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명항 초상 및 양무공신교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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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명항 초상 및 양무공신교서
오명항 초상 및 양무공신교서
회화
유물
국가유산
오명항(吳命恒, 1673~1728)의 초상화와 보관함 및 공신교서.
이칭
이칭
오명항영정병함부양무공신교서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오명항 초상 및 양무공신교서(吳命恒 肖像 및 揚武功臣敎書)
분류
유물/일반회화/인물화/초상화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보물(1993년 11월 05일 지정)
소재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로 6 (상갈동, 경기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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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오명항(吳命恒, 1673~1728)의 초상화와 보관함 및 공신교서.
내용

199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 초상화는 세로 173.5㎝, 가로 103.4㎝, 교서는 세로 42.9㎝, 가로 289㎝.

영조 연간에 제작된 오명항 초상화는 얼굴이 좌안팔분면(左顔八分面), 몸체가 구분면(九分面)으로 그려졌다. 그리고 오사모(烏紗帽)에 짙은 녹색포를 입은 공수 자세(拱手姿勢)의 전신교의좌상(全身交倚坐像)으로서 공신도상의 전형적 형식을 보여 준다. 부착한 흉배는 쌍학문양(雙鶴文樣)이며, 서대(犀帶)를 두르고 있어 공신 책록 후의 좌찬성 겸 병조판서라는 그의 품계와 부합된다.

화상은 사모의 높이가 높고 깃이 파이고 단령의 소매가 넓은 점은 당대의 복제를 반영하고 있다. 발받침대 위에 화문석이 깔려 있고, 교의자에 표피가 걸쳐져 있는 점, ‘八’자형으로 벌린 발의 놓임 등은 같은 시기의 분무공신상(奮武功臣像)인 조문명 초상(趙文命肖像), 권희학 초상(權喜學肖像), 김중만 초상(金重萬肖像) 등과 유사하다.

안면 처리에 있어서도 안색은 갈색이 주조색이고 안면의 윤곽선 및 이목구비를 규정하기 위해서 짙은 적갈색계의 선조가 사용되었다. 안면에서 오목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모두 적갈색계의 약간 짙은 적기(赤氣)로서 선염 처리되었다. 그러나 19세기 중엽 이후 나타나는 도식화나 경화(硬化)에는 아직 이르지 않았다.

오명항은 원래 얼굴에 마맛자국이 있었던 듯 화사는 이를 자연스럽게 표현하였고 코 밑의 점과 왼쪽 귀에서 턱으로 가는 중간에 있는 점들도 잘 묘출하였다. 강직하고 진지한 오명항의 표정을 잘 포착해 낸 작품이다.

오명항 초상은 분무공신 1등에 녹훈될 당시에 그려진 것으로써, 분무공신상의 특성과 18세기 전반기 초상화의 전형을 잘 보여준다.

이 초상화와 함께 두루마리 형식의 양무공신교서(揚武功臣敎書)가 전한다. 1728년(영조 4) 4월에 발급된 것으로서 저지(楮紙) 바탕에 견직(絹織)으로 배접하였다.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공신도감(功臣都監)에서 1등 1명, 2등 7명, 3등 7명 등 총 15명에게 공신을 책훈한 것이다. 본 녹권은 바로 1등 공신인 오명항에게 녹훈한 교서로서 귀중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동산문화재지정보고서』1992∼1993 지정편(문화재관리국,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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