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중국 고대의 관명으로서 산택(山澤)을 맡았다. 그러나 신라의 경우는 『삼국사기(三國史記)』권39 직관 중에 의하면, 681년(신문왕 1)에 설치되는 본피궁(本彼宮)의 관직 중 하나로서 우 1인이 보이므로 그 기능은 중국과 달랐던 듯하다. 관등이나 구체적 역할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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