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군 ()

대동여지도 중 평안남도 영원 부분
대동여지도 중 평안남도 영원 부분
인문지리
지명
평안남도 북동부에 위치한 군.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평안남도 북동부에 위치한 군.
개관

동쪽은 함경남도 장진군·함주군·정평군, 서쪽은 덕천군과 평안북도 영변군, 남쪽은 맹산군과 함경남도 영흥군, 북쪽은 평안북도 강계군·희천군과 접해 있다.

동경 126°24′∼127°11′, 북위 39°45′∼40°21′에 위치하며, 면적 2,249㎢, 인구 5만 4749명(1943년 현재)이다. 9개 면 86개 이로 되어 있으며, 군청 소재지는 영원면 영녕리이다.

자연환경

군의 북동부 지역에서 낭림산맥(狼林山脈)과 묘향산맥(妙香山脈)이 갈라지는데, 낭림산맥은 군의 동부를 남북으로 뻗어 내려오면서 함경남도와 경계를 이루고, 묘향산맥은 남서쪽으로 뻗어 평안북도와 경계를 이룬다.

동부 낭림산맥을 따라 소백산(小白山, 2,184m)·동백산(東白山, 2,096m)·검산령(劍山嶺, 1,127m)·사수산(泗水山, 1,747m) 등 높은 산들이 연이어 있다.

또 남부에는 모도봉(毛都峰, 1,833m)·덕인봉(德仁峰, 1,345m)·만진덕산(萬陳德山, 1,160m) 등이 솟아 있다. 북부 경계를 따라 웅어수산(雄魚水山, 2,019m)·낭림산(狼林山, 2,014m), 무동봉(舞童峰, 1,762m)·묘향산(妙香山, 1,909m)·천괘산(天快山) 등이 솟아 있어 동·남·북의 세 방면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고원을 이룬다.

성룡강(成龍江)·남천강(南川江) 등의 지류들이 대동강(大同江)에 합쳐지고, 대동강은 군의 중앙을 서류해 덕천군으로 들어간다. 강 유역에는 범람원·분지·선상지 등이 형성되어 있고, 하천의 침식 작용으로 연안 곳곳에 경치 좋은 기암 절벽들을 만들어 놓았다.

내륙 산악 지대로 한서의 차가 심한 대륙성 기후의 특징을 나타낸다. 연평균기온 8.3℃, 1월평균기온 -11.8℃, 8월평균기온 24.3℃, 연강수량 1,156㎜이다. 얼음은 10월 하순부터 얼기 시작해 4월 초순까지 언다.

역사

[고대]

고조선의 영역에 속했으며, 그 뒤 고구려의 남진정책에 따라 동천왕대에 고구려의 판도에 편입되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신라의 영역 밖이었고, 발해의 세력도 미치지 못해 황폐되었다.

[고려]

고려가 북진정책을 적극 추진하면서 대동강 상류로 진출하게 되자 922년(태조 5) 이 곳에 영원진(寧遠鎭)을 설치해 영청현(永淸縣 : 함경남도 定平)에 소속시켜 북방 호족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1041년(정종 7) 북방의 국경 방비를 강화하기 위해 최충(崔沖)에게 명해 북계(北界) 요지에 진성(鎭城)을 구축하게 하고, 장성(長城)을 건설했을 때 평로진(平虜鎭)과 함께 영원진에도 성을 쌓았다.

그 뒤 영청현의 치소가 동해 해변으로 옮겨가게 되자 영원진을 희주(熙州)로 이속시켰다. 고려 중기 이후 거란족·여진족들이 이 지역에 출몰했고, 몽고 침략 이후 1270년(원종 11)부터 1290년(충렬왕 16)까지 동녕부(東寧府)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조선]

1396년(태조 5)영청현과 합해 영녕현(永寧縣)으로 확정되었으며, 1413년(태종 13) 서북면을 평안도(平安道)로 하여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영원군(寧遠郡)으로 승격되었다.

세종대에 영원현으로 격하되었으나, 1466년(세조 12) 영청과 분리시켜 군으로 승격시키고, 진을 설치해 영원군 목사가 첨절제사(僉節制使)를 겸하여 군무(軍務)를 돌보게 하였다.

1525년(중종 20) 군의 치소를 남쪽 소초역(所草驛)으로 옮기고, 잉목진(仍木鎭)이라고 하였다. 그 뒤 영원군의 치소는 여러 차례 옮겨졌다. 정묘호란 이후 북방 문제에 풍운이 거세어지자 1633년(인조 11) 이 곳에 둔(屯)을 설치했으며, 1684년(숙종 10)에 청성부원군(淸城府院君)김석주(金錫胄)의 청으로 영성진(寧城鎭)을 두었다.

그러나 이듬 해 폐단이 크다는 병영의 보고가 있어 진을 폐지하고 다시 둔을 설치했다가, 1686년 국방상 요지라고 하여 독진(獨鎭)으로 삼고 첨사(僉使)에게 군무를 관장하게 하였다. 1823년(순조 23) 영성진을 폐지해 군수가 군무를 겸하도록 조처하였다.

[근대]

1895년 지방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평양부 영원군이 되었고, 1896년평안도를 남북도로 나눌 때 4등군으로서 평안남도에 속하게 되었다. 1917년 쾌락면과 영청면을 합쳐 영락면이라 하고 종래의 읍내면을 영원면으로 개칭하였다.

1945년 당시 군청 소재지는 영원면 영녕리이며 9면 86리로 구성되었다. 1907년 정미의병 때 이 군에서도 의병에 참가하는 청년이 속출하였다. 1923년에는 태극면 송산리 출신 대한청년단원 김명권(金明權)이 일본 경찰을 사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유물·유적

922년(태조 5)에 설치한 영원진의 옛터가 영원면에 있다. 성룡면에는 1895년 오늘날의 영원으로 옮기기 전까지 읍치(邑治)였던 고읍성(古邑城)터가 있는데, 둘레 4,700여 척, 높이 7척의 석성이었다.

조선시대에 소초역·가막역(加莫驛)·광성원(廣城院)·검산원(劍山院)·지산원(支山院)·고성원(古城院)·보신원(甫新院)·석막원(石莫院) 등의 역과 원이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폐허화되어 자취를 찾기 어렵다. 영원면 뒷산 마막현(馬幕峴) 남쪽에 1926년에 수축한 문묘가 있다.

사찰로는 태극면 영창리에 법련사(法蓮寺), 성룡면 낭림산에 성룡사(成龍寺) 등이 있다. 온화면 온양리 국유림 경사지에 1916년 10월 명도전(明刀錢)이 발굴되었는데(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것은 전국시대(戰國時代)에 통용되었던 화폐로서, 당시에 이미 이 지역 사람들이 중국과 교섭했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고고학적 자료이다.

교육·문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향교와 많은 서당이 있었으며, 근대 교육기관은 기독교가 전파되어 교회가 세워지기 시작하면서 이들 교회에 의해 사립학교가 창설되었다.

최초로 온화면 온양리에 의명소학교(義明小學校)가 세워졌으며, 태극면 풍전리에 민덕소학교(玟德小學校)가 세워졌다. 이들 학교는 신교육과 함께 민족 정신 고취·국민 계몽에 힘쓰다가 일제의 사학 탄압으로 폐교되었다.

최초의 공립 학교는 1911년에 영원면에 설립된 영원보통학교이며, 이후 점차 증가해 광복 당시 각 면에 1개교씩 설립되어 모두 9개교가 되었고, 이 밖에 7개의 간이 학교가 세워졌다.

종교 상황은 불교 사찰로 법련사·성룡사·동관암(東關庵) 등이 있으며, 신도 수는 많지 않다. 천도교는 종리원(宗理院)과 2개의 포교소가 있고, 신도들이 많아 매우 우세하다.

기독교는 김공근(金珙根)·김민근(金玟根)의 전도로 1899년에 풍전교회(豐田敎會)와 송산교회(松山敎會)가 설립되었으며, 1901년에 영원교회가 설립되었다. 그 뒤에도 1906년에 진하창교회(陳下倉敎會), 1917년에 온창교회(溫倉敎會)가 설립되는 등 광복 당시까지 기독교는 급성장하였다.

산업·교통

산지가 많아 주로 밭농사이며, 조·콩·수수·옥수수·메밀·감자·귀리 등이 많이 생산된다. 특용 작물로는 잎담배와 대마가 재배되며, 또한 양잠과 축우가 활발한데 축우는 도내 2위를 차지한다.

농가의 부업으로 수직(手織)의 견포(絹布)와 마포(麻布)가 생산되고, 특히 마포는 영포(寧布)라 하여 품질이 좋기로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낭림산·백산·검산령 등 산지에는 침엽수림이 울창해 목재가 벌채되며, 인삼·오미자 등의 한약재도 산출된다. 광산물은 금·은·중석 등이 채굴되며, 영락광산(永樂鑛山)·경수광산(鯨水鑛山)·감덕광산(甘德鑛山)·횡천광산(橫川鑛山)·무극광산(無極鑛山)·신창광산(新倉鑛山) 등이 있다.

상업 활동은 5일 정기 시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군내에 10개의 정기 시장이 형성되었다. 영원면 영녕리의 읍내장과 신성면 창의리의 신창장이 3·8일, 영원면 방산리의 방산장과 태극면 태극리의 태극장, 온화면 온양리의 온창장이 5·10일, 영락면 중흥리의 중흥장과 대흥면 사창리의 사창장이 1·6일, 그리고 성룡면 구창리의 구창장과 소백면 와룡리의 와룡장, 덕화면 교관리의 신읍장이 4·9일에 열린다. 여기에서는 주로 곡류·수공품·생활 필수품·가축 등이 거래된다. 이 밖에도 가축 시장인 우시장이 개장되었다.

도로는 영원면을 중심으로 연결되어 영원∼평양간, 영원∼함흥간, 영원∼오령∼희천간에 2등도로가 연결되었으며, 영원면에서 검사령을 넘어 함경남도의 정평과 함흥에 이르는 3등도로가 있다. 또한 대흥면에서 북쪽으로 함경남도 장진에, 남쪽으로 신성면에 이르는 지선도로도 있다.

관광지로는 영녕팔경(永寧八景)으로 이름난 아름다운 경관과 성룡굴(成龍窟), 온화면에 있는 온화온천, 물맛이 좋기로 이름난 몽천(蒙泉) 등이 있다. 영녕팔경은 마막장의 단풍에 물든 아름다운 가을풍경(馬幕晩秋), 국현고개에 진달래가 만발한 봄풍경(菊峴賞春), 구연강 위에 배들이 떠다니는 풍경(鳩淵泛舟), 등천산 위에 기러기가 날아가는 광경(長天落雁), 안민교 위에서 손님을 영송하는 광경(安民送客), 남산에 있는 남산사에서 들려오는 종소리(南山暮鐘), 망봉 위에 저물어가는 석양빛(望峯落照), 영파정에서 바라보는 달(影波玩月) 등을 말한다.

성룡굴은 성룡면 평대리낭림산에 있는 굴로 아름다운 기암 괴석 사이에 있으며, 굴 좌우에는 늪이 있고 굴의 동쪽에는 후동수(芋茼水), 굴 앞에는 만다초(脕茶草)가 있다. 50m 높이 올라간 기암 절벽 위에는 구불구불한 용의 형상이 부각되어 있고, 그 옆에는 성룡사가 있으며, 암벽 끝에는 옥계수(玉溪水)가 흘러나오고 있다.

암벽에 있는 용의 형상은 옛날에 용이 중과 재주를 겨루었는데, 중이 도술로 물을 끊자 용이 도망친 자리라고 전해진다. 또한 옥계수 샘구멍에서는 옛날에는 매일 쌀이 1인분씩 나왔으나 어느 욕심 많은 중이 정으로 구멍을 넓히자 쌀이 안 나오고 마분(馬糞)만 쏟아져 나왔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몽천은 영원면 영녕리에 있는 샘으로 일명 ‘함박샘’이라 한다. 마막장(馬幕嶂) 서쪽 산기슭의 국현(菊峴)고개 밑에서 용출되어 동백골 골짜기 하천을 지나 남천강에 합류된다. 샘물은 편석 틈으로 솟아나고 있으며, 가뭄이나 장마 때에도 물이 줄거나 늘지 않고 여름에는 차고 겨울에는 따뜻하며, 맛이 신선하기로 유명하다. 겨울철을 제외하고는 항상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읍·면

[대흥면大興面]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인구 6,174명(1938년 현재). 면 소재지는 사창리이다. 본래 태백면(太白面)과 장흥면(長興面) 두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이를 병합해 대흥면으로 개칭하였다.

동부 경계를 따라 황봉(黃峰, 1,736m)·검산령·차일봉(1,743m) 등이 연이어 솟아 있으며, 대동강이 면의 중앙을 남류하고 있다.

밭농사를 주로 하며, 조·옥수수·콩·팥·메밀·귀리·녹두·감자 등이 많이 생산된다. 특용 작물로 잎담배와 대마를 재배하며, 대마 재배가 많아 삼베를 생산한다. 특히 야생 뽕나무가 많아 누에고치를 생산해 농가 소득을 올린다.

또한 많은 초지를 이용해 축우 사육도 활발하다. 산지에서 생산된 원목은 뗏목으로 만들어 대동강으로 운반해 외지에 반출되고, 한약재·산채 등의 부산물도 도시로 반출된다.

도로는 영원∼함흥간의 함안선 도로가 면의 중앙을 동서로 지나며, 사창리에서 소백면을 지나 강계와 장진으로 가는 3등도로와 신성면으로 가는 도로가 분기되고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가 있다.

사창(社倉)·인처(仁處)·용암(龍巖)·입석(立石)·복녕(福寧)·흑수(黑水)·중흥(中興)·덕(德)·광통(廣通)·용수(龍水)·월평(月坪) 등 11개 이가 있다.

[덕화면德化面]

군의 남부 중앙에 위치한 면. 인구 3,703명(1938년 현재). 면 소재지는 교관리이다. 본래 신덕면(新德面)과 신화면(新化面) 2개 면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이를 병합해 덕화면으로 개칭하였다.

동남부 경계에 백산(白山, 1,724m)이 솟아 이 면과 신성면, 함경남도 영흥군과 경계를 이루며, 남부 경계를 따라 마유령(馬踰嶺, 972m)·횡천령(橫川嶺, 1,062m)·열봉(熱峰, 1,595m) 등이 솟아 있고, 면의 북부를 대동강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관류한다.

산간 지역이라서 밭농사를 주로 하며, 조·옥수수·콩·팥·녹두·메밀·귀리·감자 등이 많이 생산된다. 특용 작물로는 잎담배와 대마가 재배되며, 특히 대마 생산이 많아 부녀자들이 수공업으로 삼베를 생산해 면포와 교환하여 사용한다.

또한 자연생 뽕나무가 많아 양잠이 성하며, 생산된 누에고치로 농가에서 항라와 명주를 생산해 소득을 올리고 있고, 많은 자연 초지와 곡초를 이용해 소를 많이 사육한다. 산림이 많아 임업이 발달했는데, 원목과 각종 임산물이 많이 생산되고 있다. 광업은 횡천리의 횡천광산에서 금과 은이 산출된다.

도로는 온화면에서 교관리·횡천리를 거쳐 맹산군으로 통하는 도로와, 횡천리에서 함경남도 영흥군으로 가는 도로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가 있다. 교관(敎館)·중흥(中興)·성(城)·횡천(橫川)·신흥(新興)·신덕(新德) 등 6개 이가 있다.

[성룡면成龍面]

군의 북부 중앙에 위치한 면. 인구 3,231명(1938년 현재). 면 소재지는 구창리이다. 북부 경계를 따라 낭림산·연재덕산(連在德山, 1,519m)·천상대(天上臺, 1,478m)·향라봉(香羅峰, 1,724m)이 솟아 있으며, 성룡강이 낭림산에서 발원해 면의 중앙을 남서류하고 있다.

밭농사를 주로 하며, 조·옥수수·콩·팥·메밀·녹두·귀리·감자 등이 많이 생산된다. 특용 작물로는 잎담배와 대마가 생산되며, 특히 대마 재배가 많아 가내 수공업으로 삼베를 생산하고 있다.

자연생 뽕나무가 많아 양잠이 성하며, 축우 사육도 하여 우량우 산지로 알려져 있다. 울창한 산림이 많아 임업이 발달했으며, 원목을 비롯해 한약재·산삼·산채 등이 많이 채취되어 도시로 반출된다.

영락면∼희천간의 3등도로가 면의 중앙을 통과하고, 온화면·대흥면과 작은 도로로 연결되어 있다. 유적으로는 낭림산에 성룡사가 있고, 축조 연대를 알 수 없는 고읍성이 평안북도에서 함경남도까지 연결되어 이 면을 지나고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가 있다.

구창(舊倉)·평대(坪垈)·길대(吉垈)·청막(淸幕)·장산(長山)·성진(城眞)·만평(萬坪) 등 7개 이가 있다.

[소백면小白面]

군의 북동부에 위치한 면. 인구 5,690명(1938년 현재). 면 소재지는 와룡리이다. 동쪽 경계를 따라 동백산·북동령 등이 솟아 있고, 북쪽 경계를 따라 소백산·웅어수산·낭림산 등 높은 산이 연이어 있다. 이처럼 면 전체가 험한 산간 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 산지에서 발원한 대동강이 많은 지류들을 합치면서 면의 중앙을 남류하고 있다.

밭농사를 주로 하며, 조·옥수수·콩·팥·귀리·메밀·녹두·감자 등이 많이 생산된다. 특용 작물로 잎담배·대마 등을 재배하며, 특히 대마 재배가 많아 가내 수공업으로 삼베를 생산해 농가 소득을 올린다.

산간 지역이라서 자연 초지가 많고 곡초 등이 풍부해 축우 사육도 행해지고 있다. 임업이 발달해 산지에서 생산된 원목은 뗏목으로 만들어 대동강으로 운반해 외지로 반출하고, 한약재·산삼·산채 등도 채취된다.

도로는 대흥면에서 소백간을 남북으로 통과하며, 동향리에서 희천으로 가는 3등도로가 분기되고, 창리에서 장진으로 가는 도로, 신덕리에서 강계로 가는 도로가 분기된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가 있다.

와룡(臥龍)·동향(東香)·직(直)·경수(鯨水)·사양(士養)·상남(上南)·신덕(新德)·감덕(甘德) 등 8개 이가 있다.

[신성면新城面]

군의 동남부에 위치한 면. 인구 6,346명(1938년 현재). 면 소재지는 창의리이다. 본래 신창면(新昌面)과 금성면(錦城面) 2개 면이었으나 1922년에 이를 병합해 신성면으로 개칭하였다.

동쪽에는 백산(白山, 1,837m)·사수산 등이 솟아 함경남도 정평군과 경계를 이루고, 남쪽에는 모도봉이 함경남도 영흥군과 경계를 이룬다. 대동강이 소지류들을 합치면서 면의 북서부를 관류하고 있다.

밭농사를 주로 하며, 조·옥수수·콩·팥·녹두·귀리·감자 등이 생산된다. 특용 작물로 잎담배와 대마를 재배하며, 특히 대마 재배가 많아 가내 수공업으로 삼베를 생산해 농가 소득을 올리고 있다.

야생 뽕나무가 많아 양잠이 성하며, 생산된 누에고치로 농가에서 항라와 명주를 생산한다. 자연 초지와 곡초를 이용한 소의 사육도 활발하다.

도흥리에 임업사무소가 설치되어 목재를 생산해 건축 용재 또는 광산 갱목으로 반출하며, 한약재·산채 등이 도시로 반출된다. 광업은 신안리의 신창광산에서 금·은이 생산된다.

도로는 덕화면에서 창의리를 지나 대흥면으로 가는 도로가 면의 중앙을 지나며, 여기에서 함경남도 정평군과 영흥군으로 가는 도로가 분기되어 면의 중앙을 지나고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가 있다.

창의(昌義)·길현(吉峴)·동창(東昌)·장임(壯壬)·대흥(大興)·여운(如雲)·신안(新安)·신흥(新興)·구억(舊億)·진작(陳作)·도흥(都興)·문흥(文興)·하삼(下三) 등 13개 이가 있다.

[영락면永樂面]

군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 인구 5,560명(1938년 현재). 면 소재지는 중흥리이다. 본래 쾌락면(快樂面)과 영청면(永淸面)의 2개 면이었으나 1917년 이를 병합해 영락면으로 되었다. 서쪽에는 고성산(姑城山, 1,145m)·백애산(白涯山, 1,524m) 등과 북쪽에는 무동봉·천쾌산 등이 솟아 있고, 대동강이 면의 남부를 관류하고 있다.

밭농사를 주로 하며, 조·옥수수·콩·팥·메밀·귀리·감자 등이 많이 생산된다. 특용 작물로는 잎담배와 대마가 재배되며, 특히 대마 생산이 많아 가내 수공업으로 삼베를 직조한다. 야생 뽕나무가 많아 양잠이 성하고, 생산된 누에고치로 항라와 명주를 생산해 농가 소득 증대에 기여하고 있다.

산지 지역이라서 목재를 비롯해 한약재·산채 등의 임산물을 생산하고 채취한다. 목재는 광산 갱목이나 뗏목으로 만들어 운반해 외지에 반출되고, 한약재와 산나물은 평양·함흥 등지로 반출된다.

광업은 창리의 영락광산에서 금·은을 생산하며, 12계단의 도광기를 설치하고 발전 시설까지 갖추고 있다. 이 밖에 천연 슬레이트가 생산되는데 이를 절단, 가공해 평양·함흥 등지로 보낸다.

도로는 평양∼영원간 2등도로가 면의 중앙을 남북으로 통과하고, 영원∼함흥간 2등도로가 면의 남부를 동서로, 영락∼희천간 3등도로가 면의 서부를 각각 지나고 있어서 교통은 편리하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가 있다.

중흥(中興)·신흥(新興)·낙포(樂浦)·송평(松坪)·낙창(樂倉)·태평(泰平)·삼포(三浦)·용삼(龍三)·산막(山幕)·창(倉)·문암(門巖)·양성(陽城)·초대(草大) 등 13개 이가 있다.

[영원면寧遠面]

군의 남서부에 위치한 면. 인구 1만941명(1938년 현재). 면 소재지는 영녕리이다. 본래 영녕면(永寧面)·풍서면(豐瑞面)·문곡면(文谷面) 3개 면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이를 병합해 읍내면으로 개칭했으며, 1917년에 다시 영원면으로 개칭하였다.

동부 경계를 따라 신기봉(神奇峰, 1,465m)·덕인봉 등이 솟아 있으며, 남부 경계를 따라 만진덕산·대덕산(大德山, 932m)·약태산(藥苔山, 973m) 등이 연이어 있고, 중앙에는 봉덕산(鳳德山, 810m)이 솟아 있다. 만진덕산에서 발원한 남천강이 면의 중앙을 서류해 대동강에 합류하여 덕천군으로 유입된다.

밭농사를 주로 하며, 조·옥수수·콩·팥·메밀·녹두·감자 등이 많이 생산된다. 특용 작물로 잎담배·대마 등이 재배되며, 특히 대마 생산이 많아 가내 수공업으로 삼베를 생산하는데, 이 삼베는 영포로서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양잠이 성하여 생산된 누에고치로 항라와 명주를 직조해 농가 소득을 올리고 있다. 또한 축우 사육도 성하여 신리에서 종모우 원종이 생산되어 전국적으로 산매되고 있다.

임업도 발달해 영림서가 설치되어 조림 사업·원목 생산·제재 등이 행해지고 있으며, 한약재·산채 등도 많이 산출된다. 교통은 영원∼평양간 2등도로가 면의 서남부를 지나며, 영원∼함흥간 2등도로와 영원∼맹산간 도로가 면의 중앙을 남북으로 지나고 있다.

유적으로는 성장리에 발해왕이 축조했다고 전해지는 읍성(邑城)이 있으며, 면의 동쪽에 동문정(東門亭)이 있고, 마막현에는 문묘(文廟)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가 있다.

영녕(永寧)·신율(新栗)·기대(箕垈)·신(新)·대룡(大龍)·덕암(德巖)·성장(城壯)·방산(方山)·남산(南山)·임탄(荏灘)·봉덕(鳳德)·도평(都坪)·문곡(文谷)·마상(馬上)·직(直)·마근담(麻槿潭)·석막(石幕) 등 17개 이가 있다.

[온화면溫和面]

군의 중앙에 위치한 면. 인구 4,009명(1938년 현재). 면 소재지는 온양리이다. 동쪽에는 황처령(黃處嶺, 1,024m)·영단산(永丹山, 1,532m)이 솟아 있고, 서쪽에는 백암산(白巖山, 1,105m)이, 북쪽에는 남곡봉(南谷峰, 1,487m)이 솟아 있다. 또한 대동강의 지류인 온창강(溫倉江)이 면의 중앙을 남서류해 면의 남부에서 대동강에 합류된다.

밭농사를 주로 하며, 조·옥수수·콩·팥·녹두·감자 등이 많이 생산된다. 특용 작물로 잎담배와 대마를 재배하며, 특히 대마 재배가 많아 가내 수공업으로 삼베를 직조해 면포와 교환하여 사용한다.

양잠이 활발해 생산된 누에고치는 항라와 명주를 생산해 농가 소득을 올린다. 자연 초지와 곡초를 이용한 축우 사육도 활발하다.

도로는 영원∼함흥간 2등도로가 면의 중앙을 통과하며, 여기에서 분기된 작은 도로들이 이웃 면과 연결되어 있다. 온양리에는 여러 가지 병에 치료 효과가 좋다는 온화온천이 있어 온천객들이 많이 찾는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가 있다. 온양(溫陽)·회양(回陽)·신답(新沓)·용덕(龍德)·수하(水下) 등 5개 이가 있다.

[태극면太極面]

군의 서부에 위치한 면. 인구 6,807명(1938년 현재). 면 소재지는 태극리이다. 본래 덕천군의 태극내면과 태극외면 지역이었으나 1917년에 2개 면을 병합해 태극면으로 개칭했으며, 1935년에 영원군에 속하게 되었다.

동쪽에는 백애산과 고성산이 영락면과의 경계를 이루었고, 북쪽에는 묘향산이 평안북도 영변군·희천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묘향산에서 발원한 소하천이 남동류해 면의 남부에서 대동강에 합류된다.

밭농사를 주로 하며, 조·옥수수·콩·팥·녹두·메밀·귀리·감자 등이 많이 생산된다. 특용 작물로는 잎담배·대마가 생산되며, 특히 대마 재배가 많아 농가에서 가내 수공업으로 삼베를 직조해 면직물과 교환하여 사용한다.

뽕나무가 많아 양잠이 성한데, 생산된 누에고치로 항라와 명주를 생산해 농가 소득 증대에 기여하고 있다. 축산업도 성하여 집집마다 2∼3두씩의 소를 키우고 있다. 광업은 무극광산과 태극광산에서 금·은이 생산된다.

도로는 영원∼묘향산간 3등도로가 면의 중앙을 통과하고 있을 뿐이다. 유적으로는 영창리에 법련사와 서산대사(西山大師)가 심었다는 세죽(細竹)밭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가 있다. 태극(太極)·영창(永昌)·화순(和順)·송산(松山)·율지(栗枝)·풍전(豊田) 등 6개 이가 있다.

광복 후 변천

1952년 12월 태평리가 평안북도 향산군에 편입되었고, 북동부의 소백면·대흥면·신성면이 분리되어 대흥군이 신설되었다. 나머지 영원·영락·성룡·덕화·온화·태극면의 면 행정단위를 폐지하고 이 단위로 분할, 통폐합해 군의 행정구역을 개편하였다. 1974년 10월 대흥군의 용대·청산·순호·온양·회양·신흥리를 흡수, 편입하였다.

현재 평안남도 북동부 대동강 상류 유역에 위치하며, 동쪽은 대흥군, 서쪽은 덕천시와 평안북도 구장군·향산군, 남쪽은 맹산군과 함경남도 요덕군, 북쪽은 자강도 희천시·동신군과 접해 있다. 동경 126°20′∼126°51′, 북위 39°45′∼40°11′에 위치하며, 면적 1,182㎢, 인구 3만6200여명(199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은 영원읍과 장산(長山)·용성(龍城)·신대(新垈)·신(新)·신막(新幕)·마산(馬山)·문곡(文谷)·풍전(豊田)·송산(松山)·영창(永昌)·내창(內倉)·화순(和順)·도평(都坪)·승통(勝通)·중삼(中三)·신흥(新興)·온양(溫陽)·회양(回陽)·수하(水下)·도삼(都三)·창산(倉山)·대성(大城)·용대(龍垈)·청산(淸山)·순호(順湖) 등 25개 이로 되어 있다. 군 소재지는 영원읍이다.

이 군은 평안남도의 전형적인 동부 산간지대에 있다. 북서부에는 묘향산맥, 동북부에는 북대봉산맥이 뻗어 있으며, 여기에는 소백산(2,015m)·천쾌산(1,929m)·함지골령(1,239m)·황처령(1,072m)·다섯령(776m)·맹산령(1,052m)·두류고개(405m) 등이 솟아 있다.

군의 중심부를 남천강·성룡천·내창강·승룡천을 비롯한 10여 개의 지류들과 합류한 대동강이 남서 방향으로 흐르고 있으며, 여기에는 산치·산천어·뱀장어·쏘가리 등의 담수어족이 서식하고 있다. 기반암은 석회암·화강암·화강편마암이고, 토양의 대부분은 산악표백화 갈색산림토이다.

기후는 연평균기온 7.4℃, 1월평균기온 -12.1℃, 7월평균기온 23℃이며, 첫서리는 10월 12일, 마지막 서리는 4월 27일경에 내린다. 연평균강우량은 1,268㎜이다. 산림은 군 넓이의 90% 이상으로, 소나무·참나무·전나무·분비나무·전나무 등과 기름나무림. 섬유제지림. 산과실림들이 우거져 있다.

산림에는 머루·다래·고사리·만삼·창출 등의 산과일·산채·약초와 밀원식물, 그리고 우리 나라 특산식물인 채양버들이 자라고 있으며, 곰·사향노루·산양·밀화부리·개구마리 등 여러 가지 야생 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이 군의 주요 산업은 농업과 공업이다. 농경지는 군 넓이의 4.2%에 불과하며, 대부분이 영원분지와 강·하천 유역에 분포되어 있다. 농산물은 옥수수가 대부분이며, 그 밖에 쌀·콩·보리·수수·감자 등이 경작되고 있다.

공예작물로는 담배·깨·역삼 등이 있고, 배추·무·고추·수박 등의 채소와 사과·배·추리·포도 등의 과일도 생산되고 있다.

이 군은 넓은 방목지를 바탕으로 축산업이 발전하였다. 한우·양·염소·토끼와 함께 돼지·닭을 사육하고 있으며, 그 중 한우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풍성리에는 칠색송어 등을 양식하는 담수어장이 있으며, 벌꿀은 창산·승통·풍전·화순리에서, 누에고치는 풍전리에서 많이 생산된다.

군에는 임산작업소가 설치되어 원목을 생산, 공급하고 있으며, 목재 가공업이 발전하였다. 그 밖에 식료·일용품·악기·제약·직물·건재 공장 등 소규모 지방 공장이 배치되어 있으며, 악기류 제품과 약품 등이 알려져 있다.

이 군은 수력 자원이 풍부해 1991년부터 대동강 상류 지역을 막아 영원수력발전소를 건설 중에 있다. 교통망으로는 맹산·북창·덕천·자강도 희천·대흥 등지로 통하는 도로가 있다. 영원∼덕천간에는 선박이 운항되고 있으며, 이 지역의 원목은 뗏목으로 수송되고 있다.

대동강 상류인 이 군에는 자연굴과 뛰어난 경승지가 많다. 장상리에는 옥굴이 있고, 내창리에는 높이 25m의 용포폭포가 있다. 온양리에는 광물질회박규토인 온천이 있고, 화산리와 장산리에는 약수가 있다.

유적으로 영원읍 주위에는 고읍성이 있으며, 읍의 서쪽에는 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 쌓은 천리장성의 일부인 옛 성터가 남아 있다.

참고문헌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평안남도지』(평안남도지편찬위원회)
『북한문화재실태와 현황』(문화공보부문화재관리국, 1985)
『이북5도30년사』(이북5도위원회, 1981)
『인물의 고향』-북한편(중앙일보사, 1991)
「북한지지요람」(통일원)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