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7년(인종 5)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고려 말에 쇠퇴한 것을 1392년(태조 1) 복원하였다가 그 뒤 부사 이광한(李光漢)이 진망산(鎭望山) 남쪽으로 이건하였다.
당시의 경내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재(東齋)·서재(西齋) 등이 있었으며, 대성전에는 5성(五聖), 10철(十哲), 송조6현(宋朝六賢)과 동무·서무에 우리 나라 18현(十八賢) 및 중국 94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여왔다. 1950년대 이후의 사항은 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