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남우수리스크성지는 옌하이저우〔沿海州〕 라즈돌나야강 유역에 있는 금나라 시대의 평지성이다. 성의 평면은 사다리꼴에 가깝고, 둘레 길이는 약 4.2㎞이다. 성벽은 시루떡 모양으로 정연하게 판축(板築)하여 쌓았다. 성벽 둘레로 못을 조성하였고, 성벽과 모서리에는 치와 각루를, 문지(門地)에는 옹성(甕城)을 각각 시설하였다. 한때 발해 솔빈부(率賓府)의 치소(治所)로 추정된 적이 있으나, 발굴 조사 결과 금나라 시대 유적임이 밝혀졌다. 다만 주변에 다수의 발해 유적이 분포하고 있어 발해 문화층이 존재할 가능성은 있다.
연해남우수리스크성지(沿海南우수리스크城址)는 일찍이 발해 솔빈부의 치소로 지목된 적도 있다. 하지만 이 유적에 대한 1884년, 1954년, 1993년, 2000년도의 발굴 조사에서 발해의 유물이나 유구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E.V. 샤브꾸노프(E.V. Shavkunov)가 1993년도 발굴 조사에서 시굴 트렌치의 가장 아래에서 발견한 돌림판이나 물레 사용 흔적의 윤제토기(輪製土器) 조각 2점을 발해의 것으로 주장한 적이 있으나,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하였다. 이 유적에서는 다수의 금나라 시대 유물이 발견되었고, 1993년도 한 · 러 공동 발굴 조사에서는 절터와 함께 고려청자 조각도 1점 출토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남우수리스크성이 금나라 시대의 성터로 인식되어 있는 반면, 동녕대성자고성이 발해 솔빈부의 치소로 인정되고 있다. 이와 함께 서우수리스크성은 물론, 남우수리스크성과 라즈돌나야강을 사이에 두고 자리하는 크라스노야르성까지 모두 발해 이후의 성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남우수리스크성은 옌하이저우 우수리스크 시내에 자리한다. 성의 남쪽 약 1.5㎞ 거리에는 라즈돌나야강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며, 서북쪽 약 1.3㎞ 거리에는 서우수리스크성이 있다.
남우수리스크성은 평면 모양이 사다리꼴에 가까우며, 네 모서리가 대체로 방위 방향이고, 성벽의 둘레는 약 4.2㎞이다. 성벽은 원래 5~6m 높이였으나, 현재는 거의 모두 파괴되어 남아 있지 않고, 동벽과 남벽이 만나는 모서리 부분 가까이에 동벽이 일부 잔존할 뿐이다.
이곳에는 성벽의 단면이 노출되어 있는데 황회색과 흑색의 흙을 겹겹이 일정 두께로 판축하여 쌓은 것이 잘 관찰된다. 성벽 바깥에는 성 주위를 둘러 판 못이 시설되어 있었고, 북벽과 동벽, 서벽에는 옹성 문지가 있었다. 각 성벽에는 치(雉)가 일정 간격으로 시설되어 있었으며, 네 모서리에는 각루가 있었다.
지금의 우수리스크 지역은 발해와 요나라 때에는 솔빈부(率賓府), 금나라 때에는 휼품로(恤品路)에 각각 속하였다. 우수리스크는 요나라 시기에 소빈(蘇濱) 혹은 속빈(速頻)으로, 명나라 때에는 쌍성위(雙城衛), 청나라 때에는 부이단(傅爾丹) 혹은 쌍성자(雙城子)라고 각각 불리었다. 쌍성위 혹은 쌍성자라는 명칭은 남우수리스크성과 서우수리스크성이 나란히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라즈돌나야강은 수분하(綬芬河)의 러시아 명칭이다.
우수리스크 일대에 발해 시기의 취락유적이 수없이 많이 분포하고 있고, 또 가까운 거리에 보리소브카, 코르사코브카, 아브리코스, 코프이토 등 발해 사찰이 집중해서 분포하고 있는 점을 고려한다면, 남우수리스크성이나 서우수리스크성에 발해의 문화층이 발견될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