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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계에서 서식하는 수산자원을 채취, 포획하고 양식하는 것을 생업으로 하는 직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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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수계에서 서식하는 수산자원을 채취, 포획하고 양식하는 것을 생업으로 하는 직업인.
내용

어부(漁夫)·어부(漁父)·선원(船員)·수부(水夫)·해인(海人) 등으로 부르기도 하며, 옛날에는 ‘어한(漁漢)’·‘축말자(逐末者)’ 등으로 호칭되기도 하였다.

한마디로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 하지만, 거기에는 성격을 달리하는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다. 즉, 트롤어업(Trawl 漁業)과 같이 대규모 자본이 필요한 자본제 어업을 경영하는 어업자본가가 있는가 하면, 순수한 어업노동자로 고용되어 있는 어업 임금노동자도 있다.

그리고 작은 규모의 자본과 자가노동을 바탕으로 자영하는 소상품생산적 어가어민도 있다. 그러나 우리들이 흔히 어민이라 부를 때에는 이들 가운데 전자, 즉 어업자본가를 제외한 어업 임금노동자와 어가어민만을 지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어업은 노동의 장소가 수계이고, 노동의 대상 또한 물 속에서 서식하는 수산 동·식물이므로, 육지 타산업의 종사자들과는 크게 다른 노동형태·임금제도·생활주기를 가지고 있다. 먼저 어업노동의 특성을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노동이 물 속 혹은 배 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일에 많은 곤란과 조난의 위험이 따른다는 점이다. 수계는 계절·기후·기상·조수의 변화에 따라 항상 움직이고 변하기 때문이다.

둘째, 일반적으로 다수 노동자의 협력을 필요로 하며 공동노동조직을 채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노동자간의 작업 분담과 전문화가 아직 확립되지 못 하여 분업·협업의 체계가 충분히 발달하지 못하고 있다.

셋째, 오늘날에는 어획작업의 기계화가 부분적으로 발달되어 있으나 아직도 개개 노동자의 경험과 숙련이 더 중요하다.

넷째, 위와 같은 사정으로 노동의 적용범위가 지역 및 어업의 종류에 따라 좁은 범위에 한정되게 마련이다. 따라서 전업하기가 어렵다.

다섯째, 어업노동은 어기의 제한을 받는 계절적인 노동일 뿐 아니라, 한 어기 중에도 바쁘고 한가한 차가 크고 자연조건의 변화에 의한 작업중단의 경우도 적지 않아서 작업의 진행이 불균등·불규칙·비연속적이다.

여섯째, 어업노동에서는 직접적인 작업에 들어가는 시간 못지않게 어장 왕복시간, 천재 대비 등 준비작업에 소요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이상은 대체로 자연적·기술적 조건에서 발생하는 특질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특질 때문에 어업노동의 생산력은 일반적으로 낮고 거기에다 임금형태마저 성과급[짓가림제:步合制]이라는 불안정한 제도를 주축으로 하고 있어서 어민의 생활정도가 전반적으로 낮아질 수밖에 없다.

어민의 생활구조상의 특질은 생업의 일정한 시간적·공간적 구조에 의해 규정된다. 즉 노동 시간에 따른 ‘생활 주기’와 그 공간에 따른 ‘생활 영역’이 그것이다.

어민의 생활주기는 어업의 조업형태 여하에 따라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천후·해황(海況) 등의 이변이 심하고 물고기들의 움직임이 불규칙하므로 이조(異調:불규칙성·돌변성)를 띠는 수가 많다.

이와 같은 생활주기의 불규칙성은 어민의 생활을 초인간적·우연적 요인에 지배당하게 하므로 무계획적·비합리적·우연적인 어민의 심성(心性)을 조장하는 경향이 짙다. 어민의 생활 영역은 농민들과는 달리 생활장소와 노동장소가 물과 땅 위로 분단되어 있어서 대개의 경우 어민은 다른 가족과 떨어져서 일하게 된다.

원양어업의 경우에는 1년 이상을 가족과 떨어져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조건은 어민의 가족에 대한 애정을 격정적으로 만들고 나아가서 소비생활에도 낭비가 심해진다. 또한 노동장소는 ‘판자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지옥과 연접해’ 있어서 생명을 걸고 노동하게 된다.

그리하여 어민의 생활주기의 밑바탕에는 항상 ‘죽음을 매개로 하는 생(生)의 기쁨과 불안’이 흐르고 있다. 이러한 생활감정은 가족간의 애정을 격정화함과 동시에 어민의 심성을 초인간적인 것에 귀의하게 하는 경향으로 이끌어간다. 어촌이 속신(俗信)의 세계에 의해 강력히 지배받고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어민의 생활구조와 관련해서 어민의 생활방식의 문화에는 어떤 특징이 있는가를 생각해 보자. 어민 내지 어촌의 생활방식의 일반적 특징을 한마디로 공동체적 행동양식, 혹은 넓은 의미의 제도적 행동양식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집단생활에 있어서든 개인의 행동은 제도에 의해서 규제받는 것이며, 그런 뜻에서 개인의 행동은 제도적 행동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민의 경우는 특히 어업공동체가 그들의 생활과 행동을 강하게 규제하기 때문에 공동체 행동양식 내지 제도적 행동양식의 특색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어촌의 생산활동을 살펴보면 어장의 해금(解禁)이 마을에 의해서 규제받음은 물론, 그 밖에 많은 경작강제(耕作强制)가 과해진다.

뿐만 아니라, 어항의 축조·정비, 어선 예인, 어장 관리 등 어촌에서는 공동노동의 기회가 극히 많고 그때마다 제도적 행동이 요구된다. 이와 같은 경향은 어촌의 어업의존도가 높고 어업의 동질성이 높을수록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인류에 의한 수계의 개발·이용은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오랜 것임은 굳이 입증할 필요가 없다. 모건(Morgan,L.H.)은 어로생활의 시작을 ‘야만중위상태’로 보고 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어업에 천혜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는 한반도에 정착한 우리 민족은 일찍부터 하천 및 해안에 풍부한 어패류를 잡아 먹고 살았다. 따라서 어업은 그들의 중요한 생업의 일부가 되었으리라고 쉽게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어업이 농업에서 분화되고 전업 어민이 탄생하여 사회계층을 형성하기 시작한 것은 고려시대부터라고 짐작한다. 특산물의 생산지를 나타내는 소(所)가 어촌에도 붙여져 ‘어량소(漁梁所)’·‘곽소(藿所)’·‘망소(網所)’ 등 주어종농(主漁從農) 내지 순어(純漁)의 생업형태를 갖는 촌락이 이때부터 나타나기 때문이다.

어민의 존재형태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은 어장의 소유형태와 어업기술, 국민들의 어업관이 아닌가 한다. 우리 나라에 동력선이 들어온 것은 1919년의 일이다.

이것은 그 전의 우리 어업이 주로 배타적 관리(所有)가 가능한 수역에서 이루어졌음을 뜻한다. 원초적인 어장의 소유형태는 마을사람들이 공동으로 하는, 이른바 공동체 소유형태였다.

여기에 농지의 사유화와 더불어 어장도 점차 왕실·권문세가들에 의해 사유화되기 시작하였으나, 농지의 사유화가 확산, 정립된 뒤에도 어장은 여전히 공유가 지배적인 소유형태였다. 어장은 분할할 수 없고, 그 생산이 공동노동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특질 때문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세도가들은 이와 같은 공동체적 점유·이용 형태를 그대로 온존시킨 채 법형식상 소유권만을 갖고 어민을 지배하게 된다. 수산물은 공물(貢物)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수탈의 도는 훨씬 심했고, 거기에 어업 및 어민관(漁民觀)마저 낮아 천민시되고 있었다.

수산물은 아무리 풍족해도 그것만으로는 자족할 수 없는 산물이므로, 교환은 필수요건이다. 그런데 수산물은 상품 성격이 약하여 교환할 때 불리하기 마련이어서 전 근대 우리 어민은 천민으로서 빈곤의 악순환을 벗어날 수 없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광복과 더불어 어민의 존재 또한 크게 변모한다. 먼저 ‘뱃사람’에 대한 관념이 바뀌기 시작하였고, 어장 또한 부분적이나마 세도가의 강점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며, 어업기술의 향상으로 생산성이 올라갔기 때문이다. 수산물이 수출 주종상품 구실을 하자 어민의 존재도 빛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공업화의 진전과 더불어 어업은 점차 몰락하기 시작하였는데, 젊은 노동력과 어장은 줄어들고 남은 어장마저 오염되기 일쑤였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1965년 어민의 총수(어업종사자+가구원)는 127만 6000여 명이던 것이 1996년에는 33만여 명으로 31년 동안 1/4로 줄었으며, 실제로 어업에 종사하는 어업종사자는 같은 기간에 54만 6000여 명에서 17만 1000여 명으로 1/3로 줄고 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어민의 고령화현상이다. 1970년 총어민 중 60세 이상의 고령자는 70만 4000명으로 전체 어민의 6%에 불과하던 것이 1996년에는 20.2%로 크게 늘고 있다. 한편 실제로 어업생산에 종사하는 어업종사자는 60세 이상의 고령자가 1970년에는 5.6%이던 것이 1996년에는 24.3%로 늘고 있다.

반면에 15세∼29세의 젊은 노동력은 같은 기간에 32%에서 3.5%로 격감하여 어촌에서 젊은 어민의 모습을 보기가 어렵게 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어촌의 사회·경제·문화·교육 등 생활여건이 개선되고 밀려오는 값싼 외국수산물의 홍수에 대한 대책이 강구되지 않는다면,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되지 않을 수 없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참고문헌

『한국수산업사』(박구병, 태화출판사, 1966)
『한국수산사』(수산청, 1968)
『제2차총어업조사보고』(농수산부, 1980)
『한국어업경제사연구-어업공동체론-』(박광순, 유풍출판사, 1981)
『농림수산부 통계연보』(농림수산부, 1997)
『바다와 어촌의 사회경제론-한일비교분석-』(박광순, 전남대학교 출판부,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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