덕곡리에서 일본수비군 및 경찰과 격전하였다. 그뒤 남원에서 잡혀 교수형을 받고 순국하였다.
1977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으로 서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