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영’이라고도 읽는다. 881년(헌강왕 7) 가을 왕이 성주사(聖住寺)에 있던 국사(國師) 무염(無染)을 경주로 불러 예우를 하였다.
그 뒤 무염이 돌아갈 때에는 나라 안의 시(詩)를 연마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염을 전송하는 시를 짓게 하였다. 이 때 소판(蘇判) 억영은 재가제자(在家弟子)로서 맨처음 시를 지었다고 하나, 그 시는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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