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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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 화상
공민왕 화상
민간신앙
개념
위대한 힘을 발휘했거나 억울하게 죽은 왕으로 액운을 물리치고 재복을 주거나 마을의 수호 역할을 한다는 신(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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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위대한 힘을 발휘했거나 억울하게 죽은 왕으로 액운을 물리치고 재복을 주거나 마을의 수호 역할을 한다는 신(神).
내용

민간인들이 신앙하는 왕신은 단군(檀君)을 비롯하여 신라의 경순왕, 고려의 공민왕, 조선의 태조대왕(李成桂)·단종대왕·세조대왕·뒤주대왕(사도세자) 등인데, 이들 왕신은 영웅신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민간인들이 신앙하는 신은 크게 자연신과 인신(人神)의 두 종류로 크게 구분되는데, 인신 중에는 탁월한 인물인 장군이나 고승·국왕과 같은 인물의 영혼을 신으로 신앙한다. 이와 같은 영웅신의 경우 위대한 힘을 가진 영웅이거나 아니면 억울하게 죽어 원한에 찬 영웅의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데, 전자의 왕신으로는 단군과 조선 태조대왕, 그리고 후자의 왕신은 공민왕과 단종대왕·뒤주대왕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 왕신은 액운을 물리치고 재복(財福)을 주는 신으로서의 직능을 가지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마을을 수호해 주는 동신(洞神)으로 신당에 모셔지기도 한다.

무당이 왕신을 무신(巫神)으로 신앙할 경우, 단군은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고 있어서 무당의 집에 무신도(巫神圖)로 단군의 화상을 그려 봉안한다. 특히 단군을 몸주로 모시는 무당의 경우, 단군의 영험이 크다고 믿어 자긍심이 대단하다. 단군이 무신도로 봉안되지 않는 경우에도 단군은 무가(巫歌)나 굿 속에서 무신으로 신앙된다.

태조대왕은 중·북부지역에서 신앙되며, 공민왕과 뒤주대왕은 서울과 경기도 일원에서, 단종대왕은 강원도 일부지역에서 신앙되고 있다. 한편, 왕신이 마을을 수호해 주는 동신으로 신앙되는 경우는 중부지역과 남부지역 일원에서 발견된다.

왕신을 신앙하게 된 유래는, 단군의 경우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에 기록으로 전하는 것 외에 경기도 강화군에 단군과 관련된 유적과 전설로 전해지고 있다.

강화도의 마니산 상봉에 참성단을 쌓고 매년 10월 3일 개천절이 되면 민간인들과 무당들이 그곳에 가서 하늘을 향하여 단군에게 제사를 올린다. 그리고 강화도 길상면의 정족산(鼎足山)에 남아 있는 옛 성을 삼랑성(三郎城)이라 하는데, 이 성은 단군이 세 아들에게 명해서 쌓게 한 것이라는 전설이 전한다.

또, 서울과 경기지역에서 무당이 굿을 할 때 맨 먼저 ‘부정거리’를 하고 나서 신을 맞는 ‘가망청배(請陪)’를 한다. 이때는 무당이 백지 석 장을 오른손에 잡고 방울을 왼손에 들고 북쪽을 향하여 절을 네 번 하는데, 이것은 단군을 맞기 위한 청배라고 한다.

태조대왕을 모신 신당의 전형적인 것이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진보리에 있는 영당(影堂)이다. 이 신당이 생기게 된 유래는 옛날에 태조대왕을 그린 신상이 바람에 날아와 나뭇가지에 걸려 있어서 그 자리에 당을 짓고 태조대왕을 모셨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또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동의 부군당에도 태조대왕을 주신으로 모시고 있다.

공민왕을 주신으로 모신 신당은 서울특별시 마포구 창전동의 공민왕사당이다. 공민왕을 이곳에 모시게 된 유래는 다음과 같다. 이 당이 있는 곳은 본디 옛날에 영의정이 녹을 주던 창고인데, 공민왕이 원혼이 되어 갈 데 없이 떠돌아다니므로 그렇게 떠돌아다니지 말고 만조백관들의 녹을 주는 창고나 지키고 있으라는 뜻으로 이곳에 공민왕의 영혼을 모시게 되었다고 전한다.

이 밖에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에 있었던 부군당에서도 공민왕 내외를 주신으로 모셨는데, 1979년대 후반에 제당이 소멸하고 제의도 그쳤다.

서울특별시 마포구 현석동에는 사도세자를 모신 부군당(뒤주대왕당이라고도 하는데, 기록에는 대동당이라고 하였음.)이 있었는데, 억울하게 죽어서 저승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도세자의 원혼을 모시게 되었다는 유래담이 전한다.

이 당에는 해나무 세 그루가 있고 6칸 크기의 기와집으로 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당이 소멸하였다. 제일은 음력 10월 1일 밤인데 통돼지를 잡아서 제물로 올리는 대대적인 동신제(洞神祭) 형식으로 제를 지냈으나 1989년부터 중단되었다.

왕신신앙은 특출한 위업을 달성한 국왕이나 억울한 삶을 산 국왕을 신으로 모심으로써 국왕의 위력이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 신앙이다. 단군이나 태조대왕을 봉안함으로써 액운을 물리치고 재복을 받게 된다고 믿으며, 반대로 공민왕이나 뒤주대왕·단종대왕과 같이 억울하게 죽은 왕의 외로운 원혼을 위무(慰撫)함으로써 재액초복(除厄招福)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후자의 경우, 한국인의 정서라 할 한(恨)과 한풀이가 어떻게 민간신앙에 반영되고 있는가 하는 상호관계를 여실히 드러낸 신앙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한국무속연구(韓國巫俗硏究)』(김태곤, 집문당, 1981)
『한국민속대관 3-민간신앙·종교-』(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2)
『한국민간신앙연구』(김태곤, 집문당, 1983)
『서울민속대관 1-민간신앙편-』(서울특별시, 1990)
『동신당(洞神堂)』(김태곤, 대원사, 1992)
집필자
김태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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