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서울에는 불불당(不不堂), 평양에는 오심당(吾心堂)의 이름으로 각각 조직되었으나, 1929년 두 조직을 하나로 통합하여 오심당으로 명명하였다.
1931년 일본이 대륙침략을 획책하자 중앙대표 김기전, 평양대표 김길수(金吉洙), 지방대표 이도순(李道淳) 등이 모여 1935년경에 일제가 국제적·정치적으로 위기에 봉착할 것으로 전망하고 이 때에 조선독립운동을 추진하기 위해 당원과 자금을 늘리기로 결정하였다.
당원은 서울·황해도·평안남북도·함경남북도에 걸쳐 10년 이상 천도교를 독실히 믿어온 교도들 가운데에서 신중히 선발하였다. 조직이 발각되기까지 230명의 인원이 포섭되었는데 당원들은 1년에 5원씩 운동자금을 부담하여 대중운동의 준비를 하도록 의무화하였다. 또, 날마다 다음의 6개 사항을 암송하여 자기훈련을 하도록 하였다.
①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 ② 육능(六能:能自奮 能自新 能自動 能自强 能自辨 能自當), ③ 서원인험 시정생활(誓願認驗 侍定生活), ④ 강행각층 창생조직(强行各層 蒼生組織), ⑤ 담당훈련 관계부중(擔當訓鍊 關係部衆), ⑥ 물망정진 구경목표(勿忘精進 究竟目標).
독실한 교도들을 점조직으로 관리하였기 때문에 수 년 동안 노출되지 않았는데, 평안남도 안주에서 발생한 천도교도 불온언동의 조사가 우연한 단서가 되어 1934년 9월 230명이 모두 검거되었다. 그 가운데 일제는 71명만을 추려 「치안유지법」위반이라는 죄명으로 투옥시켰다.
오심당 당원들은 천도교청년조직의 핵심적인 지도자들로서 청년조직에 막대한 타격이 예상되었으나 일제는 국제여론을 고려하여 사건내용이 경미하다고 하여 60여 일 만에 모두 석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