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6년(태조 19) 후백제와의 마지막 싸움이 되었던 경상북도 구미의 일리천전투(一利川戰鬪)에서의 부대 편제에서 단 한번 찾아진다. 이 때 보군(步軍) 1,000명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간천군(杆天軍) 1,000명, 천무군(天武軍) 1,000명과 더불어 중군(中軍)으로 편제되었다.
이와 함께 우천군대장군이라는 무관직의 존재도 확인된다. 고려 초기 중앙군의 상설조직인지, 혹은 일리천전투 당시에 임시로 편제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종래에는 일리천전투 당시의 중군이 태조의 친위군이고, 그 규모가 3,000명이나 되며 뒷날 국왕의 친위군인 응양군(鷹揚軍)·용호군(龍虎軍) 역시 3령(領), 즉 3,000명의 규모로 이루어져 있던 것과 같다는 점을 들어 이것을 고려 초기의 상설화된 중앙군 조직으로 설명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존재가 일리천전투의 기록에서만 찾아지며, 일리천전투에 동원된 고려군의 규모가 모두 8만7500명으로 비상하게 많다는 점에 주목하여, 이러한 현상을 후백제와의 결전을 앞두고 여러 귀부호족(歸附豪族)들의 군대를 임시로 편제한 것으로 보려는 견해가 제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