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출신. 1923년 진주에서 백정(白丁)들의 신분해방을 위한 형평운동(衡平運動)이 일어나자, 형평사(衡平社) 공주지사장으로 활약하였다. 형평사 본부를 서울에 두는 문제로 내분이 일어나자, 1924년 3월 장지필(張志弼) 등과 형평사혁신회(衡平社革新會)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서울이전을 결의하였다.
이어 형평사혁신동맹본부를 서울에 설치하여 진주의 형평사연맹총본부와 대립하였다. 같은 해 8월 형평사 통일조직으로 조선형평사중앙총본부가 결성될 때 중앙위원, 1925년 4월 전조선형평대회로 개편될 때 중앙집행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이동구(李東求)와 함께 만주로 망명하여 1926년 정의부(正義府)의 고려혁명당(高麗革命黨) 조직에 형평사 대표자격으로 참가하여 독립군을 양성하다가, 1926년 12월 만주 장춘(長春)에서 붙잡혀 1928년 4월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4년형을 언도받고 복역하였다.
1968년 대통령표창,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