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5년(고종 22) 우리나라 최초로 설립된 현대식 병원인 광혜원[廣惠院, 제중원(濟衆院)]을 모태로 하고 있다. 교육기관으로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과 의과대학·치과대학·간호대학·의학도서관이 있다.
진료기관으로 세브란스병원, 영동세브란스병원, 인천세브란스병원, 용인세스란스병원의 4개 병원과 치과대학병원, 암센터, 재활병원, 심장혈관센터, 광주세브란스정신병원, 안·이비인후과병원 등 6개 전문병원을 갖추고 있다.
연세대학교 의무부총장이 의료원장을 겸하고, 재정적으로 독립 운영되고 있으며,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학교 옆에 위치해 있다.
조카인 민영익(閔泳翊)을 성공적으로 치료한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알렌(Allen,H.N.)이 고종황제로부터 현대식 병원 설립 허가를 받아 1885년 4월 10일 개원한 광혜원이 연세의료원의 뿌리이다.
광혜원은 갑신정변의 주역으로 참여했다가 살해된 홍영식(洪英植)의 집에 만들어졌는데, 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자리이다. 광혜원은 개원 2주 후인 4월 23일 제중원(濟衆院)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당초 대한제국 정부와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 간의 협력기관으로 시작된 이 병원은 1886년 3월 29일에 의학교육부를 부설하여 의학생 16명을 선발, 한국 최초로 서양 의학교육을 시작하였으며, 1908년 김필순을 비롯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 의사 7명을 배출하였다.
1894년 4월에는 왕립병원인 제중원의 운영권을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가 인수하였다. 1899년 4월 우리 나라 최초의 서양 의학교인 제중원의학교가 설립되었으며, 에비슨(Avison,O.R.)이 초대 교장으로 취임하였다.
1900년 미국의 사업가 세브란스(Severance,L.H.)가 병원 신축을 위해 거액을 기부, 1904년 2월 3일 남대문 밖 복숭아골(도동, 구 서울역전 캠퍼스)에 병원이 신축되었고, 이름도 세브란스병원으로 바뀌었다.
그 뒤 세브란스병원의 이름은 계속되었으나 제중원의학교의 명칭은 사립 세브란스의학교·사립 세브란스연합의학전문학교·세브란스연합의학전문학교로 바뀌었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아사히의학전문학교(旭醫學專門學校)로 명칭이 변경되었다가 광복과 함께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로 명칭이 환원되었고, 1947년 세브란스의과대학으로 승격되었다. 1957년 1월 5일 연희대학교와 세브란스의과대학이 연세대학교로 통합된 뒤 연세대학교의과대학이 되었다.
연세대학교로 통합된 뒤 병원과 의과대학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1962년 8월 의과대학과 세브란스병원을 합쳐 연세대학교의료원으로 발족시켰다. 치과대학은 미국 북장로교에서 파송한 치과의사 쉐프레이 박사(Scheifley,W.G.)가 1915년 세브란스연합의학교에 개설된 치과를 시초로 하여 1967년 12월에 설립되었다.
간호대학은 1906년 9월 한국 최초로 설립된 세브란스 간호원양성소에서 출발하여 1968년 12월 지금의 간호대학으로 발전하였으며, 연세대 보건대학원은 1977년에 설립되었다. 1983년에는 지역의료 전달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인천산업병원과 영동병원 및 영동병원의 용인 및 광주 분원을 개원하였다.
1985년에는 각각 그 명칭이 오늘의 인천세브란스병원과 영동세브란스병원, 용인세브란스병원으로 바뀌었으며, 1993년에는 정신병 전문병원인 광주세브란스정신병원이 개원되었다.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에는 국민건강증진연구소가, 의과대학에는 유전과학연구소를 비롯한 26개의 연구소와 국내 최대의 임상의학연구센터가 설치되어 있다. 치과대학에는 구강과학연구소를 비롯한 5개 연구소가, 간호대학에는 3개의 연구소가 연구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한편, 원주의과대학은 1978년 설립된 이후 연세의료원 산하기관으로 있었으나 10년째인 1987년에 보건과학대학과 함께 원주캠퍼스로 독립되었다.
1998년 연세의료원에는 교수직 510명과 수련직 1,274명, 간호사를 비롯한 일반직 4,293명 등 총 6,077명의 교직원들이 연세의료원의 설립 정신인 개화·기독·협동정신을 바탕으로 의학의 교육과 연구 및 진료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