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은 중화군과 황해도 황주군, 서쪽은 황해, 남쪽은 황해도 은율군·안악군, 북쪽은 강서군에 접하고 있다. 동경 125°10′∼125°38′, 북위 38°38′∼38°56′에 위치하고 있으며, 면적 744.8㎢, 인구 13만 4466명(1944년 현재)이다. 13개 면 130개 이로 되어 있으며, 군청 소재지는 용강면 옥도리이다.
묘향산맥의 말단부에 위치해 군 중앙부에 그다지 높지 않은 오석산(烏石山, 565m)이 솟았을 뿐 그 밖의 지역은 대체로 300m 내외의 구릉성 산지가 전개되는 지형적 특색을 이룬다. 동쪽 경계에 석천산(石泉山, 302m), 남쪽에 우산(牛山, 507m), 북쪽에 광동산(廣東山, 396m)·남우이산(南牛耳山, 308m)·쌍아산(雙蛾山, 306m), 중앙에 신덕산(神德山, 410m) 등이 있다.
군내 각지의 산지에서 발원한 신녕강(新寧江)·인황천(仁皇川)·사동천(砂洞川)·남천(南川) 등의 지류를 합친 대동강이 남부 일대를 지나 황해로 유입한다. 대동강 하구의 수심이 깊어 수운에 이용될 뿐 아니라 어항 발전에도 기여하는 바가 크다.
저수지로는 용강면의 대성호(大成湖)와 용강저수지, 삼화면의 우산장(牛山莊)호수, 충흥리저수지 등이 있다. 서쪽 해안선은 총연장거리가 157㎞에 달하지만, 바다 멀리까지 수심이 얕고 간만의 차가 심하며 간석지(干潟地)를 이룬 곳이 많아 항구가 될 만한 좋은 곳이 드물다.
앞바다에는 덕도(德島)·화도(禾島)·검덕도(儉德島)·피도(避島)·취라도(吹螺島) 등의 섬이 있다. 기후는 황해에 면해 해양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내륙지방보다는 기온이 따뜻한 편이지만 때에 따라서는 한서의 교차가 심한 대륙성기후를 나타낸다.
연평균기온 10.2℃, 1월 평균기온 -6.9℃, 8월 평균기온 25.2℃, 연강수량 910㎜로 우리 나라 3대과우지 중의 하나이다. 광량만에서의 첫 얼음은 10월 20일경, 마지막 얼음은 4월 9일경이다.
[고 대]
이 군 동쪽 경계에 위치한 석천산의 지석묘군으로 보아 이미 신석기시대에 이 곳에 우리 선조들이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전설에는 기자(箕子)의 52대손인 선우 양(鮮于諒)이 금마(金馬)땅에서 마한을 이루고 있었으나 백제가 침범해 오자 지금의 용강 오석산 밑으로 옮겨와 황룡국(黃龍國)을 이루었고, 선우 양의 8대손 때에 고구려가 이 곳을 점령해 황룡성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 곳이 고조선의 땅이었다가 한때 한(漢)나라 군현세력의 지배 아래에 들어갔던 사실은 1913년 해운면 성현리에서 발견된 점제현신사비(秥蟬縣神祠碑)로써 알 수 있다. 각지에서 발굴된 고구려 고분들은 고구려 세력이 남하하면서 이 땅이 고구려의 영토로 편입되었음을 나타내고 있으나 군현으로서의 건치경위(建置經緯)는 알 길이 없다. 고구려 때 함종은 아선성(牙善城)으로 불렸다.
[고 려]
고려시대에도 황룡성 또는 군악(軍嶽)으로 불렸다. 태조대에 북진정책을 취하면서 각지 요새에 군진(軍鎭)을 설치할 때에 황룡성과 아선성에도 군진을 두었다. 989년(성종 8) 서북면병마사를 두고 평안도지방에 군정을 실시할 때, 이 지방도 그 관할구역으로 편속되었다.
995년 10도의 하나인 패서도(浿西道)에 편속되었다가, 1018년(현종 9) 4도호부 8목제가 실시될 때 황룡성·아선성은 용강현(龍岡縣)·함종현(咸從縣)으로 개편되어 영주(寧州)에 설치된 안북대도호부(安北大都護府)의 직속현이 되었다. 고종대에 몽고군의 침입을 받아 이 지역도 전란에 휩싸였고, 1270년(원종 11) 원나라 동녕부(東寧府)의 지배 아래에 들어갔다가 1290년(충렬왕 16) 고려에 귀속되었다.
[조 선]
1413년(태종 13) 용강현·함종현에 현령이 파견되었고, 1466년(세조 12) 전국에 진관제(鎭管制)가 실시될 때, 평안진관 관할로 두 곳에 절제도위(節制都尉)가 두어져서 수령들이 겸직하도록 하였다. 1720년(경종 즉위년) 함종현은 선의왕후(宣懿王后)의 관향(貫鄕)이므로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근 대]
1895년 지방행정구획 재정비 때 용강현과 함종도호부는 평양부 용강군·함종군으로 개편되었다. 1896년 용강군은 2등군, 함종군은 3등군으로서 평안남도에 속했는데, 이는 개항 후의 새로운 추세에 따라 함종군보다 용강군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취해진 조처였다.
1914년 부·군·면을 통폐합할 때 함종군의 일부지역이 용강군에 합쳐지고 나머지는 강서군에 흡수되어 함종군은 폐지되었다. 그 뒤 몇 차례의 군내 면·이의 통합조처가 있어 1945년 4월 일부 이가 진남포시에 이관되면서 13개 면, 130개 동리이다.
해운면 궁산리와 용반리에 있는 평균 30㎝ 두께의 패각층(貝殼層) 수혈주거지(竪穴住居址)에서 토기와 석제품 등이 발굴되었다. 토기는 구연부(口緣部)와 기복부(器腹部)에 각각 다른 문양으로 된 것이 지배적이고, 어골문(魚骨文)·조골문(鳥骨文)·즐치문(櫛齒文)이 많다.
석제품으로는 석초(石鍬 : 돌가래)·석창(石槍)·망추(網錐)·연석(碾石)·석부(石斧) 등이 있고, 골각기(骨角器)로는 골추(骨錐)·골침(骨針)·녹각제토굴봉(鹿角製土掘棒)·녹각초(鹿角鍬)·아겸(牙鎌) 등이 있다.
고구려의 고분으로는 해운면 갈성리에 삼실총(三室塚)·장석총(長石塚) 등이 있고, 고구려의 벽화고분으로 쌍영총(雙楹塚)·대총(大塚)·수렵총(狩獵塚)·성총(星塚)·감신총(龕神塚) 등이 있다. 지운면 안성리에는 쌍영총과 용강대총이 있는데, 쌍영총에는 두 개의 팔각석주와 주인부부상·일월상·인물행진·거마행렬 등이 원숙한 필치로 그려져 있다.
용강대총에는 전실과 현실간의 통로 양쪽 벽감에 불단, 불상안치의 두 문짝, 용기 등을 의미한 것이 있다. 대대면 매산리에 있는 수렵총은 현실 벽에 사신도와 수렵도, 그 사이사이에 인물풍속도가 그려져 있다.
신령면 신덕리에는 성총과 감신총이 있다. 성총은 전실과 현실이 있고, 벽에는 주인공 부부의 생활도와 현무·쌍인수사(雙人首蛇)·수수사(獸首蛇)·노루 등과 해·달·별·하늘·운문·연화문 등이 그려져 있으며, 그 사이를 귀갑문 속의 연화문이 채우고 있다.
감신총도 전실·현실로 되어 있는데, 외벽이 퇴락되어 완전하지는 않으나, 전실 벽에는 우차·인물상·왕(王)자가 돋친 문양·화염문·소나무·산악·호랑이 등으로 장식되어 있고, 감(龕) 좌우벽에는 인물상이 상하로 서 있고, 두 명의 부인 입상 등이 그려져 있다.
용강면과 용월면 경계에 있는 오석산에는 황룡산성이 있고, 해운면 성현리에는 어을동토성(於乙洞土城)이 있다. 이 토성은 일명 고읍성(古邑城)이라고도 하며, 낮은 언덕 위의 넓은 대지 위에 축조된 방형의 토성이다. 축조연대는 출토유물 및 성의 역할로 미루어보아 대략 서기전 2, 1세기경으로 추정된다.
이 토성으로부터 동북으로 약 480m 지점인 해운면 성현리에서 점제현신사비(秥蟬縣神祠비碑)가 발견됨으로써 이 토성은 낙랑군점제현(樂浪郡秥蟬縣) 치소(治所)의 유지(遺址)로 추정된다.
또 성내에서는 와편(瓦片)과 석기 등이 발견되었는데, 와편은 한대(漢代)의 특징을 지닌 고와(古瓦)들이다. 그 밖에 석천산에는 고인돌군이 있으며, 불교유적으로 보림사·신덕사 등과 많은 사지(寺址)가 있다.
문헌에 따르면 고구려 때 고소산(姑蘇山) 동쪽에 명륜당이 있었는데, 1684년(숙종 10) 현령 김광진(金光瑨)이 화정산(花精山) 남쪽으로 이전시킨 뒤 문묘를 세워 많은 유학도를 배출했으며, 지방 구석구석에서는 서당교육이 실시되었다.
개화기로 접어들어 1895년 『소학교령』이 발표되자 서당은 점차 줄어들고, 1899년 삼화공립소학교(三和公立小學校)가 최초로 설립되면서 새로운 학문에 흥미를 느낀 군민은 우후죽순처럼 사방에서 앞다투어 학교를 설립하였다.
1901년에는 지운면에서 삼진(三眞), 다미면에서 보명(普明)·진명(進明)·동일(東一)·광명(光明) 등 4개교, 양곡면에서 구성(九成), 삼화면에서 삼중(三重), 대대면에서 집성(集成)·명덕(明德), 신녕면에서 삼신(三新), 금곡면에서 삼성(三成)·삼광(三光), 해운면에서 학림(鶴林)·보광(普光)·명덕(明德)·일병(日倂) 등 4개교, 용월면에서 배달(培達)·신성(新成)·광덕(廣德)·동산(東山)·덕성(德成)·일신(日新) 등 17개 사립학교와 7개 학원이 설립되어 민족정신에 입각한 민족교육이 실시되었다. 그래서 이강(李剛)·차병수(車炳修)·홍기조(洪基兆)·김동한(金東漢)·이영선(李永善)·차병락(車炳洛)·이규찬(李奎贊)·김붕준(金鵬濬)·김정숙(金貞淑) 등 많은 애국지사가 배출되었으나, 경술국치 후 일제의 1면1교제를 통한 탄압으로 각 사립학교는 폐교되거나 공립으로 흡수되었다.
한편 종교상황을 보면 고려와 조선시대에 종교문화가 성행함에 따라 군내에도 많은 사찰이 건립되었다. 용강면 오산(鷘山)에 있는 보덕사(普德寺)는 고구려의 중 보덕(普德)이 창건한 것으로 추정되고, 이로 미루어 고구려 때 불교가 용강에 들어와 교세가 융성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지금은 절의 이름만 남아 있을 뿐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절이 많다. 용강면 옥도리 황룡성 안에 황룡사, 해운면 성현리 신덕산에 신덕사(新德寺), 대대면 우산에 보림사·서정사(西淨寺), 삼화면 법천산에 법천사(法泉寺) 등이 있다.
개신교는 1890년대 말 이 곳에 전파되기 시작해 1898년 안창호(安昌浩)의 전도를 받은 용강의 유지들이 합심해 지운면 진지리에 장로교계 진지동교회를 설립했으며, 1899년에는 감리교계 광량만교회가 설립되었다. 그 뒤 많은 교회가 건립됨과 동시에 교회부설 사립학교가 운영되었다. 또한 1930년 성결교회가 들어오기 시작해 진지동성결교회가 설립되었다.
천주교는 1900년 설립된 진남포교회를 본당으로 하는 대대면 유사리의 유사리공소, 금곡면 우등리의 광량만공소 등 5개 공소가 있다. 천도교는 지운면 진지리와 용월면 계명리에 전교소가 있다.
이 고장의 설화로는 『해명태자와 창원 전설』·『개무덤전설』·『맹자우물전설』 등이 전한다. 『해명태자와 창원 전설』은 고구려 유리왕이 국내성으로 도읍을 옮겼을 때 해명이 졸본부에 남았는데, 그가 용감하다는 말을 이웃 황룡왕이 듣고 강한 활을 보내니 해명이 사자를 맞아 활을 꺾어버렸다.
황룡왕이 듣고 부끄러워해 해명을 죽이려고 황룡국에 청했으나 해치지 못하고 돌려보내자, 유리왕이 이웃나라와 원한을 맺었다 해 해명에게 칼을 주어 자살하게 하였다. 옆에서 신하들이 말렸지만, 해명은 황룡왕이 우리 나라를 업신여길까봐 활을 당겨 꺾어버렸는데 오히려 부왕에게 꾸지람을 당했으나, 그래도 부왕의 명을 어길 수는 없다 해 땅에 창을 꽂고 말을 달려 그 창에 부딪쳐 죽었다고 해 그 땅을 창원이라고 부른다.
『개무덤전설』은 삼화면 오은동에 살던 어떤 사람이 장에 갔다가 술이 취해 돌아오던 중 길 옆 풀밭에 쓰러져 잠이 들었는데, 마침 산불이 나 위험하게 되자 기르던 개들이 부근 연못에서 꼬리에 물을 적셔다가 주인의 옷자락과 잔디에 뿌려 주인을 구하고 죽었으므로 가여이 여긴 주인이 개들을 합장해 무덤을 만들어주었다는 것이다.
『맹자우물전설』은 금곡면 금수리에서 옛날 맹자(孟子)가 삼화면 우산에 약초가 많다는 말을 듣고 약초를 캐기 위해 바다를 건너 우산으로 가던 중 어떤 우물가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그 물맛이 중국땅에서는 맛볼 수 없었던 최고의 맛이었으므로, 맹자는 이 우물터를 잊지 않고 다시 찾아오기 위해 목판에 자기 이름을 써붙였다 해 ‘유동 맹자우물’이라고 부른다.
이 밖에 『현암전설』은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을 때에 힘이 센 사람 수백 명이 좋은 바윗돌을 구하고자 조선의 용강군 현암리까지 와서 돌을 모으던 중 진나라에서 심부름하는 사람이 와서 나라에 난리가 났으니 빨리 돌아오라고 하자 그냥 돌아갔는데, 뒷날 그 바위에는 모두 악기줄같이 가느다란 줄이 나타나 있어서 현암이라 했으며, 이로 인해 그 마을 이름도 현암으로 불렸다.
이 밖에 인색한 부자의 집이 벼락으로 큰 우물이 되고, 그 부인은 아이를 업고 산 위로 피하다가 벼락소리에 놀라 뒤로 돌아보던 채로 화석이 되고 말았다는 장자못형인 『부자암전설』 등이 전한다.
전체 경작지 가운데 논과 밭의 비율은 11 : 41로, 평안남도 내의 다른 군에 비해 논이 많은 편이다. 논은 대부분이 건답(乾畓)이나 경작상 대동강의 역류(逆流)를 이용하기도 하고, 삼화면에서는 우산장의 물을 이용해 옥답(沃畓)을 만들기도 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을 비롯해 조·밀·콩·팥·수수·잎담배·면화 등인데, 특히 조는 질이 좋아 농가의 주식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평안남도의 경우 조의 경작은 대개 곡우(穀雨)에 파종하고 처서(處暑)에 수확하는데 이 군이 그 대표적 지역이다.
특산물로 목화와 사과가 재배된다. 면화는 용강무명의 원료가 되며, 사과는 보통 진남포사과라고 불리지만 이 군에서 주로 생산되는 것으로, 진남포를 통해 국내는 물론 외국으로 수출된다. 어업은 주로 대동강 어구와 서해안 일부지역에서 활발히 행해지는데 대합 같은 패류의 채취가 주종을 이룬다. 대동강의 숭어·메기·뱀장어잡이도 유명하다.
서해안 일대는 지형이나 기후의 입지적 조건이 제염업에 적당해 전국 관설 천일제염전(天日製鹽田)의 반 이상이 이 곳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광량만(廣梁灣)은 지형이 평탄하고 간석지가 넓으며, 비교적 맑은 날씨가 계속되고 조석간만의 차도 그다지 심하지 않아서 동서 16㎞, 남북 6㎞, 둘레 28㎞의 염전이 펼쳐져 있다. 『盧道陽』
이 지역의 상업활동을 보면, 크게는 평양과 진남포 상권에 속하나 각지에 공설의 정기시장이 있어 농축산물과 생활잡화의 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진다. 1·6일장으로는 다미면 오화리의 마화장(麻花場), 양곡면 마명리의 예명장(藝明場), 금곡면 우등리의 제산장(齊山場)이 있다.
2·7일장으로는 오신면 가룡리의 가동장(佳洞場)과 서화면 자복리의 당점장(堂岾場)이 있다. 3·8일장으로는 용강면 옥도리의 읍내장(邑內場), 귀성면 대령리의 대령장(大嶺場)과 용월면 마동리의 마산장(馬山場)이 있다. 4·9일장으로는 삼화면 옥정리의 구읍장(舊邑場)과 해운면 온정리의 온정리장(溫井里場)이 있다.
5·10일장으로는 지운면 진지리의 진지동장(眞池洞場)과 대대면 덕동리의 덕동장(德洞場)이 있다. 또한 농가부업으로 축우와 양돈이 활발해 7개소에서 가축시장이 공설로 운영되고 있는데 진지동가축시장과 예명가축시장의 거래가 특히 활발하다.
교통은 황해에 면해 있으며 대동강의 수심이 깊어 수륙교통이 편리하다. 도로는 진남포∼평양간의 1등도로가 동부의 양곡면과 지운면을 통과해 평남선과 아울러 교통의 대동맥을 이룬다. 용강읍내를 중심으로 3등도로나 등외도로가 남쪽으로는 진남포시에, 서쪽으로는 온정리에, 동쪽으로는 진지동에, 북쪽으로는 갈현리를 지나 강서군에 각각 통한다.
서해안에서는 2등도로가 평안선과 병행하면서 광량만과 온정리를 경유해 강서군에 이른다. 철도는 평남선이 동부를 남북으로 달려 경의선에 연결되는데, 태성·진지동·갈천 등의 정거장이 설치되었다. 서해안을 달리는 평안선은 전장 34.7㎞로 해산·덕동·신덕·동광량·서광량·노상·귀성리 등 여러 역이 설치되어 있다.
수운은 예로부터 황해를 건너 중국 산둥성으로 통하는 항로가 있었으나 지금은 부진한 상태이다. 대동강의 수운은 운하·갑문 시설로 강서군 보산포까지 9,000의 기선이 운항된다. 명승지로는 해운면에 용강의 대표적 알칼리성 염류천인 용강온천이 있으며, 삼화면 우산의 동북쪽 산록에는 용강 제일의 관광휴양지인 우산장이 있다.
[귀성면貴城面]
군의 서해안 남단에 위치한 면. 면적 67.57㎢, 인구 1만 6997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노상리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에 진남포부(鎭南浦府)의 초소면(草召面)·귀상면(貴上面)·귀하면(貴下面)이 병합되어 귀림면(貴林面)이 되고, 또 오은면(吾隱面)과 감박면(甘朴面)이 병합되어 토성면(土城面)이 되었는데, 이들 귀림면과 토성면이 용강군으로 이속되면서 다시 병합되어 귀성면으로 되었다.
동북단에는 문백산(文白山, 228m)이 금곡면과 해운면과의 삼각분수령을 이루고 있고, 서쪽 중앙에는 동림산(東林山, 82m), 서북단에는 촛대봉이 있다. 이 밖에 자정산(慈井山, 109m)·증악산(甑岳山, 91m)·금정산(金井山, 88m) 등 100m 내외의 구릉을 제외하고는 평지로 되어 있다.
또 황해에는 화도(禾島)·초도(草島)·덕도·상취라도(上吹螺島)·하취라도(下吹螺島)·대매도(大梅島)·소매도(小梅島)·결석도(結石島)·지리도(地理島) 등의 도서가 있다. 동쪽의 금곡면과의 경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어업이 발달하였다.
따라서 일찍부터 귀림어업조합이 금정리에 설치되어 서화면에서 신녕면 연안까지의 어로자원을 보호하고, 어민들에게 어로기술을 지도해 수산업 발달에 큰 역할을 하여왔다. 또한 간척에 의한 해안평탄지에서는 염업이 발달하였다.
해산물로는 대합·조기·민어·숭어·홍어·갈치·새우·꽃게 등의 생산이 풍부하다. 특히 간조시에 나타나는 넓은 갯벌에서 수천 명의 군중이 모여서 대합을 캐는 풍경은 다른 곳에서는 보기 어려운 진풍경으로, 여기서 생산된 대합은 진남포와 평양, 그리고 황해도지방까지 공급된다.
또 연강수량이 800㎜ 정도이고 기온은 연평균 10℃ 내외로 천일제염의 생산에 좋은 조건을 갖추어 귀성염전 등 큰 염전이 2,000정보에 달하며, 이 곳의 소금은 주로 평안선에 의해 전국으로 보내진다.
어업과 동시에 농업도 행해져 농산물로는 쌀·콩·팥·수수·고구마 등이 생산된다. 특용작물로 목화·고추·깨 등도 재배되고 있다. 교통은 평안선철도가 중앙을 지나며, 소금 운반을 위해 자동차도로가 거미줄같이 뻗어 있어 편리하다.
남단에 위치한 광량진(廣梁鎭)은 조선시대 27진의 하나였다. 또한 군수물자와 군량을 보관하는 창고가 노상리에 있었는데, 이로 인해 지금도 이 곳을 서창(西倉)이라고 부른다. 광량진포구는 옛날에는 유명한 수영(水營)이었지만 지금은 수산물의 집산지로 유명하며, 또 관광피서지로도 한몫을 하고 있다.
문백산 부근에는 장수바위라는 세 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여기에는 장수가 수도하기 위해 앉아 있었던 엉덩이자국과 손발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 주인공은 고구려의 병마도원수 강이식(姜以式)장수라고 전하여진다.
원읍리 송촌에는 수령 600년이 되는 둘레 20여m의 닥나무가 있으며, 서부해안가의 마을인 솔말에는 왁새도래지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노상(路上)·대령(大嶺)·석찬(石贊)·감박(甘朴)·원읍(元邑)·노하(路下)·용도(龍島)·석성(石城)·금정(金井)·향곶(香串)·증악(甑岳)·최광(最廣) 등 12개 이가 있다.
[금곡면金谷面]
군의 서남부 광량만 입구에 위치한 면. 면적 38.67㎢, 인구 1만 1319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우등리이다. 본래 진남포부의 금당면(金塘面)과 내곡면(乃谷面)이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에 용강군에 이속되면서 병합되어 금곡면으로 개칭되었다.
북단에는 신덕산이 삼화면과 해운면의 경계선상에서 삼각분수령을 이루며, 여기서 서쪽으로 뻗은 문백산은 귀성면과 해운면과의 삼각분수령을 이룬다. 신덕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능선에는 법천산이 있고, 이는 다시 대대면 동북쪽에 있는 우산과 연결된다. 신덕산에서 발원한 물은 남류해 황해로 유입한다.
귀성면과 경계를 이루는 서쪽은 낮은 지대로 수전지대 및 염전지대가 넓게 분포한다. 남부에는 우리 나라 굴지의 광량만염전이 위치하고 있다. 염전의 면적 3,000여 정보, 염부(鹽夫) 4,000여 명으로 연간 수백 톤의 소금을 생산해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으로까지 반출된다.
서부의 낮은 지대에서는 논농사가, 동부의 구릉지에서는 밭농사가 행하여진다. 농산물로는 쌀·조·팥·녹두·수수·콩·고구마·감자 등이 많이 생산된다. 특용작물로는 목화·고추·깨 등이 재배되며, 특히 면화는 이 곳의 명산물로 부녀자들은 가내수공업으로 면직물을 생산해 농가소득을 올린다. 이 밖에 사과·배·밤 등도 재배된다.
교통은 소금을 실어 나르기 위해 평안선이 일찍 부설되어 다른 면에 비해 상당히 편리하다. 진남포에서 광량만을 거쳐 온천지대까지 운행되는 2등도로가 일찍부터 개통되었고, 이 밖에도 산업도로가 각 면으로 연결되고 있다.
금수리에는 예로부터 전해오는 맹자우물이 유명하고, 또 전설이 얽힌 멧돼지굴도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우등(牛登)·남상(南上)·남하(南下)·석포(石浦)·경전(耕田)·유동(乳洞)·금수(金水)·담부(擔釜)·화도(花島)·내성(內城) 등 10개 이가 있다.
[다미면多美面]
군의 동남단에 위치한 면. 면적 77.47㎢, 인구 1만 1657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오화리이다. 고구려시대에는 다미진(多美津)·상다미(上多美)·하다미(下多美)·대안진(大安津)이라 불렸다. 본래 다미상면(多美上面)과 다미하면(多美下面)이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에 병합되어 다미면으로 개칭되었다.
동·서·남쪽이 대동강으로 둘러싸여 남북으로 길게 뻗은 묘한 지형으로 되어 있다. 북쪽 오신면과의 경계에 국사봉이 있고, 그 밖에 늑명산(勒鳴山, 112m)·치산(幟山, 175m)·검산(劍山, 168m)·장발산(長發山) 등이 있다.
대동강변에는 하천에 의해 운반되어 퇴적된 충적지가 있어 논농사가 행하여진다. 그 밖의 지역에서는 대개 밭농사가 이루어진다. 농산물로는 쌀·조·콩·팥·수수·고구마 등이 생산되며, 특용작물로 목화가 재배된다.
대동강 민물과 황해의 바닷물이 만나 해산물이 풍부해 숭어·농어·민어·홍어·새우·뱅어·꽃게 등의 생산이 많은데, 특히 겨울철 얼음장을 헤치며 잡는 숭어잡이는 유명하다. 이 밖에 조개젓·건댕이젓·참게젓·백하젓 등이 유명하며, 오화리에서 우안리 일대의 소하천제방에서는 잉어·붕어·메기·가물치 등이 많이 잡힌다.
교통은 오화리에서 진남포로 가는 3등도로가 있으나 대부분 선박을 이용한다. 대안리 무학산 기슭에 고구려의 벽화고분이 있다. 늑명산에는 장수와 말이 같이 울었다는 사연과 말발굽자리가 남아 있으며, 장발산 기슭에는 홍경래(洪景來)의 출생지가 있다. 대동강변에는 깎아세운 듯한 기암절벽이 군데군데 절경을 이루어 그 아름다움이 많다 해 글자 그대로 다미면이 된 것이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오화(五花)·오정(梧井)·보명(普明)·난마(蘭麻)·치의(幟衣)·서적(瑞赤)·장미(長尾)·한전(閑田)·동전(東箭)·대안(大安)·소안(小安)·지사동(芝沙洞)·우안(牛安) 등 13개 이가 있다.
[대대면大代面]
군의 남단 중앙에 위치한 면. 면적 69.73㎢, 인구 9,161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덕동리이다. 본래 진남포부의 대상면(大上面)·대하면(大下面)·원당면(元塘面)이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에 이들 지역의 일부를 병합해 용강군에 이속시키면서 대대면이라 이름지었다.
동북쪽에는 우산이 삼화면과 경계를 이룬다. 우산에서 발원한 물이 동남류해 대동강 하구로 유입하며, 삼화면의 화정산과 검설산에서 발원한 물이 면의 중앙을 지나 역시 대동강 하구로 유입한다. 율도(律島)·와우도(臥牛島)·권염진도(勸鹽津島)·호도(虎島) 등의 도서가 있다.
농업을 주로 하며, 남부의 충적평야지대에서는 논농사가, 북부의 구릉성 산지에서는 밭농사가 행하여진다. 농산물로는 쌀·조·콩·팥·수수·고구마 등이 생산되며, 특용작물로 목화·고추·깨 등이 재배된다.
이 밖에 특산물로 사과가 군내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데, 계몽운동가인 김지간(金志侃)이 처음으로 사과나무를 심어 개량하고 연구한 곳이 바로 이 곳의 매산과수원이다. 배·복숭아 등도 많이 재배된다.
남쪽 연안에서는 담수와 해수가 만나기 때문에 어족이 풍부해 어업이 성황을 이룬다. 또 연안의 간척지에서는 천일염이 생산된다. 교통은 평남선이 동부변을 지나고 평안선이 남부연안을 뚫고 서해안 염전지대로 달리며, 1등도로와 2등도로가 철로를 따라 뻗어 있어 매우 편리하다.
매산리에는 수렵총(狩獵塚)이 있고, 우산 남쪽 산록에는 유명한 옥천대유원지(玉泉臺遊園地)가 위치하고 있다. 산동리에는 진남포시민의 식수원인 산동저수지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덕동(德洞)·오산(梧山)·월곡(月谷)·산동(山洞)·매산(梅山)·사천(沙川)·화도(火島) 등 7개 이가 있다.
[삼화면三和面]
군의 중앙에 위치한 면. 면적 43.10㎢, 인구 6,688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옥정리이다. 본래 진남포부의 동리면(東里面)과 서리면(西里面)이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에 병합되어 삼화면으로 개칭되었다.
동남쪽에는 화정산·검설산·주축산·황잠산 등이 능선을 형성해 양곡면·용강면·해운면과의 경계를 이루며, 서남쪽에는 신덕산·법천산·우산 등이 활같이 굽은 능선을 형성해 금곡면·대대면과의 경계를 이루면서 마치 큰 배와 같은 지형적 조화를 이루고 있다.
화정산·우산 등지에서 발원한 남천이 남류하면서 충흥리와 주림리 일대에 두 개의 큰 저수지를 형성하는데, 주림리 일대의 저수지는 진남포시민의 식수공급을 위한 수원지 구실을 하면서, 동시에 수려한 경관으로 우산장의 외곽배경을 형성한다.
농업을 주로 하며, 대부분의 지역이 구릉성 산지이므로 논농사보다는 밭농사의 비중이 더 크다. 농산물로는 쌀·조·콩·팥·수수·고구마 등이 생산되며, 특용작물로는 목화·고추·깨 등이 재배된다. 이 밖에 사과·배·복숭아·밤 등도 생산된다.
교통은 자동차도로가 각 면으로 연결될 뿐이다. 우산의 동북 산록에는 관서지방에서 손꼽히는 휴양지인 우산장이 있다. 율상리에는 낙랑고분이 있고, 학당리에는 부은사(父恩寺)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옥정(玉井)·학당(學堂)·서정(西亭)·마점(馬岾)·주림(舟林)·내교(內校)·율상(栗上)·율하(栗下)·충흥(忠興)·용문(龍門) 등 10개 이가 있다.
[서화면瑞和面]
군의 서북단에 위치한 면. 면적 38.86㎢, 인구 7,348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자복리이다. 본래 화촌면(和村面)과 당점면(堂岾面)이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에 병합되어 서화면으로 개칭되었다.
야산도 하나 없이 전지역이 높이 20m 이내의 낮은 지대로 논농사와 밭농사의 비중이 거의 같다. 연강수량이 700㎜ 정도로 논농사에는 물이 아주 부족해, 잡곡류를 포함한 전작농업이 발달해 조·콩·팥·녹두 등이 많이 생산된다. 특히 목화재배가 활발해 면화가 많이 생산된다.
특산물로는 사과와 밤이 유명하다. 서쪽 해안지역에서는 어업이 발달했으며 갈치·민어·홍어·꽃게·조개 등이 많이 잡힌다. 특히 용강의 『기나리민요』에도 나오듯이 조개잡이가 유명하다.
교통은 진남포∼강서간의 2등도로가 면의 중앙을 남북으로 지나며 산업도로도 사방으로 뻗어 있다. 한현리에는 한정지(漢井池)라는 큰 못이 있는데, 넓이는 약 100여 평이고 깊이는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메워져 지금은 약 2m 정도 된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이 자리에 악독한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신덕사의 승려가 시주를 부탁했더니, 시주는 고사하고 온갖 학대를 해 그냥 돌아오는데, 그의 며느리가 쫓아와 사죄하며 용서를 빌자 그 마음씨가 갸륵해, 빨리 신덕산으로 피하되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절대로 뒤돌아보지 말라고 하였는데, 그 며느리는 아기를 업고 피하다가 그만 요란한 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아 그 산중턱에서 아기를 업은 바위가 되었다고 하며,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황산 남쪽 기슭에는 고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자복(自福)·암현(巖峴)·신안(新安)·한현(漢峴)·설암(雪巖)·죽본(竹本)·석치(石峙)·동상(同相) 등 8개 이가 있다.
[신녕면新寧面]
군의 서남단에 위치한 면. 면적 86.21㎢, 인구 6,445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신덕리이다. 본래 진남포부의 신북면(新北面)과 신남면(新南面)이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에 용강군으로 이속됨과 동시에 병합되어 신녕면으로 개칭되었다.
동쪽의 임우산(霖雨山, 239m)과 서쪽의 연대산(燃臺山, 226m)을 연결하는 학령(鶴嶺)이 지형적으로 이 면을 둘로 갈라놓았다. 따라서 영북(嶺北)에 5개 이가 있고, 바다에 접한 영남(嶺南)에 4개 이가 있다. 또한 군솔도(軍率島)·대장파도(大璋玻島)·소장파도(小璋玻島)·옥도(玉島)·가덕도(加德島) 등의 도서가 있다.
영북지방에서는 논농사가 다소 이루어지나 전체적으로는 밭농사를 중심으로 조·수수·콩·고구마·팥 등이 많이 생산된다. 특용작물로 고추·깨·목화 등이 재배되고 있다. 특히 면화는 용강의 명산물로, 부녀자들이 가내수공업으로 면직물을 생산해 농가소득에 큰 몫을 하고 있다. 이 밖에 사과와 밤이 명물이다.
남부에는 넓은 간척지가 있어 수일리염전 등 큰 염전이 있다. 특히 대동강 하구에 위치해 염수와 담수가 만나서 고기가 많이 잡히는데 그 중에서도 민어낚시와 민어회가 가장 유명하다. 수산물도 풍부해 아낙네의 굴·소라·조개·망둥이잡이 등이 널리 행하여진다.
교통은 평안선이 북부를 지나고, 또 진남포에서 2등도로가 철도를 따라 지나가지만 전체적으로 불편하다. 유적으로는 신덕리에 성총(星塚)과 감신총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신덕(新德)·연송(延松)·송산(松山)·신암(新巖)·수일(水日)·광암(廣巖)·소강(蘇康)·오학(梧鶴)·마염(馬鹽) 등 9개 이가 있다.
[양곡면陽谷面]
군의 남부 중앙에 위치한 면. 면적 46.12㎢, 인구 9,359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마명리이다. 본래 김천곡면(金泉谷面)과 조양면(朝陽面)이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에 병합되어 양곡면으로 개칭되었다.
서쪽 삼화면과의 경계에 화정산(花精山, 253m)·검설산(劍雪山, 245m)·주축산(朱築山)·황장산(黃藏山) 등이 줄지어 있고, 중앙에 금봉산(金鳳山)이 있다. 화정산에서 발원한 물이 지운면과의 경계를 이루며 동남류해 대동강 하구로 유입한다.
동남부지역은 높이 20m 이내의 낮은 평야를 이루어 논농사가 주로 행해지는데, 대부분 서천과 금천의 범람에 의한 충적평야이다. 중앙과 서부 일대에서는 밭농사가 행하여진다. 농산물로는 쌀·조·콩·팥·수수·고구마 등이 생산되며, 이 밖에 사과와 목화의 재배가 유명하다. 사과는 황주·대구와 더불어 우리 나라 3대사과산지로 유명한 용강사과의 주산지이다.
수산업은 발달되지 않았으나 대동강 하구 일대의 갯벌에서 갈게잡이가 행하여진다. 회용리의 원앞개 일대의 소택지에서 가물치·잉어·붕어·미꾸라지 등 담수어가 많이 잡힌다. 교통은 평남선이 동남부를 지나 갈천역이 있고, 평양∼진남포간 1등도로가 남부를 지나며, 이 밖에 산업도로가 각 면으로 연결되어 편리하다.
남동리에는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김경서(金景瑞)장군의 사당인 충렬사(忠烈祠)와 정려문(旌閭門)이 있다. 이 정려문 앞에 일본인이 가면 피를 토하고 즉사한다고 전하여진다.
회용리의 회용산록에 있는 회용사(洄湧寺)는 승병들이 모여 의병을 도모했던 유서 깊은 절로 소풍객이나 관광객이 많이 찾아온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마명(馬明)·정화(亭花)·주흥(周興)·갈천(葛川)·두보(杜寶)·신류(新柳)·회용(洄湧)·남동(南桐) 등 8개 이가 있다.
[오신면吾新面]
군의 동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78.23㎢, 인구 1만 6609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가룡리이다. 본래 오정면(吾井面)과 신정면(新井面)으로 나뉘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에 병합되어 오신면으로 개칭되었다.
대동강 하류에 위치한 비옥한 평야지대인 야산으로 정필산(釘筆山, 126m)·왕소산(王蘇山, 109m)·한봉산(翰峯山, 107m) 등이 있고, 다미면과의 경계선상에 국사봉(國士峯, 214m)만이 유일하게 높이 솟아 있을 뿐이다.
농업을 주로 하며 논농사와 밭농사의 비중이 거의 같다. 쌀·콩·팥·수수·조·고구마 등이 생산되며, 특용작물로 목화·고추·깨 등이 재배된다. 특히 목화는 이 곳의 명산물로 개량종의 백면·황면·흑면 등 다종의 목화를 재배해 가내수공업으로 면직물을 짜서 농가소득을 올린다.
공업으로는 일제강점기 때 동양에서 제일이라는 군함을 제조하기 위한 소화전공(昭和電工)공장이 건설되어 전쟁시의 수요품을 생산하기도 하였다. 가룡리의 우시장이 유명하며, 또 2·7일장이 서는데, 진남포와의 교통이 편리해 장날이면 진남포상인들이 몰려들어 성시를 이룬다.
교통은 진남포에서 해안선을 따라 도학리에 이르는 산업철도가 있으나 변경에 위치해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자동차와 선박이 주로 이용된다. 직매리에는 울진임씨(蔚珍林氏)의 동족마을과 임씨가문의 효자탑이 있다. 이 탑은 하늘이 내린 효자라고 하는 임씨가문의 한 명사가 아버지 묘소에 초막을 짓고 3년간 머물면서 돌로 쌓아올린 것으로 이곳의 명물로 꼽힌다.
덕해리에는 청풍김씨(淸風金氏), 송성리에는 밀양박씨의 동족마을이 있다. 석정리에는 7년가뭄도 이겨낸다는 용정(龍井)이 있고, 내덕리 북쪽 한봉산에는 용강 제일의 대사찰인 용천사(湧泉寺)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가룡(佳龍)·석정(石井)·덕해(德海)·내덕(內德)·직매(直梅)·가양(葭陽)·구룡(九龍)·유동(楡洞)·송성(松城)·월매(月梅)·도대(桃垈)·인산(麟山) 등 12개 이가 있다.
[용강면龍岡面]
군의 동북단에 위치한 면. 면적 57.30㎢, 인구 8,221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옥도리이다. 본래 상남면(上南面)과 봉현면(鳳峴面)이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에 병합되어 봉산면(鳳山面)으로 되었다가 1917년 다시 용강면으로 개칭되었다.
동쪽에 석천산, 서쪽에 오석산·황흥산, 남쪽에 두륵산(頭勒山, 224m)이 있다. 오석산에서 발원한 서천의 상류에만 약간의 평야가 있어 논농사가 이루어지며, 그 밖의 산록에서는 밭농사가 행하여진다. 농산물로는 쌀·조·콩·팥·밀·보리·녹두·수수·고구마 등이 생산되며, 특용작물로 목화도 재배된다. 옥도리에는 면화시험장이 있어 백색 개량종의 육지면·황색면·흑색면 등을 시험재배한다.
교통은 진남포시에서 강서로 가는 신작로가 면의 중앙을 지나며, 이 도로를 중심으로 각 면으로 통할 수 있는 분기선이 있어 편리하다. 오석산은 명산 중의 명산으로, 능선을 따라 깎아세운 듯한 층암절벽이 자연방벽을 이루며, 이를 이용해 약 8㎞의 황룡성이 축조되어 있다.
성에는 능문을 비롯해 동서남북 4개의 문이 있고 성안에는 산성동(山城洞)이라는 성곽취락이 있어 관광객들이 관람하기에 좋은 곳이다. 특히 정상에서 조망하는 황해의 낙조와 달구경은 절경이다.
반추리에는 거대한 인공호수인 대성호(大成湖)가 있는데, 이 호수는 대동강물을 끌어올려 만든 것으로 서해안 간척평야지대인 해운평야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며, 오작리에도 용강저수지가 있다.
옥도리 향교마을에는 용강향교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옥도(玉桃)·서부(西部)·초산(草山)·의산(義山)·오작(烏鵲)·장암(長巖)·난산(卵山)·후산(後山)·반추(盤楸)·방어(芳漁) 등 10개 이가 있다.
[용월면 龍月面]
군의 최북단 중앙에 위치한 면. 면적 51.13㎢, 인구 7,449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갈현리이다. 본래 용현면(龍峴面)·삼존면(三存面)·월곶면(月串面)이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에 모두 병합되어 용월면이 되었다.
동쪽에 쌍아산과 남우이산, 남쪽에 오석산, 북쪽에 광동산과 마두산 등이 능선을 형성해 동남북을 둘러싸고 있다. 산에서는 질이 우수한 화강암의 석재가 무진장으로 생산되며, 지금으로부터 약 1,500여 년 전 전란 당시 황룡성을 축조할 때에도 이 돌을 썼다고 한다.
오석산·남우이산·광동산 등에서 발원한 물이 서북류하해강서군의 장안면을 거쳐 황해로 유입한다. 농산물로는 쌀·조·보리·밀·콩·팥·수수·녹두·고구마 등이 생산되며, 특용작물로 목화·고추·깨 등이 재배된다. 이 밖에 특산물로 사과·배·밤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밤은 널리 알려져 있는데, 보통 ‘평양밤’이란 송석리의 뒷산과 앞산 일대의 밤을 지칭하는 것이다. 또 양잠도 활발해 가을에서 봄까지 집집마다 무명·명주 등 베짜는 소리가 멀리까지 들린다.
교통은 평양에서 해운면 용강온천까지 가는 버스노선이 면의 중앙을 지나고, 이 밖에 각 면으로 도로가 연결되어 편리하다. 광덕리는 홍경래가 자란 곳으로 유명하며, 쌍아산 입구의 화장골에는 왕자묘(王子墓)가 있는데 이는 홍경래의 12대조의 묘이다.
송석리에는 미륵불이 있고, 삿갓봉의 이수폭포와 오석산 서쪽 산록의 과남우물은 주민들이 자주 찾는 명승지이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갈현(葛峴)·국안(國安)·광덕(廣德)·마동(麻洞)·대영(大永)·계명(桂明)·송석(松石)·주달(周達) 등 8개 이가 있다.
[지운면 池雲面]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46.29㎢, 인구 1만 1961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진지리이다. 본래 일련지면(日蓮池面)과 보운면(普雲面)이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에 병합되어 지운면이 되었다.
북쪽의 석천산과 서쪽의 두륵산 일대를 제외하고는 원앞개하천과 인황천이 남류하면서 형성해 놓은 충적지에서 논농사가 행하여진다. 이 밖에 낙랑준평원의 연변부에 해당되어 밭농사도 행하여진다.
농산물로는 쌀·조·콩·팥·밀·보리·수수·녹두 등이 생산되며, 특용작물로 목화·고추·깨 등이 재배된다. 특산물로 사과·복숭아·배·밤 등이 많이 생산된다. 특히 이 곳은 시생대의 퇴적암지역으로 소주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수질이 아주 좋아 진로소주의 본고장으로 유명하다.
또한 진지동 5일장이 유명해 인접한 진남포·평양과 황해도에서까지 주민들이 몰려들어 장날이면 온종일 농축산물의 매매로 떠들썩하다. 교통은 평남선이 면의 중앙을 지나며, 평양∼진남포간의 1등도로가 남북으로 뻗어 있어 편리하다.
석천산은 진달래꽃이 유명해 소풍장소로 자주 이용되며, 남쪽 산록에는 500여 기의 고인돌이 산재해 있다. 안성리에는 쌍영총이 있고 그 옆에 용강대총(龍岡大塚)도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진지(眞池)·유보(柳保)·안성(安性)·신촌(新村)·입성(立城)·만하(晩荷)·양원(兩院)·두륵(頭勒)·현암(絃巖)·대성(大城)·인포(仁浦)·양화(陽和)·문성(文城) 등 13개 이가 있다.
[해운면海雲面]
군의 서해안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43.96㎢, 인구 1만 1252명(1944년 현재). 면소재지는 온정리이다. 본래 해연면(海宴面)과 운동면(雲洞面)으로 되어 있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에 병합되어 해운면이 되었다.
지형은 삼화면과의 경계선상에 있는 신덕산(新德山, 410m)을 제외하고는 서쪽으로 가면서 높이 50m 이내의 낮은 평지이다. 전형적인 평야지대로 해안간척지에 의한 해운평야가 넓게 전개되어 쌀·조·고구마·팥·콩 등이 생산되며, 특용작물로 목화·고추·깨 등이 재배된다. 과수원지대에서는 사과가 많이 생산된다.
어업 또한 활발해 갈치·준치·민어·홍어·꽃게·조기·새우·전어 등이 많이 잡히고, 대합과 맛뚝갑 등 패류도 많이 잡힌다. 해변간척지에서는 염전을 조성해 천일염을 생산한다. 교통은 평안선이 진남포시에서 용강온천까지 연결되며, 온천을 중심으로 강서·평양·진남포로 주요 육상교통로가 연결된다.
명승지로는 온정리에 용강의 대표적인 알칼리성 염류천으로 널리 알려진 용강온천이 있는데, 만성소화기병·기관지염·피부병·빈혈·당뇨병 등에 좋다고 해 사시사철 온천객이 찾아온다. 고적으로는 성현리에 점제현신사비와 어을동방형토성, 갈성리에 삼실총·장석총(長石塚) 등과 고분이 있으며, 궁산리 해변에는 석기시대 유적이 있어 출토된 유물만도 상당히 많다.
이 밖에 성현리 신덕산에 신덕사가 있는데, 이 곳은 1893년(고종 30) 명성황후 민씨의 척족에 항거해 봉기했던 용강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이현리의 연대봉에는 봉수대가 있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 온정(溫井)·용반(龍磻)·궁산(弓山)·월지(月池)·연봉(延鳳)·일병(日屛)·갈성(葛城)·성현(城峴)·용정(龍井)·이현(里峴) 등 10개 이가 있다.
남포직할시 중부에 있는 군. 동쪽은 대안구역, 서쪽은 평안남도 온천군, 남쪽은 항구구역, 북쪽은 강서구역과 접해 있다. 동경 125°17′∼ 125°29′, 북위 38°47′∼ 38°56′에 위치하며, 면적 284㎢, 인구 11만 100여명(1996년 추정)이다.
1948년 강서군으로부터 성암면이 분리되어 편입되었다. 1952년 12월 북한 행정구역 개편시 서부지역인 대대면·신녕면·금곡면·해운면·귀성면·서화면·용월면 등을 분리해 온천군이 신설되었으며, 용강면·지운면·오신면·다미면·양곡면·성암면의 면 행정단위를 폐지하고 이 단위로 통폐합해 군 영역을 개편하였다.
1959년 대안리에서 대정리를 분리하고 대안리를 대안노동자구로 개편하였다. 1962년 우산리·갈천리·덕해리를 분리해 남포시로 이관하였다. 1978년 대정리와 성암리·입송리 일부를 분리하여 대안시로 편입시켰으며, 1979년 12월 군 전부가 평안남도 관할에서 분리되어 남포직할시에 편입되었다.
1983년 오신리·월매리·다미리를 분리해 대안구역으로 편입시키고, 지산리·검산리·동전리는 항구구역으로 편입시켰다. 행정구역은 용강읍과 애원(愛院)·포성(浦城)·입송(立松)·성암·양곡(陽谷)·삼화(三和)·용흥(龍興)·옥도(玉桃)·용호(龍湖)·후산(後山) 등 10개 이로 되어 있다. 군 소재지는 용강읍이다.
지형은 대부분이 200m 내외의 낮은 준평원화 단계에 있는 구릉으로 분지지형을 이루고 있으며, 서북쪽이 높고 남동쪽으로 가면서 점차 낮아지고 있다. 하천은 대동강의 지류인 서천·인황천이 동남방향으로 흐르고, 태성저수지·용호저수지·삼룡저수지 등 관개용 저수지가 있다.
주요 기반암은 편마상화강암·석회암·모래암·자갈암 등이고, 토양은 갈색산림토양이 대부분이며, 그 밖에 논토양·충적지토양·간석지토양이 분포되어 있다. 기후는 연평균기온 9.8℃, 1월 평균기온 -7.1℃, 8월 평균기온 24.4℃이며, 연평균강수량은 880㎜ 내외이다. 첫서리는 10월 18일, 마감서리는 4월 19일경에 내린다.
산림은 군 넓이의 33.2%를 차지하고 있는데, 주로 소나무·잣나무·노가지나무·참나무·신갈나무·밤나무·아카시아나무 등이 자라며, 산림 내에는 삽주·도라지 등 약초와 산나물이 자란다. 지하자원으로 석회석·온석을 비롯한 각종 석재·자철광·동광·고령토가 매장되어 있다.
농경지는 군 넓이의 35%를 차지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옥수수·콩·팥·수수·보리·고구마 등이며, 공예작물로 담배와 목화가 경작되고 있다. 교외농업지역에서는 무·배추·오이·호박·고추 등 각종 채소재배가 활발하다. 과수원은 경지면적의 8.1%를 차지하며 사과·배·복숭아·밤·추리·포도 등이 생산된다. 특히 용강군의 사과와 밤은 예로부터 빛깔이 곱고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용강읍과 옥도리에는 용강목장을 비롯해 여러 곳에 협동농장과 양계장이 설치되어 소·돼지·양·염소·토끼·닭·오리 등을 사육하고 있다. 야산에는 뽕밭이 조성되어 누에고치가 많이 생산되며, 태성호를 비롯해 2개의 대규모로 양어장에서는 숭어·뱀장어·붕어 등을 기르고 있다.
공업은 식료품·피복·직물·일용품·제지·화학공장 등 중소규모의 지방공장들이 설치되어 생활필수품 등을 생산하고 있다. 교통은 군 지역을 평남선(평양∼남포)과 용강선(용강∼마영)이 지나고, 평양∼남포간 고속도로와 간선도로가 통과하고 있다.
유적으로는 용강읍 북쪽 안성리에 5세기의 고구려 벽화무덤인 용강큰무덤과 그 곁에 쌍기둥무덤(쌍영총)이 있고, 성암리에 고구려 후기의 벽화무덤, 오석산에는 고구려시기의 황룡산성이 있다. 용강읍 북쪽 4㎞지점인 석천산 일대에는 청동기시대의 석천산고인돌떼가 있다. 관광지로는 태성호가 알려져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용강고등전문학교를 비롯한 각급 학교와 도서관·문화회관·유치원·탁아소 등이 설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