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경원(景遠), 호는 만희(晩羲). 능주(綾州) 출생. 아버지는 양윤주(梁潤周)이며, 어머니는 진주김씨(晋州金氏)로 김시향(金時香)의 딸이다. 아버지로부터 학문을 배웠다.
여러 번 향시에 응하였으나 합격하지 못하다가 1859년(철종 10) 그가 죽기 1년 전인 72세 때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 4세에 다른 사람이 글 읽는 것을 듣고 능히 해독하였다고 하며, 6세에는 8괘(八卦)와 6갑(六甲)을 외우고 9세에는 장자방(張子房)과 공명(孔明)의 우열을 논하는 글을 지었다고 한다.
제자백가(諸子百家)와 노불(老佛)의 학설을 섭렵하고, 특히 역(易)을 깊이 연구하여 「대연추책(大衍推策)」을 지었다. 1857년에는 고을 선비들과 함께 서울에 올라와 기묘명현(己卯名賢)인 양팽손(梁彭孫)의 시호를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선비들과 향음례(鄕飮禮)를 많이 가졌으며 시작에도 매우 뛰어났다. 최익현(崔益鉉) 등 많은 사림들이 양진영의 시를 찬탄하여 ‘풍아명어좌해(風雅鳴於左海)’라고 평하였다. 저서로는 『만희집(晩羲集)』이 있고, 편서로는 『경학지(經學志)』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