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함종(咸從). 자는 선지(瑄之).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어세공(魚世恭)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어맹순(魚孟淳)이고, 아버지는 절충장군 어숙평(魚叔平)이다. 어머니는 순흥안씨(順興安氏)로, 제용감봉사(濟用監奉事) 안관(安琯)의 딸이다.
1528년(중종 23)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540년 진사로서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승문원에 출사하였으며, 1544년 전적(典籍)으로 승임되었다. 그 뒤 병조좌랑·형조좌랑·지평(持平)·헌납(獻納)을 거쳐, 1548년(명종 3) 예조정랑에 승임되었으며, 어사가 되어 북방 군민의 어려운 형편을 살피고 돌아왔다.
그 뒤 병조·사헌부·홍문관 등의 관직을 거쳐, 군기시부정(軍器寺副正)·홍문관응교(弘文館應敎)에서 전한(典翰)·직제학으로 승진되었다. 1555년 병조참지, 그 뒤 공조참의 등을 거쳐 승정원도승지가 되었다. 1560년 형조참판이 되었을 때 아선군(牙善君)에 봉군되었다.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로 전임, 그 해 명나라 세종의 탄일 만수절(萬壽節)을 축하하고 돌아왔다.
그 뒤 한성부좌윤에서 오위부총관으로 전임하였다. 1567년 명종이 죽자 수릉관(守陵官)에 제수되어 정헌대부(正憲大夫)에 가자되었고, 그 뒤 오위도총관 등을 거쳐 벼슬이 좌참찬에 이르렀으며, 기로소에 들어갔다. 문벌있는 가정에 태어나 충효를 겸전한 인물이며, 검소한 생활은 다른 사람에게 모범이 되었고 권세에 아부하지 않았다. 서예에 능하였는데, 특히 예서(隷書)는 당대의 으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