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씨(昔氏)의 시조이며 왕인 탈해(脫解)가 태어난 나라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일명 정명국(正明國)ㆍ완하국(琓夏國)ㆍ화하국(花廈國)이라고도 하였으며,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다파나국(多婆那國)으로 기록되어 있다.
용성국의 함달파왕(含達婆王)이 적녀국(積女國)의 왕녀를 왕비로 맞았는데, 왕비가 오랫동안 아이가 없다가 기도하여 큰 알을 낳으니, 그것을 궤 중에 넣어 칠보와 노비와 함께 배에 실어 바다에 띄웠다. 알에서 깬 탈해는 먼저 김해 지역에 상륙했다가 거기에 정착하지 못하고 신라로 들어갔다.
용성국의 위치에 대해서는 왜국의 동북쪽 일천리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 그곳이 어디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에 관해 대체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설이 있다.
첫째, 용성국은 동해 중에 있었다고 주장되는데, 이에 대한 근거로 『삼국지(三國志)』동옥저전의 순녀국(純女國)을 적녀국으로 해석한다.
둘째, 다파나국은 서역(西域)의 소국이며 함달파는 불교의 음악신이므로 용성국은 서역에 있었다고 한다. 탈해와 연관이 있는 수장(水葬) 풍속이 동남아시아와 쓰촨성[四川省], 그리고 서역지역에 퍼져 있음은 이 학설을 뒷받침한다.
셋째, 해류의 흐름으로 보아 용성국은 중국 남부 해안지역에 있었다고 한다. 탈해신화 속에는 북방적인 야장설화(冶匠說話)와 남방적인 난생설화(卵生說話)가 모두 들어 있는데, 그 두 요소가 함께 들어올 수 있는 경유지가 중국 중남부 해안지역이 된다.
다만, 오늘날 왜의 소재지가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용성국이 동해안에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그렇게 되면 용성국은 서역으로부터 중국 중남부 해안지역을 경유하여 해도로 신라에 도달하기까지의 어느 지역에 위치한 소국으로 추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