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은 경상북도 김천시 · 상주시, 서쪽은 충청남도 금산군, 남쪽은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북쪽은 옥천군에 접하고 있다. 동경 127°35′∼128°03′, 북위 36°00′∼36°18′에 위치한다. 면적은 845.61㎢이고, 인구는 5만 693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10개 면, 230개 행정리(131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읍 계산리에 있다.
이 군은 대부분이 화강편마암 지대로서 석회반암과 규장석은 용산면 · 학산면 · 양산면 등에 소지역으로 산재해 있고 중생대 지층은 용산면 · 영동읍 · 양강면에 분포하며, 화강암은 심천면 · 양산면 · 용산면 일대의 일부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소백산맥이 북동부에서 남동부로 달리고 있어 남동부는 높고 북서부는 낮은 지형을 이루고 있다.
북동부에 백화산(白華山, 933m) · 지장산(芝藏山, 772m) · 추풍령(秋風嶺, 548m) · 눌의산(訥誼山, 743m), 남동부에 황학산(黃鶴山, 1,111m) · 민주지산(眠周之山, 1,242m) · 삼도봉(三道峰, 1,177m) · 각호산(角虎山, 1,176m) 등이 솟아 있고, 서쪽에는 마니산(摩尼山, 640m) · 성주산(聖主山, 629m) 등을 중심으로 저산성 산지가 발달해 있다.
영동분지는 영동읍을 중심으로 동북부의 백마산(白馬山, 532m), 동남부의 봉대산(烽臺山, 654m), 남부의 삼봉산(三峰山, 931m) · 천만산(千萬山, 943m) · 천마령(天摩嶺, 926m), 서쪽의 노고산(老故山, 434m) 등으로 둘러싸인 침식분지이다. 황간분지는 북부의 포성산(933m) · 주행치(周行峙), 동부의 봉대산(654m), 서남부의 백마산(白馬山, 533m) 등으로 둘러싸인 침식분지로서 대부분이 준평원을 이루고 있다.
하천은 주곡천(主谷川) · 삼봉천(三峰川) · 양정천(楊亭川) · 괴목천(槐木川)을 합류한 영동천(永同川)이 군내에서 가장 넓은 침식평야를 이루고 있다. 난곡천(蘭谷川) · 석천(石川) · 서송원천(西松院川)이 영동천과 합류하는 곳에는 좁은 충적평야가 발달되어 있다.
금강 분류가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에서 발원하여 무주군 무주읍 부근에서 남대천(南大川)을 합류하고 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에서 양산면 가선리로 동류하면서 호탄리에서 호탄천(虎灘川), 원당리에서 원당천(元塘川), 양강면 묵정리에서 시항천(矢項川), 심천면 초강리에서 영동천을 합류해 북류하다가 장동리 부근에서 옥천군 이원면 백지리로 흘러든다.
연평균 기온 11.8℃, 1월 평균기온 -3.5℃, 8월 평균기온 25.9℃이며, 연 강수량은 1,102㎜이다. 연교차가 심한 대륙성기후를 나타내며, 여름철의 집중호우로 홍수의 피해를 입기도 한다.
구석기시대의 유적이 발굴된 적은 없지만 황간면 원촌리 등에서 뗀석기[打製石器]가 발견되었다. 신석기시대의 유물 · 유적은 군 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영동읍 당곡리 양촌고인돌은 이 지역에서는 드물게 발견되는 북방식[卓子式]으로서, 중부 내륙지방의 고인돌문화를 밝힐 수 있는 자료로 생각된다.
이곳은 삼한시대에 마한에 속했으며, 삼국시대에는 신라와 백제의 국경선으로 두 나라의 각축장이 되었다. 현재의 양산면을 통해 흐르는 금강 상류를 중심으로 한 양산(陽山)이 신라와 백제의 국경선으로, 대왕산은 신라의 영토였고, 비봉산(飛鳳山)의 조천성(助川城)은 백제의 전초기지였다.
신라는 조천성을 공격하기 위해 655년(무열왕 2) 김흠운(金歆運)을 이곳에 파견했으나, 그의 군대는 밤에 백제군의 기습을 받아 김흠운은 장렬하게 최후를 마쳤다.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양산가」를 지어 그를 추모했는데 이것이 『삼국사기』에 전해오는 「양산가」의 유래이다.
660년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정벌하기 위해 신라의 김유신(金庾信) · 품일(品日) · 흠춘(欽春)이 각각 황산(黃山: 지금의 連山)으로 진군할 때 품일은 아들 관창(官昌)을 데리고 이곳 금성산 낙화대(落花臺)에서 잠시 머물렀다고 한다. 며칠 뒤 관창은 백제의 계백(階伯)장군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670년(문무왕 10) 이곳 사람들이 낙화대 뒤에 있던 절을 중수해서 품관사(品官寺)라 하고, 그 산을 품관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당시 이곳의 지명은 길동(吉同)이었는데 경덕왕 때 영동군으로 고치고 상주에 예속시켰으며, 황간(黃澗)과 양산을 영현으로 두었다. 황간은 본래 소라현(召羅縣)으로 불리다가 경덕왕 때 황간이라고 고쳤다.
995년(성종 14) 영동군을 계주(稽州)로 개칭하고 자사(刺史)를 두었다가 1005년(목종 8) 폐지하였다. 1018년(현종 9) 계주를 경상도 상주목 관할 아래 두었다가 1172년(명종 2) 처음으로 감무를 설치하였다. 1176년 현령으로 승격시켰고, 뒤에 감무를 두었다가 폐하였다.
황간은 1018년 경상도 경산부(京山府)에 속하게 하고 뒤에 감무를 두었다가 1354년(공민왕 3) 다시 경산부에 속하게 했다. 1390년(공양왕 2) 감무를 설치했다가 곧 혁파하였다.
1361년 홍건적이 침입하자 왕이 마니산성(摩尼山城)으로 피난하였다. 이때 누교리에서 국청사(國淸寺)까지 칡넝쿨로 다리를 놓아 공민왕은 그 다리를 밟고 국청사에 가서 국태안민을 빌었다. 국청사는 공민왕이 다녀간 뒤 왕이 나라의 평안을 빌었다 하여 영국사(寧國寺)로 고쳐 불렀으며, 다리를 만들어 건너간 마을을 누교리(樓橋里)라 부른다.
1413년(태종 13) 계주를 영동으로 개칭하고 영동 · 황간에 각각 현감을 두었으며, 경상도로부터 충청도로 이관해 청주목에 속하게 했다. 황간은 1414년 청산(靑山)과 합쳐서 황청현(黃靑縣)이 되었다가 2년 뒤에 분리되어 현감이 임명되었다.
우리나라 3대 악성(樂聖)의 한 사람인 박연(朴堧)은 이곳 출신으로 세종 때 왕명을 받들어 석경을 만들어 관습도감제조(慣習都監提調)가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장지현(張智賢)은 의병을 일으켜 추풍령에서 적을 물리쳤다.
1593년(선조 26) 현감 박몽열(朴夢說) 등이 진주 왜적과의 싸움에 나가 한 사람도 살아오지 못했으므로, 황간현을 없애고 청산현에 부속시켰다가 1621년(광해군 13) 독립시켰다. 조선시대의 인물로는 세조 때 쇠잔해가는 불교를 중흥시키는 데 공을 세운 신미대사(信眉大師, 慧覺尊者)와 조선 문장 8대가 중의 한 사람인 김수온(金守溫) 등이 있다.
1895년 공주부 영동군 · 황간군으로 승격되었다가, 1896년 충청북도 영동군 · 황간군이 되었다. 1906년 옥천군 학산 · 양산 · 용화 등 3개 면이 영동군으로 편입되었다. 1914년 황간군과 경상북도 상주군의 일부가 영동군으로 편입되어 현재의 영동군이 되었다.
1919년 3월 2일부터 독립선언서가 배포되어 3월 4일 영동읍에서, 3월 30일과 4월 3일 학산면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는 등 곳곳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근대의 인물로는 을사조약을 반대하다가 자결한 이건석(李建奭)과 송병선(宋秉璿) · 송병순(宋秉珣),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약한 홍진(洪震) 등이 있다. 1940년 11월 영동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73년 7월 1일 영동읍 고자리와 매곡면 돈대리가 상촌면에 편입되었다. 1989년 1월 1일 매곡면 광평리가 황간면에 편입되었다. 1990년 12월 31일에는 기초(군) 자치제가 실시되었고, 1991년 7월 1일에는 황금면을 추풍령면으로 명칭 변경하였다.
용산면 구촌리에서 돌칼과 돌화살촉이 발견되었고, 심천면 금정리에서도 마제석기와 빗살무늬토기 조각이 발견되었는데, 이들은 청동기시대 혹은 그 이전의 유물이다.
황간면 원촌리의 동굴유적과 고인돌, 영동읍 당곡리 · 심천면 고당리 · 매곡면 유전리의 고인돌, 용산면 부상리의 선돌이 있다.
삼국시대의 유적으로는 영동읍의 영동 부용리 고분(충청북도 기념물, 1981년 지정), 용산면의 영동 가곡리 고분(충청북도 기념물, 1994년 지정)과 말무덤[馬塚]이 있다.
이 지역은 신라와 백제가 국경을 마주했던 곳이어서 산성과 성터가 많다. 영동읍 부용리의 부용성(芙蓉城, 일명 永同邑城)과 주곡리 성지, 용산면의 신항리 성지, 황간면의 황간읍 성지와 우매리의 백화산성(白華山城), 양강면 지촌리와 용화면 자계리의 경계에 노고성(老姑城), 용화면의 자계리 성지, 양강면의 지촌리 성지, 학산면 서산리와 박계리의 대왕산성(大王山城, 일명 大陽山城 · 助川城), 양산면 가곡리의 비봉산성지(飛鳳山城址), 죽산리의 마니산성지(摩尼山城址), 원당리 성지, 심천면 용당리의 장군봉성지(將軍峰城址) 등이 있다.
불교유적으로는 용산면 신항리의 석은사지(碩恩寺址), 황간면 용암리 사지, 원촌리의 심묘사지(深妙寺址), 추풍령면의 죽전리 사지가 있다. 현존 사찰로는 영국사(寧國寺)와 반야사(般若寺) 등이 있다.
양산면 누교리의 영국사에는 영동 영국사 대웅전 · 영국사 삼층석탑(보물, 1971년 지정) · 영국사 망탑봉 삼층석탑(보물, 1971년 지정) · 영국사 승탑(보물, 1971년 지정) · 영국사 원각국사비(보물, 1971년 지정) · 영동 영국사 석종형 승탑 · 영동 영국사 구형승탑 등이 있다. 영국사 대웅전은 1980년, 영동 영국사 석종형 승탑은 1996년, 영동 영국사 구형승탑은 1996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황간면 우매리의 반야사에는 영동 반야사 삼층석탑(보물, 2003년 지정)이 있다. 그 밖에 영동읍의 영동 심원리 승탑(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2년 지정), 양산면 가곡리의 이리사지(伊利寺址)삼층석탑, 용산면의 영동 신항리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1989년 지정), 추풍령면의 신안리 석불입상 등이 있다.
유교 유산으로는 영동읍 부용리의 영동향교(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0년 지정), 황간면 남성리의 황간향교(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0년 지정)가 있다.
서당과 사우로는 상촌면 임산리의 영모재(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94년 지정)와 영동 삼괴당(충청북도 기념물, 1978년 지정), 양강면 두평리의 영동 자풍서당(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0년 지정), 심천면 각계리의 영동 김자수 고가(충청북도 기념물, 1977년 지정), 고당리의 난계사(충청북도 기념물, 1976년 지정)와 세덕사(世德祠)가 있다.
또한 매곡면 노천리의 사로당(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6년 지정) · 흥학당(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6년 지정), 옥전리의 무첨재(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93년 지정), 추풍령면 사부리의 충절사, 영동읍 부용리의 노후사(盧侯祠), 학산면 지내리의 청절사(淸節祠) 등이 있다. 청절사는 조선 초의 문신 정수충(鄭守忠)의 영정을 봉안해 제향하고 있는 사우로 1700년경에 창건되었다.
1984년 중요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된 영동읍 계산리의 영동 규당 고택, 심천면 초강리의 영동 소석 고택(중요민속문화재, 1984년 지정)이 있다. 또한 양강면 괴목리의 영동 김참판 고택(중요민속문화재, 1984년 지정)과 영동 묵정리 고가(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5년 지정), 용산면의 영동 가곡리 고가(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5년 지정, 학산면 봉림리의 영동 성장환 고택(중요민속문화재, 1984년 지정) 등이 있다.
황간면 남성리의 영동 가학루(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76년 지정), 양강면 남전리의 빙옥정(氷玉亭), 묵정리의 삼호정(三乎亭), 심천면 금정리의 호서루(湖西樓)와 관어대(觀魚臺), 양산면 봉곡리의 금호루(錦湖樓)와 채하정(彩霞亭), 송호리의 여의정(如意亭), 용산면 시금리의 침강정(枕江亭), 영동읍 매천리의 읍청루(挹淸樓), 1976년 충청북도 민속문화재(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된 영동 당곡리 십이장신당, 상촌면 하도대리의 영동 화수루(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8년 지정), 유곡리의 고반대(考槃臺) 등이 있다.
묘와 비로는 심천면 고당리의 영동 박흥생 묘비(충청북도 기념물, 1993년 지정) · 박연 묘소(충청북도 기념물, 1987년 지정)와 신도비, 용산면 한곡리의 김수온 묘소(충청북도 기념물, 1987년 지정), 황간면 원촌리의 영동 송시열 유허비(충청북도 기념물, 1977년 지정)가 있다.
또한 추풍령면 사부리의 영동 추풍령 전적 및 장지현 순절비(충청북도 기념물, 1994년 지정), 1986년 충청북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양산면 봉곡리의 이의정 유적, 양강면 남전리의 김영이 · 장비 단소(충청북도 기념물, 1993년 지정) 등이 있다.
용산면에는 영동 신항리 상여(충청북도 민속문화재, 1994년 지정)가 보존되어 있다.
무형유산으로는 1996년 충청북도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로 지정된 영동읍에 영동 설계리 농요가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영동읍 영동 매천리의 미선나무 자생지(천연기념물, 1990년 지정)가 있다. 양산면 누교리 영동 영국사의 은행나무(천연기념물, 1970년 지정)는 수령이 500년, 높이가 18m인데 서쪽 가지가 땅에 닿아 뿌리를 내렸다. 봉곡리에는 수령 450년, 높이 30m인 은행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금강의 어름치(천연기념물, 1972년 지정)를 양강면에서 볼 수 있다.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영동향교와 황간향교가 있었다. 영동읍 부용리의 영동향교는 선조 때 영동현에 설립되었으며, 1660년(현종 1)에 고읍(古邑)의 성 내로 이전하였다. 1676년(숙종 2)에는 영동읍 계산리 구교동으로 이전했다가 1754년(영조 30)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황간면 남성리에 있는 황간향교는 1394년에 지방의 유림들을 위해 세웠으며, 1901년에 중수하였다. 1611년(광해군 3) 매곡면에 세워진 초강서원(草江書院)은 1676년에 심천면 초강리로 이건하였다. 1637년(인조 15) 양산면 수두리 대곡에 봉암서원(鳳巖書院)이 설립되었으나 1871년(고종 8)에 철폐되었다.
1725년(영조 1) 매곡면 수원리에 세워진 송계서원(松溪書院)은 흥선대원군에 의해 철폐되었다가 안삼준(安三俊) · 박제원(朴濟元) 등 지방유림들에 의해 재건되었고, 1954년에 송계서원유허비(松溪書院遺墟碑)와 보호각(保護閣)을 설립하였다.
1670년(현종 11) 영동읍에 설립된 화암서원(花巖書院)과 1711년 양산면 호탄리에 세워진 호계서원(虎溪書院)은 고종 때 철폐되었다. 1717년 황간면 원촌리에 설립되어 1726년에 사액된 한천서원(寒泉書院)도 고종 때 철폐되고 한천당(寒泉堂)만 남아 있다.
서당으로는 1413년(태종 13)에 김종경(金宗敬)이 설립한 풍천서당(楓川書堂)이 용산면 용산리에 있다. 그리고 조선 초에 건립되었다는 자풍서당(資風書堂)이 양강면 두평리에 있다.
자풍서당은 1614년(광해군 6) 정구(鄭逑)가 이곳에 머무르며 자법정풍(資法正風)으로 강학을 장려했다는 뜻으로 자풍서원이라 했다고 한다. 중종 연간인 16세기 중기에 심천면 각계리에 건립된 선지당(先志堂)은 경주김씨의 교학서당으로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906년에 사립명신학교(私立明新學校)가 개교해 1911년에 황간공립보통학교로 개칭되었는데 지금의 황간초등학교의 전신이다. 1908년에 지방유지들에 의해 사립계산학교(私立稽山學校)가 개교되었다가 1909년에 사립보통학교로, 1910년에 공립보통학교로 변경되어 교명을 영동공립보통학교로 개칭했는데, 지금의 영동초등학교 전신이다.
1910년에는 조양공립보통학교가 개교되었다. 중등교육기관으로는 1943년에 영동읍에 영동공립실과여학교가 개교되었다. 교육기관으로는 2015년 현재 초등학교 15개교, 중학교 9개교, 고등학교 5개교와 유원대학교가 있다.
시청각교육센터와 군립도서관, 영동문화원이 있어 군민들의 교육 · 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으며, 2004년에는 복지회관과 청소년회관 신설되었다. 또한 매년 난계예술제(蘭溪藝術祭)를 개최해 박연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이 고장의 민속놀이로는 윷놀이 · 널뛰기 · 줄다리기 · 지신밟기 · 그네뛰기 · 호미씻기 등이 있다. 지신밟기는 정월 보름에 마을 농악대가 집집마다 다니면서 집터를 눌러주며 한바탕 노는 것인데, 쌀이나 돈을 거두어 농악에 쓰이는 풍장을 구입 · 수리하는 비용으로 쓴다.
호미씻기는 7월 백중 무렵 김매기가 다 끝나고 호미를 씻어두는 행사로, 마을사람들이 모여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하며 풍장을 치면서 즐겁게 논다.
추풍령면 웅북리웅이산(熊耳山)에는 곰을 수호신으로 모신 웅신당이 있어 해마다 마을에서 동제를 지낸다. 영동읍 당곡리에는 중국 『삼국지』에 나오는 관운장을 주신으로 하여 12장군을 모신 12장신당이 있어 매년 동제를 지낸다.
이 12장신당은 임진왜란 때 우리 나라에 명나라 군사를 이끌고 왔던 이여송(李如松)의 요청으로 세운 관왕묘(關王廟)의 하나이다. 본래는 영동읍 하고자(下高子)마을에 있다가 조선 말기에 폐쇄되었는데, 군수의 꿈에 관우(關羽)가 나타나 사당의 재건을 요청하므로 고곡리에 사당을 짓고 지명을 당곡리로 바꾸었다고 한다.
매곡면 노천리에서는 동구제를 지낸다. 동신은 호신(虎神)이다. 옛날 이 마을의 가난한 효자가 산신령의 도움으로 둔갑부적을 얻어 밤이면 호랑이로 변해 동네의 개를 잡아다가 부모를 봉양하였다. 그러나 마을사람들의 원성을 견디지 못한 부인이 부적을 태워 그 효자가 사람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죽어 호신이 되었다는 근원설화를 가지고 있다.
이 밖에도 산신제와 탑신제를 지내는 마을도 많이 있으며, 마을 가까이의 언덕이나 고갯길 가에 서낭당을 지어 수호신을 모시는 마을도 많다. 서낭당은 당집으로 된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고목이 서 있는 곳을 택해 그 곳에 금줄을 치고 오색헝겊을 달아 신령스럽게 꾸미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돌을 놓게 해 돌무더기가 쌓이면 이것을 서낭당이라 일컬으며 당산으로 모신다.
이 고장에는 「아기장수설화」 · 「장자못전설」 · 「희생효전설(犧牲孝傳說)」 · 「소금장수이야기」, 천마산(天摩山) 할미성의 유래를 전하는 「오뉘힘내기전설」 등 많은 설화가 전승되고 있다. 또한 박연 · 이서구(李書九) · 허적(許積) · 성삼문(成三問) · 임경업(林慶業) 등과 관련된 인물전설도 널리 전승되고 있다.
그 밖에 풍신(風神)인 「영동할미전설」이 전한다.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풍신을 영동(嶺東)할미 · 영동(靈童)할미 · 영등할미 등으로 부르는데, 이곳에서는 영동(永同)할미라 부르며 이 지방이 근원이라고 한다.
예전에 이 고장에 덕망 있고 효성이 지극한 이속(吏屬)이 있었는데, 늙은 어머니가 죽자 식음을 전폐하고 슬퍼하더니 그도 죽고 말았다. 그를 노모와 함께 장사 지내주었는데 그 뒤부터 바람이 거세게 불어 그칠 줄을 몰라, 원혼을 달래기 위해 그 이속의 무덤에 제사를 지냈더니 바람이 멈추었다. 그가 죽은 2월 초에는 늘 그 바람이 찾아온다.
이 고장은 우리나라 악성의 한 사람인 박연의 고향인 관계로 그에 대한 설화가 널리 퍼져 있다. 박연은 지극한 효자였다. 그가 어머니의 상을 당해 시묘를 하는데 언제나 호랑이가 지켜주었다. 어느 날 그 호랑이가 함정에 빠져 구원을 청하는 꿈을 꾸어 쫓아가 보니 이미 호랑이는 죽어 있었다. 박연은 어머니 무덤 아래 장사 지내주고 함께 제사지냈다고 한다.
또한 이 고장은 산이 험해 호랑이와 관련된 설화가 많다. 「호총전설(虎塚傳說)」은 호랑이 목에 걸린 비녀를 빼주고 명당자리를 구했다는 어느 효자의 이야기이다. 「양산가(陽山歌)」에 얽힌 전설은 신라와 백제의 격전을 말해주고 있다. 신라의 왕이 다녀갔다는 ‘어서실’, 백제의 장수가 칼로 쳐서 생겼다는 ‘소코샘’, 백제의 성왕이 전사했다는 ‘피골’ 등 지명유래전설이 이 고장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이 밖에 고려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거처하며 나라의 안녕을 빌었다는 「영국사전설」, 선녀가 목욕했다는 「강선대전설」, 왜적을 물리쳤다는 「천인성전설(千人城傳說)」 등이 전하고 있다.
이 고장의 대표적인 민요는 「양산가」이다. 그리고 농업노동요와 길쌈노동요 · 유흥민요도 두루 전승되고 있다. 「양산가」는 신라 태종무열왕 때 김흠운 장군이 지금의 옥천인 조천성에서 백제군의 기습을 받았으나 도망치지 않고 싸우다 죽으니 그 때 사람들이 지어 부른 노래라고 『삼국사기』에도 기록이 있다.
지금도 영동군 양산에는 “양산을 가세 양산을 가요/ 모링이 돌아서 양산을 가세/ 난들 가세 배잡아 타고/ 양산을 가세 양산을 가세……장끼가 논다 장끼가 논다/ 양산수 풀속에 우구리장끼가 놀아난다”라는 노래가 전한다.
농업노동요로는 「모심기소리」와 「논매기소리」가 전한다. 「모심기소리」는 선소리와 뒷소리 없이 몇 소절씩 번갈아가며 부른다. 또 논을 아시(처음)맬 때는 선소리꾼이 선소리를 메기고 여러 사람이 “잘하고 잘한다.”라는 뒷소리를 받는다.
“이논배미 얼른매고/ 장포배미로 넘어서세/ 잘하고 잘하네 에히야 산이가 잘하네/ 오늘해도 다되였네/ 골골마도 연기나네/ 잘하고 잘하네 에히야 산이가 잘도하네……난리는난다고 야단나고/ 시집못가 걱정이네/ 잘하고 잘하네 에히야 산이가 잘하네/ 삼단같이 기른머리/ 저놈손질에 다뜯기네……”는 대개 논을 아시맬 때 부르는 「논매기소리」이다.
“……우리들은 무삼죄로/ 어러구 저러구한다/ 오뉴월이라 삼복더위에/ 어러구 저러구한다/ 땅파기만 심을쓰나/ 어러구 저러구한다/ 에라농군들 한탄을마라/ 어러구 저러구한다/ 금년농사만 풍년이되면/ 어러구 저러구한다/ 우리에 영화가 여기에 있네/ 어러구 저러구한다/ 이논빼미 얼른매고/ 어러구 저러구한다/ 장수야빼미로 넘어가서……”처럼 이듬(두번째)맬 때는 “어러구 저러구한다”라는 뒷소리를 받는 「논매기소리」를 한다.
「베틀가」 · 「물레질노래」는 길쌈노동요인데, 이 고장에 다양하게 전승되는 「시집살이노래」도 길쌈하면서 자주 부르는 노래이다. “날가라네 날가라네 날가라네/ 삼베질쌈 못한다고 날가라요/ 삼베질쌈 못한건만 젤로쳐요/ 어린가장 길러논게 젤원통해요……” 같은 「시집살이노래」는 길쌈하면서도 불렀다.
이 밖에 「방아찧는 노래」, 「진주다리방구타령」이라고 일컫는 「담바구타령」을 비롯해 「창부타령」 · 「노랫가락」 · 「장타령」 · 「땅개비노래」 등이 전승되고 있다.
이 군의 토지 이용은 총면적 845.61㎢ 중 임야가 653.04㎢이다. 그 중 논 54.13㎢, 밭 51.63㎢, 과수원 6.89㎢를 나타내고 있어 경지 면적은 협소하며 논이 밭보다 약간 우세하다. 저수지로는 양강면의 산막(山幕)저수지, 추풍령면의 추풍령저수지, 학산면의 봉황저수지, 용산면의 미전(米田)저수지가 있어 주변의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제공하고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 · 겉보리 · 잡곡 · 콩 · 고구마, 채소류로는 수박 · 오이 · 토마토 · 가지 · 배추 · 상추 · 무 · 파 · 마늘, 과실류로는 사과 · 배 · 포도 · 감 등을 생산하고 있다. 특산물로는 호두 · 표고버섯 · 고추 · 마늘 등이며, 특히 감은 생산량이 많고 맛이 뛰어나서 표고버섯과 함께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가축으로는 돼지 · 닭 · 개 · 꿩을 사육하고, 임산물로는 호두 · 대추 · 도토리 · 약초를 생산하고 있다. 어업으로는 양강면 일대의 금강 유역에서 겸업으로 실시되어 관광객들에게 민물고기를 제공하고 있다. 광업은 1996년 이후로 급격히 감소하여 총 81개의 광구 중 16개만이 가행되고 있으며 연간 석회석 150,263M/T를 생산했으나 2007년 이후 생산되지 않는다. 영동읍에 영동농공단지, 용산면에 영동법화농공단지 · 용산농공단지가 조성되어있다.
상업활동은 1980년대 초만 하더라도 관내에는 4·9일이 개시일인 영동장을 비롯해 용산면 용산장과 매곡면 매곡장이 5·10일, 황간면 황간장이 2·7일, 추풍령면 추풍령장 · 학산면 학산장 · 심천면 심천장이 3·8일, 상촌면 임산장이 1·6일에 열리고 있었다.
중심지인 영동읍의 영동장과 준읍급 중심지인 황간장의 개시일(4·2일)은 영동군 내 다른 시장과 겹치지 않았으나 학산장 · 용산장 · 추풍령장 · 임산장 · 양산장 · 심천장 등은 시간 · 공간적으로 분리된 2∼3개의 시장이 동시에 개시되었다. 이것은 시장의 계층에 따라 군민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경제적 필요성을 반영한 것이다. 또한 상인들의 순환도 영동장과 황간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현재에는 영동읍에만 정기시장이 열리고 그 외의 모든 정기시장은 상설시장으로 전환되었다. 주요 거래품목은 곡물과 고추 · 마늘 · 사과 · 포도 등이다. 이 군은 행정구역상 충청북도에 속하지만 대전광역시와 경상북도 김천시 상권의 영향을 받고 있다.
경부선 철도와 경부고속도로 및 국도가 통과하여 교통은 매우 편리하다. 경부선에는 심천역 · 각계역 · 영동역 · 황간역 · 추풍령역이 있고, 고속도로에는 영동인터체인지 · 황간인터체인지와 추풍령휴게소 등이 있다.
그리고 영동읍을 중심으로 경부선 철도와 고속도로, 무주∼영동∼옥천 간 국도가 교차하고 있다. 군내에는 심산유곡과 명승고적지 등 관광자원이 풍부하여 많은 관광객과 피서객들이 찾아와 관광지역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소백산맥을 중심으로 한 높은 산들과 금강 상류의 명승지 등 천혜의 자연경관이 빼어나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양산면 송호리양강(楊江) 일대에는 영국사(寧國寺) · 강선대(降仙臺) · 비봉산(飛鳳山) · 봉황대(鳳凰臺) · 함벽정(涵碧亭) · 여의정(如意亭) · 자풍서당(資風書堂) · 용암(龍巖) 등 이른바 양산팔경이 있고, 송호리 일대는 국민관광지, 강선대 주변은 관광휴양지역으로 지정되어 수많은 관광피서객들이 찾아들고 있다.
금강 유역에는 이 외에도 관어대(觀漁臺) · 심천수영장, 난계사당(蘭溪祠堂), 심천면의 옥계폭포(玉溪瀑布) 등의 명승지가 있어 많은 관광객과 피서객들이 찾고 있다. 물한계곡(勿閑溪谷)은 상촌면 물한리에 있으며, 충청 · 경상 · 전라도 등 3도의 경계에 있는 삼도봉을 수원으로 하여 동북쪽으로 길게 뻗은 계곡으로 자연경관이 수려하여 많은 피서객들이 찾고 있다.
민주지산 정상에는 삼도봉 기념탑이 있어, 매년 10월 10일 3도민의 화합을 비는 살풀이와 사물놀이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한천팔경은 황간면 원촌리에 자리 잡고 있는데, 월류봉(月留峰) · 냉천정(冷泉亭) · 사군봉(使君峰) · 산양벽(山羊璧) · 화헌악(花獻嶽) · 법존암(法尊巖) · 청학굴(靑鶴窟) · 용연대(龍淵臺)를 말하고 있는데 이곳은 자연경관이 빼어날 뿐만 아니라 역사가 깃든 명승지이다.
석천(石川)은 황간면 북단 백화산(白華山)의 포성산에서 발원하여 남류하면서 원촌리와 우매리의 석천계곡(石川溪谷)은 산수가 수려하고 험한 바위와 맑은 계곡물이 어울린 곳으로 한천계곡과 연계해 개발될 수 있는 천혜의 관광지를 이루고 있다.
매곡면 어촌리의 황학산에는 1,000명이 앉을 수 있는 널따란 반석이 있는 천인대(千人臺)와 김천의 유명한 사찰 직지사(直指寺)가 있고 그 외에도 천덕산계곡 · 수문계곡 · 건천계곡 등이 훌륭한 등산 코스가 있다. 이 밖에도 양강면 남전리의 대암(臺巖)과 빙옥정, 영동읍 매천리의 이암(利巖), 화신리의 계곡과 송천교의 백사장 등도 훌륭한 관광지가 되고 있다.
군의 중앙부에 위치한 읍. 면적 100.54㎢, 인구 2만 2293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매천리인데, 현재 읍사무소 신축 공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임시청사가 회동리에 있다. 본래 영동군의 군청 소재지이므로 군내면(郡內面)이라 하여 16개 리(里)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군동면(郡東面)의 22개 리, 서이면(西二面)의 4개 리, 남일면(南一面)의 음가동을 병합해 영동군의 이름을 따서 영동면이 되었다. 1940년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73년 고자리가 상촌면으로 이관되었다.
중생대 변성퇴적암층이 넓게 분포해 있고 소백산맥의 북사면에 속하고 있다. 남쪽 상촌면과의 경계에 삼봉산이 솟아 있으나 읍 중심부로 차츰 고도가 낮아진다. 북부에 백마산이 있으나 대부분은 저산성 구릉지로 침식분지 지형을 이루고 있다.
양강면 산막리의 천마령에서 발원한 영동천이 양정리에서 양정천(楊亭川)을 합류하여 북쪽으로 흐르고, 영동읍 계산리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주곡천(主谷川)과 삼봉천(三峰川)을 합쳐 북서쪽으로 흘러 심천면 초강리에서 금강 분류와 합류하고 있는데, 부용리 · 계산리 · 매천리 · 동정리 일대의 영동천 유역에는 비교적 넓은 충적평야가 발달해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미곡 · 잡곡, 채소류로는 오이 · 참외 · 수박 · 토마토 · 배추 · 시금치 · 상추 · 당근 · 파, 과일류로는 포도 · 사과 · 감 등을 많이 생산한다. 가축으로는 돼지 · 한우 · 닭 · 개 등이 사육되고 있다. 읍내에는 영동농공단지가 있어 조립금속 · 기계장비, 화학 · 섬유 · 고무 · 플라스틱 등의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다.
경부선과 국도가 중앙부를 통과하고 보은∼무주 간의 지방도가 있어 중남부의 교통상 관문이 되고 있다. 문화유적은 계산리의 영동 심원리 부도와 규당 고택, 부용리의 영동향교 · 고분 · 노후사, 당곡리의 12장신당(관우사당), 화신리의 중화사(重華祠), 매천리의 미선나무 자생지 등이 있다.
계산리(稽山里) · 동정리(桐井里) · 회동리(會同里) · 화신리(花新里) · 당곡리(堂谷里) · 산익리(山益里) · 매천리(梅川里) · 부용리(芙蓉里) · 오탄리(梧灘里) · 산리리(酸梨里) · 설계리(雪溪里) · 심원리(深源里) · 봉현리(烽峴里) · 주곡리(主谷里) · 가리(加里) · 임계리(林溪里) 등 16개 리가 있다.
군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45.18㎢, 인구 2,04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노천리이다. 본래 황간군 지역으로 오리실(유전리)의 이름을 따서 오곡면(梧谷面)이라 하여 11개 리를 관할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매하면의 20개 리와 도내면(都內面)의 애교리 일부를 병합해 매화와 오곡의 이름을 따서 매곡면이라 하며 영동군에 편입되었다. 1973년 돈대리가 상촌면으로, 1989년 광평리가 황간면으로 이관되었다.
북부의 봉대산, 남부 면계에 곤천산(坤天山, 1,032m) · 황학산, 동부에 장군봉(長君峰) · 가성산 · 괘방령(掛傍嶺) · 여시골산 등 소백산맥에 속하는 높은 산들이 솟아 있다. 남동부에서 북서류하는 어촌천(漁村川)이 서부에서 북류하는 초강천에 흘러들어, 이들 하천유역에 좁은 평야가 전개되고 있다.
이들 하천유역은 군내의 곡창지대로서 쌀을 많이 수확하고 있다. 채소류로는 수박 · 호박 · 배추 · 상추 · 무 · 파, 특용작물로는 참깨 · 들깨, 과일류로는 사과 · 복숭아 · 포도 · 감 · 호두 등을 많이 생산하고 있다. 특히 감과 호두는 전지역에서 널리 생산되어 서울 등 도시로 반출하고, 감은 곶감을 만들어 상품화하고 있다.
가축으로는 한우 · 돼지를 많이 사육하는데 어촌리말미산 인재목장에서는 젖소를 키우고 있다.
도로는 황간∼상촌 간의 지방도가 남북으로 관통하고 우회도로서 매곡∼김천 간에 버스가 운행되고 있어 교통은 비교적 편리하다. 매곡에서 김천으로 포장된 도로를 따라가면 경상북도와의 경계에 황학산이 있는데, 천덕계곡 · 수문계곡 · 건천계곡 등 경승지가 많아 등산과 자연경관을 즐길 수 있어 많은 등산 · 관광객이 찾고 있다.
문화유적은 강진리의 영축사, 노천리의 사로당 · 흥학당 · 봉유재(奉裕齋) · 고분군, 옥전리의 무첨재 등이 있다. 노천리(老川里) · 장척리(長尺里) · 옥전리(玉田里) · 유전리(楡田里) · 강진리(江津里) · 수원리(水院里) · 어촌리(漁村里) · 공수리(公須里) 등 8개 리가 있다.
군의 남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137.62㎢, 인구 2,48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임산리이다. 본래 황간군 위쪽이 되므로 상촌면이라 하여 22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매하면(梅下面)의 3개 리를 병합해 영동군에 편입되어 9개 이로 개편했고 1973년 영동읍 고자리와 매곡면 돈대리를 편입하였다.
소백산맥이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뻗어 험준한 산악지대를 이루고 있고 동부에 황학산, 서부에 삼봉산, 남부에 민주지산 · 각호산 · 막기항산(999m) 등이 솟아 있다.
장교천(長橋川)이 둔전리각호산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 영동읍과 경계를 이루고 고자리 북쪽에 이르러 동쪽으로 꺾여 상도대리를 지나 하도대리에 이르러 남쪽에서 오는 물한천(勿閑川)을 합하고 임산리에 이르러 남쪽에서 오는 흥덕천(興德川)을 합하여 서북부를 뚫고 황간면 경계에 이르러 서쪽으로 꺾여 석천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대륙성기후의 성격이 강해 여름은 덥고 겨울에는 몹시 추우며 여름철 집중호우로 홍수 피해도 가끔 입고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미곡 · 잡곡 등이나 최근 마늘 · 고추 등 원예작물의 재배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감과 호두는 전국적인 명산물이 되고 있다. 임산물로는 표고버섯이 유명하고 가축으로는 한우 · 젖소를 사육하고 있다.
황간∼상촌 간의 지방도가 포장되어 시내버스가 운행되고 있고 김천∼상촌 간에는 버스가 운행되고 있으나 교통은 불편하다.
문화유적은 하도대리의 화수루와 열녀정문, 임산리의 삼괴당 · 영모재 · 세심정 등이 있다. 명승지로 물한계곡은 삼도봉과 민주지산으로 둘러싸인 물한천의 발원지로서, 천혜의 자연경관으로 유명하여 많은 관광객과 피서객이 몰리고 있다.
임산리(林山里) · 돈대리(敦大里) · 하도대리(下道大里) · 상도대리(上道大里) · 고자리(高子里) · 둔전리(屯田里) · 물한리(勿閑里) · 대해리(大海里) · 흥덕리(興德里) · 궁촌리(弓村里) · 유곡리(柳谷里) 등 11개 리가 있다.
군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77.81㎢, 인구 3,539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심천리이다. 본래 영동군의 서쪽 첫머리가 되므로 서일면(西一面)이라 하여 18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서이면(西二面)의 12개 리, 남이면(南二面)의 2개 리, 옥천군 이내면(伊內面)의 내동 일부를 병합하여 심천(深川)의 이름을 따서 심천면이라 하였다.
남부는 국사봉(國士峰, 502m) · 어류산(御留山, 490m) 등 소백산맥의 구릉성 산지이고 북부는 200∼400m의 저산성 구릉지가 많다. 금강이 남부에서 북류해 중앙부를 지나면서 송천을 합류하여 서쪽으로 곡류하면서 하천 유역에는 넓은 평야가 전개되어 군 내의 중요한 미곡산지가 되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미곡을 비롯해 사과 · 수박 · 배추 · 무 등의 경제작물이며, 초강리에 수박 현지공판장, 약목리에 딸기 집하장이 개설되어 거래가 활발하다.
경부선 철도가 통과해 심천역과 각계역이 있고 대전∼영동 간 국도가 있어 옥천 시내버스와 영동 시내버스가 운행되어 교통은 편리하며, 특히 옥천읍과의 편리한 교통으로 옥천생활권을 이루고 있다.
문화유적은 심천리의 원각사 · 영암사, 마곡리의 보덕사가 있다. 그리고 초강리의 소석 고택, 각계리의 선지당 · 장군봉성지, 고당리의 난계사 · 박연 묘소 · 박흥생 묘비 · 쌍청루(雙淸樓) · 호서루(湖西樓) · 쌍효각(雙孝閣) · 세덕사(世德祠) 등이 있다.
명승지로는 금강의 심천수영장과 초강리의 미루나무섬이 있어 많은 피서객들이 찾는다. 또한 고당리의 옥계폭포(玉溪瀑布)는 기암 · 송림과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다.
심천리(深川里) · 단전리(丹田里) · 길현리(吉峴里) · 구탄리(九灘里) · 장동리(獐洞里) · 고당리(高塘里) · 마곡리(麻谷里) · 기호리(耆湖里) · 명천리(明川里) · 금정리(錦汀里) · 약목리(藥沐里) · 각계리(覺溪里) · 초강리(草江里) · 용당리(龍塘里) 등 14개 리가 있다.
군의 중앙부에 위치한 면. 면적 81.95㎢, 인구 3,45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괴목리이다. 본래 옥천군 지역으로 옛 양산현(陽山縣)의 읍내가 되므로 양내면(陽內面)이라 하여 16개 리를 관할하였다.
1906년 영동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양남일소면(陽南一所面)의 모리 일부와 남이면(南二面)의 중심동을 병합해 양산현의 이름을 따서 양산면이라 하여 9개 리로 개편하였다. 1971년 묘동리를 묘동과 전동으로 분리하였고, 1982년전동, 1992년 쌍암리 등은 군부대 주둔으로 폐동되었다.
대부분이 중생대 지층으로서 남부 면 경계의 천마령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낮아지는 남고북저의 지형을 이루고 있다. 죽산리에서 발원한 양정천(楊亭川)이 양정리 부근에서 영동천에 합류되고, 누교리에서 발원한 호탄천이 호탄리에서, 노고산과 봉화산 부근에서 발원한 구강(九江)이 죽산리를 거쳐 구강리 등에서 금강 분류에 합류하고, 지촌리에서 발원한 유점천(鍮店川)이 묵정리 부근에서 시항천(矢項川)과 합류하여 금강 분류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미곡이지만 죽촌리의 사과, 두평리의 자두와 복숭아, 산막리의 양잠, 지촌리의 엽연초, 묘동리의 양봉이 유명하다. 괴목리에서는 딸기 재배로 농가소득을 올리고 있고 가동리에는 양돈단지가 있어 돼지를 많이 사육하고 있다.
도로는 영동∼무주 간의 포장도로가 중앙부를 관통하며, 최근 죽촌 · 산막 · 지촌 · 쌍암 방면의 4개 노선에 새마을버스가 운행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괴목리의 김참판 고택, 두평리의 자풍서당, 묵정리의 삼호정 · 고가 등이 있다. 남전리의 빙옥정은 경치가 아름다워 봄과 가을에 많은 학생들이 소풍을 오고 있다.
괴목리(槐木里) · 가동리(佳洞里) · 양정리(楊亭里) · 죽촌리(竹村里) · 산막리(山幕里) · 남전리(藍田里) · 지촌리(芝村里) · 유점리(鍮店里) · 만계리(晩溪里) · 묵정리(墨井里) · 두평리(斗坪里) · 구강리(九江里) · 쌍암리(雙巖里) · 묘동리(妙洞里) 등 14개 리가 있다
군의 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57.18㎢, 인구 2,05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가곡리이다. 본래 옥천군 지역으로서 옛 양산현의 읍내가 되므로 양내면(陽內面)이라 하여 16개 리를 관할하였다.
1906년영동군에 편입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양남일소면의 모리 일부와 남이면(南二面)의 중심동을 병합하여 전 양산현의 이름을 따서 양산면이라 하여 9개 리로 개편하였다.
북부 면계의 마니산, 동부에 노고산(老高山, 434m), 서부에 천태산(天台山, 720m), 중앙부에 동골산, 남부에 천마령 등이 솟아 있어 남고북저의 지형을 이루고 있다. 동부와 남동부에서 서류하는 금강이 있어 남동부에만 넓은 평야가 있을 뿐이다.
주요 농산물은 미곡을 비롯해 딸기 · 고추 · 참깨 등의 원예작물과 인삼 · 포도 · 감 등인데, 특히 감은 특산물이 되고 있다. 식료품공장과 담배업체의 제조업이 가동되고 있다. 도로는 무주∼영동 간의 국도와 양산∼옥천 간의 지방도가 있어 교통은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누교리의 영국사 · 부도 · 삼층석탑 · 원각국사비 · 망탑봉 삼층석탑 · 대웅전, 가곡리의 고가 · 고분, 봉곡리의 이의정 유적 · 함벽정 · 여의정(如意亭) · 구선대(九仙臺) · 용암(龍巖) 등이 있다. 명승지로는 강선대(降仙臺) 주변을 관광휴양지로 지정하였고, 송호리 일대를 국민관광단지로 지정해 여름철이면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다.
가곡리(柯谷里) · 원당리(元塘里) · 봉곡리(鳳谷里) · 죽산리(竹山里) · 송호리(松湖里) · 수두리(藪頭里) · 호탄리(虎灘里) · 누교리(樓橋里) · 가선리(加仙里) 등 9개 리가 있다.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66.93㎢, 인구 3,54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구촌리이다. 본래 영동읍 내에서 북쪽으로 제일 먼 곳이므로 북일면(北一面)이라 하여 17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북이면(北二面)의 18개 리와 서일면(西一面)의 일부를 병합하여 이곳에 있는 용산(龍山)의 이름을 따서 용산면이라 하여 18개 리로 개편하였다. 1947년 행정구역 변경에 의하여 황간면의 백자전리를 편입하였다.
중생대 지층에 속하고 있고, 북부에 천관산(天冠山, 440m) · 천금산(千金山, 465m), 남부에 박달산(朴達山, 475m) 등이 솟아 있어 대부분이 산지를 이루고 있다. 풍천(楓川)이 천관산에서 북류하여 동쪽에서 흘러드는 송천(松川)과 합류해 백자전리 · 산저리를 지나 서류하여 율리 · 시금리 · 한석리를 관류하고 있는데, 여름철에는 때때로 홍수가 일어나 농경지가 유실되기도 하고, 가을에서 봄 사이는 건조해 산불이 발생하기도 한다.
주요 농산물로는 미곡 · 잡곡, 채소류로는 수박 · 오이 · 토마토 · 가지 · 배추 · 시금치 · 상추 · 무 · 파, 과일류로는 사과 · 배 · 감 · 복숭아 · 포도 등을 생산한다. 가축으로는 소 · 돼지 · 닭 · 개를 많이 사육하고 있다.
용산농공단지과 화농공단지에는 조립금속 · 기계장비, 섬유 · 의복 · 가죽, 비금속광물, 화학 · 섬유 · 고무 · 플라스틱 등 제조업체가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경부고속도로가 금곡리 · 가곡리 · 천작리 · 상룡리 · 백자전리를 관통하고 상룡리에는 인터체인지가 있어 교통은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신항리의 삼존불상과 상여, 한곡리의 김수온 묘(金水溫墓), 시금리의 침강정(枕江亭), 상룡리의 지석묘, 구촌리의 선사유적, 산저리의 용연암, 용산리의 풍천당(楓川堂) 등이 있다.
구촌리(九村里) · 산저리(山底里) · 율리(栗里) · 신항리(新項里) · 부릉리(夫陵里) · 한석리(閑石里) · 시금리(詩今里) · 부상리(扶桑里) · 가곡리(佳谷里) · 금곡리(金谷里) · 천작리(千作里) · 한곡리(閑谷里) · 법화리(法化里) · 미전리(米田里) · 청화리(靑化里) · 매금리(梅琴里) · 상룡리(上龍里) · 용산리(龍山里) · 백자전리(栢子田里) 등 19개 리가 있다.
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59.39㎢, 인구 1,06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용화리이다. 본래 고려 때 용화현(龍化縣) 지역으로 용화면이라 하여 13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양남이소면(陽南二所面)의 15개 리를 병합해 10개 리를 관할하였다. 1947년 행정구역 변경에 의하여 도덕 · 범화 · 봉림의 3개 리를 학산면에 이관되었다.
동북에 천마령 · 천만산 · 각호산 · 민주지산, 서부 중앙에 갈모봉(葛帽峰, 615m) 등이 솟아 있어 대부분이 산지를 이루고 있다. 남부 면계를 흐르는 남대천이 감입 곡류로 흐르고 있으며, 용화천(龍化川)이 서남류하여 용화리 부근에서 남대천에 합류하고 있다.
북고남저의 지형으로 북부에서 남류 또는 남서류하는 소하천이 많지만 평지는 협소하다. 대륙성기후의 성격이 강하고 여름철에는 집중호우로 홍수 피해를 입는 때가 많다.
주요 농산물로는 미곡 · 잡곡, 채소류로는 수박 · 토마토 · 호박 · 배추 · 상추 · 무 · 파 · 양파, 과일류로는 사과 · 포도 · 감 등을 생산하고 있다. 가축으로는 개 · 닭 · 한우를 많이 사육하며, 꿀벌도 많이 있어 벌꿀도 생산하고 있다. 임산물로는 표고버섯을 많이 생산하고 있다.
도로는 영동∼무주 구천동 간의 국도가 우회하고 있고, 양강면 묵정리∼용화리 간의 지방도와 용화리∼조동리 간의 군도가 있으나 교통은 매우 불편하다. 월전리의 남대천에는 여름철에 많은 낚시꾼들이 모여들고 있다.
문화유적은 월전리의 보월사(普月寺), 자계리의 성지 등이 있다. 조동리(肇東里) · 안정리(雁汀里) · 월전리(月田里) · 용화리(龍化里) · 용강리(龍江里) · 여의리(如意里) · 자계리(紫溪里) 등 7개 리가 있다.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55.24㎢, 인구 2,50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추풍령리이다. 본래 경상북도 금산군(金山郡) 지역으로 황금소면(黃金所面)이라 하여 23개 리를 관할하다가 1906년에 황간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오곡면(梧谷面)의 5개 리와 경상북도 상주군 공서면(功西面)의 3개 리를 병합하여 황금면이라 해서 영동군에 편입되어 9개 리로 개편되었고, 1991년에 추풍령면으로 개칭하였다.
대부분이 화강편마암으로 이루어져 있고, 소백산맥에 속하는 북부의 지장산(芝藏山, 772m)과 학무산(鶴舞山, 684m), 서부 면계의 봉대산, 남부 면계의 눌의산 · 추풍령 등 험준한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추풍령은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령으로 영남과 중부지방의 교통의 요지를 이루고 있다. 농경지는 경부선 철도를 따라 좁게 분포하는데 추풍령 저수지가 있어 수리안전답이 많다.
주요 농산물로는 미곡과 맥류, 채소류로는 수박 · 오이 · 토마토 · 호박 · 배추 · 상추 · 무 · 당근 · 파, 과일류로는 사과 · 포도 · 복숭아를 많이 생산하며, 특히 지봉리에서는 포도를 많이 생산한다. 가축으로는 돼지 · 한우 · 젖소 · 개 등을 많이 사육하고 있다. 비금속광물, 고무 및 플라스틱, 식료품 · 담배 등의 제조업이 입지하고 있다.
추풍령은 경부선 철도와 경부고속도로가 통과하고 있어 추풍령역과 추풍령휴게소가 있고, 김천∼대전 간의 국도가 통과하여 교통은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지봉리에 고분군과 불상이 있다. 관리(官里) · 사부리(沙夫里) · 계룡리(溪龍里) · 추풍령리(秋風嶺里) · 죽전리(竹田里) · 작점리(雀店里) · 신안리(新安里) · 웅북리(熊北里) · 지봉리(池鳳里) 등 9개 리가 있다.
군의 남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73.61㎢, 인구 2,970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서산리이다. 본래 옥천군에 속한 양산현(陽山縣)의 남쪽이 되므로 양남일소면(陽南一所面)이라 하여 26개 리를 관할하였다.
1906년에 영동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황새끼미의 이름을 따서 학산면이라 하여 7개 리로 개편하였다. 1947년 용화면의 도덕 · 범화 · 봉림 등 3개 리를 편입하였다.
북서부에 성주산(聖主山, 629m), 남동부에 백하산(白霞山, 634m) · 칠봉산(七峰山, 521m), 동부 중앙에 정산(488m) 등 소백산맥의 산릉으로 둘러싸인 분지 형태의 지형이다. 금강의 지류인 원당천이 학산면 봉소리압재저수지 아래에서 발원하여 원당리 부도에서 금강에 흘러들고 있으나, 산간분지를 흐르고 있어 평야는 적다.
여름철 집중호우로 홍수의 피해를 입으며 봄에는 높새바람으로 농작물에 피해를 입기도 한다. 경지의 대부분은 무주∼영동 간의 국도를 따르는 구릉성 저지에 분포하고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미곡 · 잡곡, 채소류로는 수박 · 오이 · 참외 · 토마토 · 배추 · 상추 · 무 · 파 · 양파, 과일류로는 사과 · 포도 · 감, 특용작물로는 참깨 · 들깨 등을 많이 재배하고 있다. 특히 아암리의 포도, 지내리 · 박계리의 인삼 재배는 유명하여 학산장에서는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에서 인삼을 구매하려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으며, 범화리 · 도덕리에서는 표고버섯을 많이 생산하고 있다. 아암리 장항 노루목에는 큰 양돈단지가 있고, 식료품 · 담배 제조업이 입지하고 있다. 도로는 영동∼무주 간의 국도가 관통하고 있고 학산∼양산∼이원∼금산 간의 지방도와 양강면의 묵정봉림∼범화∼도덕∼용화 간의 지방도가 있어 교통은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봉림리의 성위제 가옥과 은행나무, 서산리의 사지, 아암리의 선사유적, 지내리의 청절사(淸節祠), 박계리의 대왕산성 등이 있다.
서산리(鋤山里) · 학산리(鶴山里) · 아암리(鵝巖里) · 봉소리(鳳韶里) · 황산리(凰山里) · 지내리(池內里) · 박계리(博溪里) · 봉림리(鳳林里) · 범화리(範華里) · 도덕리(道德里) 등 10개 리가 있다.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90.07㎢, 인구 4,735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남성리이다. 본래 황간군청이 있었으므로 군내면(郡內面)이라 하여 23개 리를 관할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서면(西面)의 18개 리와 영동군 군동면(郡東面)의 상가리 일부를 병합해 황간군의 이름을 따서 황간면이라 하고 14개 리로 개편되었다. 1947년 백자전리를 용산면에 넘겨주었고 1989년 매곡면 광평리를 편입하였다.
화강편마암지대에 속하고 있는데, 북부는 백화산 · 주행봉(舟行峰, 870m) 등의 고봉이 연속되는 험준한 백화산맥을 이루고, 남부는 고도 200∼400m의 구릉성 산지가 넓게 분포하고 있어 평탄지는 적다. 백화산지에서 남류하는 송천(松川)이 노근리를 지나 우천리에서 석천(石川)을 합하여 중앙부를 동서로 관류하고 있다.
하천 유역에는 좁은 평야가 있고 남부 구릉지에도 경지가 조금 분포해 있다. 여름철의 집중호우로 홍수 피해를 입는 경우가 있고, 봄철에는 높새바람으로 한발이 심할 때가 많다.
주요 농산물로는 미곡 · 잡곡, 채소류로는 수박 · 오이 · 토마토 · 호박 · 가지 · 배추 · 시금치 · 상추 · 파 · 무, 과일류로는 사과 · 포도 · 복숭아를 생산하는데 특히 서송원리에서는 포도 · 호두를 많이 생산하고 있다. 특용작물로는 노근리의 담배, 우매리의 표고버섯이 유명하다.
가축으로는 한우 · 돼지 · 닭 · 개 등을 사육하는데 특히 난곡리 · 소계리에서는 한우 · 젖소를 많이 사육하고 있다. 조립금속 · 기계장비, 식료품, 나무 · 가구 등의 제조업이 입지하고 있다.
철도 · 고속도로 · 국도가 남부를 동서로 관통하고 있으며, 신촌리에는 고속도로 인터체인지가 건설되어 있다.
문화유적은 우매리의 반야사 · 백화산성, 남성리의 가학루 · 황간향교, 원촌리의 송시열 유허비 등이 있다. 명승지로 원촌리의 한천(寒泉)8경이 유명하다.
남성리(南城里) · 신흥리(新興里) · 마산리(馬山里) · 소계리(小溪里) · 난곡리(蘭谷里) · 우매리(友梅里) · 원촌리(院村里) · 용암리(龍巖里) · 금계리(金溪里) · 회포리(回浦里) · 우천리(牛川里) · 노근리(老斤里) · 서송원리(西松院里) · 광평리(廣坪里) 등 14개 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