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본. 1책. 이 책은 붕당(朋黨)·기정릉사(記靖陵事)·기기축옥(記己丑獄)·기건저사(記建儲事)와 잡기(雜記) 3편, 그리고 기염철사(記塩鐵事)·기이상대조남명사(記李相待曺南冥事)로 꾸며졌다.
「붕당」에서는 붕당이 일어난 시말을 논하고 관련 인물로서 심의겸(沈義謙)·이이(李珥)·성혼(成渾)·정철(鄭澈)·최영경(崔永慶) 등에 관한 간단한 인적 사항과 당시 정계에 얽힌 사실을 기록하였다.
「기정릉사」에서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해 선릉(宣陵)·정릉(靖陵)이 일본군에 의해 파헤쳐진 야만적 행위에 대한 정황을 상술하였다.
「기기축옥」에서는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에 연루되어 희생된 사람들과 참상을 약술하였다. 「기건저사」에서는 왕세자의 건저문제(建儲問題)에 따른 선조와 정신들의 논의를 기록하였다.
「잡기」에는 정철이 강계(江界)에 귀양간 사실을 중심으로 중앙 정계의 당쟁을 논한 것과, 정여립의 집에서 발견된 서찰에서 정언신(鄭彦信)의 이름이 나옴으로 인해 귀양갔다가 고문의 후유증으로 곧 사망한 사실 등을 수록하였다.
「기염철사」에서는 임진왜란 중 부족한 군량미의 보충과 공사의 편의를 위해 한강 등을 이용해 염철사를 파견했으나, 소임을 맡은 관원의 무능으로 실패한 사실을 물었다. 「기이상대조남명사」에서는 영상 이준경(李浚慶)이 상경해 자기를 찾아온 조식(曺植)을 소홀히 대접해 가까웠던 양인의 사이가 벌어졌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유성룡은 문과에 급제해 영의정에 올랐고 임진왜란 때는 도체찰사(都體察使)로 전쟁 수행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또한 정책을 입안하는 데도 남다른 재능을 발휘하였다. 이 책은 『대동야승(大東野乘)』과『패림(稗林)』에 실려 있으며, 내용 가운데 일부는 뒤에 수식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대학교 도서관, 한국국학진흥원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