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문행(文行)이다. 일명 왕유(王柔)로 쓰기도 한다. 본래 성은 박씨(朴氏)로 광해주(光海州: 지금의 춘천) 사람인데, 고려 태조로부터 왕씨를 받고 해주왕씨(海州王氏)의 시조가 되었다. 딸이 태조 비 예화부인 왕씨(禮和夫人王氏)이며, 현손인 왕자지(王字之)는 예종 때 참지정사에 올랐다.
경사(經史)에 능통하여 처음에는 궁예(弓裔)의 휘하에서 원외(員外)를 거쳐 동궁기실(東宮記室)에 이르렀으나, 궁예의 정치가 어지러워지자 출가하여 산곡에 은거하였다. 918년에 태조가 배현경(裵玄慶)·복지겸(卜智謙) 등의 추대를 받아 고려를 창업하자, 이 소식을 듣고 태조에게로 왔다.
이 때 태조는 은나라의 고종이 부암(傅巖)에서 현상(賢相) 부열(傅說)을 얻고, 주(周)나라의 문왕이 위수(渭水)에서 태공망(太公望: 呂尙)을 얻은 고사에 비유하여 극진히 예우하고 관대(冠帶)를 하사하였다. 이 후 기밀을 관장하는 요직에 있으면서 왕씨 성을 받았다.
922년에는 진보(眞寶: 지금의 청송)의 성주 홍술(洪術)이 귀부를 원하므로 경(卿) 함필(含弼)과 함께 위유(慰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