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다리방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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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식을 찧거나 빻는 데 쓰는 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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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곡식을 찧거나 빻는 데 쓰는 연장.
내용

형태는 대체로 디딜방아와 같으나 다리가 벌어지지 않고 곧게 되어 한 사람이 발을 딛어 찧는다. 이것은 ‘디염방아·조작방아·디욤방아’라고도 한다.

확이나 쌀개 등은 디딜방아에 비해 작은 편이며, 몸체도 가벼워서 확을 땅에 묻지 않고 키가 낮은 돌절구로 대신하는 일도 있다. 따라서 디딜방아 확 뒤쪽에 세우는 방아머리(돌을 세모꼴로 깎아 만든 것으로 곡물이 튀어나가는 것을 막아 줌)도 없다.

다리쪽 좌우에 기둥을 세우고 사람의 팔높이에 알맞도록 가로목[橫木]을 걸어서 방아질을 할 때 이것을 쥐어 몸의 중심을 잡는다. 충청도에서는 이 나무를 ‘찌껑나무’라고 한다. 찌껑나무를 세우지 않을 때는 방앗간 천장에서 내린 새끼줄을 방아꾼이 잡는다. 방아의 몸체나 공이는 참나무·느티나무·대추나무·밤나무 등 목질이 단단한 나무로 만든다.

외다리방아로는 한 사람이 하루에 벼 닷 말 내지 여덟 말을 찧는다. 방아일은 ‘방아품’이라고도 한다. 이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방아품팔이’요, 다른 하나는 ‘방아품앗이’이다. 앞의 것은 노동력의 대가로 품삯을 받는 일이고, 뒤의 것은 순서에 따라 돌아가면서 상대방의 일을 도와 주는 것이다.

방아를 제작하는 사람은 적당한 나무를 고르고 나서 문복장이에게 가서 나무를 벨 날을 잡으며 이때부터 나무에 왼새끼줄을 감아서 이 나무로 방아를 만든다는 뜻을 사람들에게 간접적으로 알린다. 나무를 자를 때는 나무 끝 간 곳을 보고 맨 처음 도끼질을 하는 사람이 왼손도끼로 “어명(御命)이요.” 하는 소리를 내면서 세 번 찍은 뒤에 비로소 벌목한다.

방아를 다 만들면 다시 이를 앉히는 날을 잡으며 이날 고사를 지낸다. 고사 직전에 방아 몸통에 ‘경신세경신월경신일경신시강태공조작(庚申歲庚申月庚申日庚申時姜太公造作)’이라는 글귀를 써둔다. 이를 ‘강태공의 외기둥 사주(四柱)’ 또는 ‘방아 상량(上樑)’이라고도 한다. 곳에 따라서는 경신 운운한 뒤에 ‘강태공 하마처(下馬處)’라고 쓰기도 한다.

그런데 생년월일시가 앞에서처럼 ‘경신’ 하나로 맞아떨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 따라서 이것은 방아가 탈없이 오래가기를 바라는 심정의 발로라고 하겠다. 방아를 걸고 나면 촛불을 켜고 떡시루에 정화수 한 그릇을 놓고 여주인이 고사를 지낸다. 이때의 축원은 대략 다음과 같다.

“토지지신(土地之神)님 이 ○○댁 대주(大主) ○○생(生)이 ○○년 ○월 ○○일날 방아를 만들어 걸었습니다. 오늘 이 지성 받으시고 이 집에 재수복덕 내려 주시고 아무 후환 없이 하여 주옵소사. 흥겹게 받으시고 기꺼이 받으시고 소원성취 주사이다.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고사를 지내지 않거나 지내도 성의가 부족하면 방아동티가 생기는데, 그것은 식구 중 한 사람이 원인 모를 병에 걸리는 것이다. 이때에는 역시 날을 받고 무당을 불러서 ‘방아동티를 잡는다.’. 무당은 방아 머리를 도끼로 찍는 시늉을 하면서 ‘동토잡이 축원’을 외운다. 첫 방아는 남을 주지 않고 반드시 주인집 방아를 찧는다. 주인이 으뜸이라는 뜻이다.

방아를 다른 곳으로 옮길 때도 미리 날을 받고 고사를 올린다. 그날 초저녁 방앗간에 형편대로 제물을 차리며 방아 머리에는 기름보[油布]를 씌우고 새끼로 동인다. 지게에 올려 놓은 다음 “강태공이 조작방아 떠나간다.”고 큰소리로 외친다. 이렇게 해야 앞에서와 같은 방아동티가 일어나지 않는다.

또, 곳에 따라서는 이웃 마을에 장티푸스나 천연두와 같은 전염병이 돌 때 이 방아로 액막이를 하였다. 밤에 다른 마을에 몰래 가서 방아를 훔쳐 오는데, 이때에는 반드시 상여소리를 내야 한다.

방아는 마을 입구의 고개나 서낭당이 있는 자리에 거꾸로 세우며 다리에는 여자의 속옷이나 개짐을 걸어 둔다. 통행인은 이것을 보고 전염병이 도는 마을의 출입을 삼가며, 바로 이 때문에 전염병이 확산되는 것을 막는 효과를 거두기도 한다. 이때 방아 주인은 자기 소유라는 사실을 주장하지 못하며, 병이 없어진 뒤에 사람들은 방아를 그 집에 다시 설치해 준다.

민간에는 한 집에 임신부가 둘 있고 이들이 같은 해에 해산을 하게 되면 불길하다는 속신(俗信)이 있다. 따라서 한 부인이 안채에서 아이를 낳으면 다른 부인은 부득이 방앗간을 산실(産室)로 삼았으며, 일단 아이를 낳아 탯줄을 자른 뒤에라야 안채로 들어간다.

참고문헌

『한국의 농기구』(김광언, 문화재관리국, 1969)
『한국농기구고』(김광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1986)
집필자
김광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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