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승려였던 연담 유일의 시문집으로, 총 305수의 시와 소(疏)·기(記)·법어(法語)·시중(示衆)·서(序) 등의 문이 실려 있다.
『연담대사임하록(蓮潭大師林下錄)』은 연담이 생존 중에 간행을 준비하였음을 알 수 있는데, 그 근거는 1764년(영조 40)에 쓴 연담의 자서(自序)가 있기 때문이다. 연담이 쓴 자서에 의하면, 연담이 생전에 여러 사람들과 주고받은 시나 직접 쓴 문장을 편집해 놓았다고 한다.
또 1796년(정조 29)에 춘추관 기사관이었던 안책(安策)이 쓴 서문과, 이듬해인 1797년에 수관거사 이충익(李忠翊)이 쓴 서문, 1798년에 해좌노인 정법정(丁法正)이 쓴 서문 등이 실려 있다. 이렇게 생존 중에 연담 스스로가 준비한 문집을 연담이 입적한 후인 1799년에 제자인 계신(誡身)에 의해서 전라도 해남의 미황사(美黃寺)에서 간행되었다. 판목이 현재 해남의 대흥사에 전한다.
4권 2책. 목판본. 『한국불교전서』 제10책에 수록되어 있다.
연담 유일은 조선 후기의 대강백(大講伯)으로서, 특히 화엄에 정통하였으며 『화엄사기(華嚴私記)』·『기신사족(起信蛇足)』·『염송착병(拈頌着柄)』 등의 저술을 남겼다. 『연담대사임하록』 권1에는 시 144수, 권2에는 시 161수가 수록되어 있다. 권3에는 소(疏) 9편·기(記) 6편·서(序) 8편·상량문(上樑文) 4편·제(題)와 문(文) 16편·찬(贊) 3편이 수록되어 있고, 권4에는 찬(贊) 13편·법어(法語) 6편·시중(示衆) 8편·서(書) 11편이 수록되어 있다.
내용을 보면, 시 가운데는 사찰을 방문하여 감회를 읊은 것이나 사대부나 법우들과 교유하면서 지은 시들이 많다. 사대부와 교유한 시로서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었던 윤숙(尹塾, 1734∼1797)과 주고받은 「차윤한림입장춘동운(次尹翰林入長春洞韵)」·「우차윤한림(又次尹翰林)」·「차윤한림입춘시(次尹翰林立春詩)」가 있다. 이 시들은 윤숙이 강진(康津)에 유배되었을 때 지은 것으로 보인다. 또 「조사백이시기여위승반권환속고봉화(曺詞伯以詩譏余爲僧反勸還俗故奉和)」에서는 유학자인 조사백이 환속을 권한 데 대해서 자신이 승려가 된 뜻, 불도(佛道)에 입문하기를 권하는 내용 등을 간략하게 시로서 읊고 있다.
문 가운데는 많은 소·기·서 등이 포함되는데, 소로는 「송광사영해화상대회소(松廣寺影海和尙大會疏)」·「선암사상월화상대회소(仙巖寺霜月和尙大會疏)」 등이 실려 있다. 서 8편 가운데는 「심성론서(心性論序)」가 들어 있어 주목된다. 『심성론』은 묵암 최눌(黙庵最訥, 1717∼1790)이 저술한 것으로서, 조선 후기의 불교교단에서 심성 논쟁을 촉발한 저서이기도 하다.
또 권4에 실려 있는 「상한릉주필수장서(上韓綾州必壽長書)」에서는 불서 중의 인과응보설을 의심하고 배척하는 당시 유학자들의 비판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는데, 먼저 불법의 광대한 도리를 말한 다음 유학자들의 비판을 유학의 학설과 대비하여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연담대사임하록』은 조선시대의 통상적인 문집 간행과는 달리 저자 자신이 생전에 간행을 준비한 것이 특징이다. 또한 내용적으로는 격조 있는 시작품이 실려 있을 뿐만 아니라, 유학자들의 불교 비판에 체계적으로 반박하는 등 조선 후기의 대강백으로서의 위상을 잘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문집의 규모에 비해 서간이 유독 적은 것이 아쉬운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