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대각리 돌덧널무덤 ( 돌덧널무덤)

목차
관련 정보
포항 대각리 돌덧널무덤 발굴 모습
포항 대각리 돌덧널무덤 발굴 모습
선사문화
유적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대송면에 있는 삼국시대 굽다리접시 · 잔 등이 출토된 돌덧널무덤. 석곽묘.
이칭
이칭
영일대각리돌덧널무덤
정의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대송면에 있는 삼국시대 굽다리접시 · 잔 등이 출토된 돌덧널무덤. 석곽묘.
개설

1992년 11월포항시(옛 영일군) 대송면 예비군중대가 진지 보수를 위해 땅을 파던 중 삼국시대 토기편이 노출되어 1992년 12월 10일∼12월 26일에 걸쳐 국립경주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유적의 조사지점은 영일군 오천읍과 대송면에 걸쳐 있는 해발 481m에 이르는 운제산(雲悌山)의 북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 말단부에 해당된다. 조사지점 위쪽의 이 능선 일대에도 수 백기의 무덤이 분포하고 있으며, 대부분이 도굴에 의해 무덤이 심하게 방치되어 있었다.

유적 바로 옆에는 대송면사무소에서 대각마을로 이어지는 작은 길이 나있다. 길을 넓힐 때와 민가를 짓는 과정에서 유적의 일부가 잘려나갔다.

발굴조사 결과, 모두 4기의 돌덧널무덤이 확인되었다.

내용

모두 할석으로 축조된 반지상식의 돌덧널무덤이다. 장축은 북동-남서방향이나 제2호분만은 동서방향이다.

축조방법은 먼저 구덩이를 낮게 판 뒤, 구덩이 벽에 바짝 붙여 덧널을 만들었다. 커다란 할석을 세워 벽체를 만든 뒤, 그 상단에 다시 납작한 돌들을 눕혀 쌓아 높이를 일정하게 하여 뚜껑돌을 덮었다. 이러한 축조기술은 무덤의 구조가 지상화 되어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경주일원뿐만 아니라 영남지역의 비슷한 고분과 공통된다.

바닥에는 4기 모두 잔자갈을 깔아 시상을 마련하였다. 부장공간에는 자갈을 깔지 않고, 단벽은 1매의 할석으로 되어 있다. 이 점은 이 지역 무덤축조의 특징이다.

유물의 부장방법은 머리와 발치 양쪽으로 부장하였다. 제2호분의 경우, 머리쪽에는 주로 합·굽다리접시·잔 등의 소형 토기류와 철기를, 발쪽에는 비교적 큰 항아리 종류를 부장하였다. 특징적인 것은 같은 기종의 토기를 일렬로 눕힌 채 부장한다든지, 다른 기종의 유물을 뚜껑으로 대신 사용하고 있는 점이다.

토기는 굽다리접시·연질합·굽다리목항아리·항아리 등 비교적 다양하게 출토되었으나, 철기는 매우 소략한 편이다. 토기의 특징들은 경주지역의 통일기 양식 토기와 거의 동일하다. 두향을 추정할 수 있는 것은 제2호분뿐으로 손칼의 방향으로 보아 머리를 동쪽으로 두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무덤의 축조순서는 제1호분과 제4호분이 먼저 만들어졌고(제1호분과 제4호분 사이의 선후관계는 불명), 제1호분의 벽석 보강토인 흑갈색 점토를 파고 제2호분와 제3호분이 만들어졌으나 그 시기 차는 유물로 보아 거의 나지 않는다. 이 유적의 연대는 반지상식의 무덤구조와 토기형식 등으로 미뤄볼 때, 대략 6세기 중엽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영일대각리돌덧널무덤」(국립경주박물관, 『경주동방동기와가마터』, 1993)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문은순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