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단 ()

유교
유적
없음에 있는 새해 농사가 잘되도록 곡식을 맡은 별과 농사를 맡은 별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든 제단.
정의
없음에 있는 새해 농사가 잘되도록 곡식을 맡은 별과 농사를 맡은 별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든 제단.
개설

우사(雩祀 : 기우제) 등을 지내는 단과 함께 서울의 남교(南郊)에 있었다고 하나 폐지된 지 오래되어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다.

역사적 변천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삼국시대부터 제사를 지내 온 기록이 있다. 문헌에 의하면 신라 때는 오성(五星)을 영묘사(靈廟寺) 남쪽에서 해마다 제를 지내 풍년을 기원한 일이 있으므로, 영묘사의 영과 오성의 성을 합해 뒤에 영성이라는 이름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또한, 고구려에서는 큰 집을 서울의 좌측에 지어서 겨울에 영성제를 지냈다고 한다.

영성단의 설치는 고려 때 처음 시작돤 것이며, 조선에서도 고려의 유제(遺制)에 따라 한양 천도 후에 남교에 설치하고 입추 후에 진일(辰日)을 정일로 하여 제사를 지냈다. 또한, 태조가 발신(發身)한 함흥에 조선의 창립을 감사한다는 뜻에서 영성단을 설치하고 해마다 제관을 파견해 제사를 지냈다.

내용

단의 규모는 정사각형이며 한 변의 길이가 6.3m(2장1척) 정도이고 단의 높이는 0.75m(2척5촌) 정도이다. 고려 시대에는 규모가 약간 커서 한 변의 길이가 3m 정도이고 높이가 0.9m 정도였다.

주위는 한 변이 15.6m(8보4척)이고 사면으로 담을 쌓아 출입을 통제하였다. 단의 남쪽에 요단(燎壇)이 있는데, 단에서 6m쯤 떨어져 있다. 한 변의 길이는 1.5m쯤 된다. 출입문은 단의 남쪽으로 나 있는데, 너비는 0.6m쯤 되며 위로 열고 드나들도록 되어 있다.

단 위에는 영성의 신좌와 용(龍)의 왼쪽 뿔이 북쪽에서 남쪽을 향해 안치되어 있다. 용의 왼쪽 뿔은 하늘의 농지와 주곡(主穀)을 상징하는 것으로 지상에서도 풍년이 들도록 기원하는 뜻에서 숭배한다.

참고문헌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동국통지(東國通志)』
『삼국사기(三國史記)』
『춘관통고(春官通考)』
집필자
권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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