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부터 전해 오는 당악정재(唐樂呈才) 중의 하나. 조선 말기까지 오랫동안 전승되어 온 춤이다. 연화대는 <자지무 柘枝舞>의 다른 이름으로 고려시대 상연할 때의 특색을 살려서 붙인 이름이며 자지무란 중국 자지 지방에서 나온 춤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춤의 내용은 봉래(蓬萊)에서 내려온 두 동녀(童女)가 연꽃술로 태어났다가 군왕의 덕화(德化)에 감격하여 가무로써 그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다. 그런데 의복과 모자를 조촐하게 차린 두 동녀가 모자에는 금령(金鈴)을 달아 장단에 맞추어 움직이면 소리가 나게 하고, 두 개의 연꽃 속에 감추어둔 동녀를 꽃이 터진 뒤에야 보이게 하고 있다.
≪고려사≫ 악지와 ≪악학궤범≫에는 동녀 2명이 추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순조 무자(戊子) ≪진작의궤 進爵儀軌≫에는 6명으로, 순조 기축(己丑) ≪진찬의궤 進饌儀軌≫에는 4명으로 되어 있다.
고종 계사(癸巳) ≪정재무도홀기 呈才舞圖笏記≫에는 원무(元舞)는 4명이지만 협무(挾舞)로 전대(前隊) 6명, 중대(中隊) 6명, 후대(後隊) 6명을 더하여 화려하게 꾸미고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 <아박 牙拍>·<무고 舞鼓> 등 다른 정재와 마찬가지로 <연화대>도 시대와 장소에 따라 그 구성인원이 다양함을 알 수 있다.
반주로 쓰이는 음악은 조선 성종 때까지는 오직 당악만을 사용하였으나, 조선 말기에 와서는 향악화된 <보허자령 步虛子令>을 사용하였다. 이 춤도 여기(女妓) 복식과 무동(舞童) 복식이 각각 다르다. 순조 기축 ≪진찬의궤≫에 나타난 무복과 장식을 보면, 동기(童妓)의 복식은 머리에는 동령(銅鈴)을 단 합립(蛤笠)을 쓴다.
유소(流蘇)를 늘어뜨리고 황홍장미(黃紅薔薇)를 꽂는다. 초록단의(草綠丹衣)·홍초말군(紅綃襪裙)·홍라상(紅羅裳)을 입고 금화홍라대(金花紅羅帶)를 띠고, 백한삼(白汗衫)을 붙들어 매고 진홍단혜(眞紅緞鞋)를 신는다.
무동은 연화합립과 금주모(金珠帽)를 쓰고, 녹라포(綠羅袍)·백질흑선중단의(白質黑縇中單衣)·홍질남선상(紅質藍縇裳)에 학정대(鶴頂帶)를 띠고 비두리(飛頭履)를 신는다. <연화대>의 여러 무복과 장식은 ≪악학궤범≫에 자세히 전한다. 이 춤의 무보(舞譜)는 ≪고려사≫악지·≪악학궤범≫·≪정재무도홀기≫ 등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