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교대한성결교회는 1962년 4월 기독교대한성결교회에서 신앙노선의 차이로 갈라져 나온 보수적 복음신앙 성격의 교단이다. ‘예성’이라는 약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예수교대한성결교회는 1901년 감리교인으로 일본에 와 있던 카우만(Cowman,C.E.)과 그의 친구 킬보른(Kilbourne,E.A.)이 요한 웨슬레의 성경적 복음을 전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설립한 동양선교회(Oriental Missionary Society)에 의해 1921년 9월 만들어진 ‘조선예수교동양선교회성결교회’라는 명칭의 교단에 연원을 두고 있다.
이 교단은 1940년 일제의 격심한 탄압으로 선교사들이 한국을 떠났으며 1943년 12월 재림사상의 불온성을 이유로 해산당했으나, 광복을 맞아 ‘기독교대한성결교회’라는 명칭으로 재건되었다. 그러나 1961년 4월, 기독교연합기관인 한국기독교교회협회(NCC)와 복음동지협의회(NAE)에 가입한 일로 인하여 교단 내의 분열이 야기되었다.
당시 교단 내의 지배적 분위기가 탈퇴보다는 보류쪽으로 기울게 되자, 기존의 교단노선을 비판하던 측에서 “연합기관에서 탈퇴하는 동시에 신앙의 세속적 부패를 바로잡아 본래의 성결교회 복음신앙 노선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을 내세우며 분립을 결정하게 되었다.
1961년 12월에 교단의 통합을 위한 합동특별총회를 가졌으나 두 진영 사이의 갈등은 지속되었고, 다음 해 4월의 제17회 총회에서 신앙노선의 환원과 동시에 교단명칭도 ‘예수교대한성결교회’로 바꾸고 기존교단에서 이탈하였다.
분립 당시 600여 교회 가운데 270여 교회가 참가했으나 기독교대한성결교회측의 불법단체 주장으로 한때 교세를 상실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63년 4월 법인인가를 받고 기관지 『성결』을 발행하기 시작하였으며, 11월에는 종로구 행촌동에 신학교를 설립하여 1965년 12월에 첫 졸업생을 내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동양선교회 선교사와 기성교단과의 갈등이 계속 진행되어 혼란에 빠지기도 하였다.
1981년 5월에는 예성 60주년 연차대회 및 총회를 개최하고 성서교육의 평생교육화를 교단의 교육정책으로 채택하였으며, 개신교 전래 100주년이었던 1984년 5월에는 1973년에 이탈한 53개 교회가 다시 복귀함에 따라 성결교신학교를 두 배로 확장하고 교세를 신장시키기 위하여 노력했으며, 1988년에는 예성 연합측과의 재결합을 성사시키기도 하였다.
보수신앙을 지키기 위해 보수교단협의회에 가입하고 있으며 정치적으로 국제기독교연합회(ICCC)에 참여하고 있다.
이 교단은 중생·성결·신유·재림의 4중복음과 7개 항목의 지도원리를 중심으로 삼고 있다. 사도신경을 바탕으로 하는 복음신앙 노선을 지키고 그리스도 중심 교회를 세우며, 신자의 심령부흥을 꾀하며 재림주를 기다리는 것 등이 그 주요 내용이다. 교단의 조직은 개교회의 당회를 기본으로 하여 감찰회, 지방회, 총회가 있다.
2009년 현재 1,245개 교회와 16만여명의 교인이 있으며, 교육기관으로 성결대학교, 성결교신학대학원, 총회성결교신학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