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1792년정조(正祖)가 광릉(光陵 : 세조 능) 행차 후 돌아오는 길에 양주관아 소재지인 유양리에서 3일간 머물면서 백성을 시무하며 민정을 살폈다. 이때 근처의 사대(射臺)에서 신하들과 함께 활을 쏜 뒤 잔치를 베풀었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해 양주목사 이민채(李敏采)가 비를 세웠다.
비신은 간략하게 조각한 귀부 위에 세워져 있다. 앞면에는 임금이 활을 쏘았던 곳이라 하여 ‘어사대(御射臺)’라는 큰 글자를 새겼다.
뒷면의 비문에는 정조가 정조가 이곳에 머물게 된 사실과 사대에서 10순(巡 : 50개)의 화살을 쏴서 49개가 명중한 내용을 기록하였다. 비는 대리석으로 만들었는데 규모는 높이 140㎝, 넓이 55㎝, 두께 23㎝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