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반정으로 유배되었던 전 승지 유효립이 1628년(인조 6) 몰락한 대북파의 여당들과 제휴하여 광해군을 상왕으로 삼고 인성군 공(仁城君珙: 宣祖의 5남)을 추대하려다, 거사 하루 전에 전 정언 허적(許𥛚)의 고변으로 탄로가 나서 주모자가 처형되었다.
이로써 공을 세운 사람들을 3등급으로 구분하여 공신으로 책록하였다. 1등의 허적에게 갈충효성병기익명영사공신(竭忠效誠炳幾翊命寧社功臣)을 내리고, 2등의 홍서봉(洪瑞鳳)·허계(許禊)·황진(黃縉)·허선(許選)에게 갈충효성익명영사공신(竭忠效誠翊命寧社功臣)을 내렸다.
3등의 김득성(金得聲)·김진성(金振聲)·신서회(申瑞會)·최산휘(崔山輝)·이두견(李斗堅)에게 갈충효성영사공신(竭忠效誠寧社功臣)을 내리는 등 모두 11인이 책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