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선 ()

목차
고려시대사
제도
고려시대 중추원(中樞院 : 樞密院)의 정3품 관직.
목차
정의
고려시대 중추원(中樞院 : 樞密院)의 정3품 관직.
내용

정원은 1인이었다. 1023년(현종 14)에 중추원의 일직원(日直員)으로서 처음 두어졌는데, 이때는 부추(副樞) 이하가 겸임하다가 문종 때에 이르러 정3품 관직으로 정비되었다.

지주사(知奏事)·좌승선·좌부승선·우부승선과 함께 승선방(承宣房)에서 집무하였으며, 교대로 왕궁에 직숙(直宿)하면서 왕명을 출납하였다. 상좌(尙左)의 원칙에 의하여 같은 승선이지만 좌승선보다 하위직이었다.

1275년(충렬왕 1)에 원나라의 간섭으로 추밀원이 밀직사(密直司)로 격하 개편되자, 그 다음해에 우승지로 바뀌었으며, 1310년에는 다시 우대언(右代言)으로 고쳐졌다. 1356년(공민왕 5) 반원정책의 일환으로 문종관제가 복구되어 밀직사가 추밀원으로 환원됨과 동시에 다시 두어졌지만, 오래지 않아 1362년에 또다시 우대언으로 고쳐졌다.

그 뒤 1369년에 우승선으로 환원되었다가 고려 말에 다시 우대언으로 되었으며, 조선시대에 들어 1433년(세종 15)에 우승지로 바뀌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세종실록(世宗實錄)』
「고려(高麗)의 중추원(中樞院)」(변태섭, 『진단학보(震檀學報)』41, 1976)
집필자
이익주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