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법천리 고분군 ( )

고대사
유적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일대에 있는 초기국가시대 이후 움무덤 · 돌덧널무덤 · 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이칭
이칭
법천리고분군
정의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일대에 있는 초기국가시대 이후 움무덤 · 돌덧널무덤 · 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개설

1973년에 홍병주씨가 양모양청자〔羊形靑磁〕를 비롯한 유물을 발견하고 문화재로 신고한 후에, 김원룡 교수가 탐문조사하여 학계에 소개하였다. 이후 국립중앙박물관 고고부가 1999년부터 2007년까지 4차례 발굴조사하여 35기의 유구에서 923점의 유물과 24체의 사람뼈〔人骨〕가 출토되었다.

내용

무덤은 움무덤〔土壙墓〕 · 돌방무덤〔石室墳〕 · 돌덧널무덤〔石槨墓〕로 구분되는데 움무덤은 바닥 형태에 따라 자갈바닥과 나무바닥으로 나눠지고, 돌방무덤은 연도의 유무와 장법에 따라 앞트기식〔橫口式〕과 굴식〔橫穴式〕으로 구분된다. 돌덧널무덤은는 앞트기식으로 남단벽을 폐쇄한 형태이다. 독널무덤〔甕棺墓〕는 내부에 세골장(洗骨葬)된 사람뼈〔人骨〕가 매납되어 있었다.

유물은 양모양청자, 금 · 은 · 동 제품, 토기, 철기, 옥 · 유리제품 등이 출토되었다. 양모양청자는 중국 남경시 청량산 동오묘(淸凉山 東吳墓)에서 출토된 감로원년(甘露元年, 256)명 탁잔과 함께 출토된 청자는 크고 과장된 반면 남경 상산 7호묘(象山7號墓, 322년 추정)의 경우 크기가 작아지고 매우 사실적이며 법천리 2호 출토품과 유사하다. 금 · 은 · 동제품은 귀걸이〔耳飾〕, 신발 등이 있으며, 1호 출토 초두(鐎斗)는 남경 상산 5호묘(象山5號墓, 358년 추정) 출토품 및 풍납토성(風納土城) 출토품과 유사하다. 4호 출토 청동항아리뚜껑에는 연화문(蓮花文)이 새겨졌으며 칠기 컵과 귀달린잔〔耳杯〕이 함께 출토되었다. 토기는 짧은목항아리〔短頸壺〕 · 깊은바리모양토기〔深鉢形土器〕 · 곧은입항아리〔直口壺〕 · 어깨있는항아리〔有肩壺〕 · 뚜껑그릇〔有蓋盒〕 · 긴계란모양토기〔長卵形土器〕 · 굽다리긴목항아리〔臺附長頸壺〕 · 주발〔椀〕 · 큰항아리〔大壺〕등 다양한 기종이 출토되었다. 철기는 마구(馬具) · 무기 · 관부속구가 출토되었는데 1호분 출토 발걸이〔鐙子〕는 장병계 목심철판피 발걸이로 윤부는 장타원형이고 단면은 오각형으로 합천 옥전 70 · 82 · M2호 부장품과 유사하다. 옥 · 유리제 유물은 벽옥제 곱은옥〔曲玉〕과 대롱옥〔管玉〕, 경식코일형 구슬 등이 출토되었으며, 4호 출토 유리 파편을 분석해 본 결과 소다유리로 밝혀졌다.

특징

법천리고분군에서 출토된 무덤은 크게 3기(Ⅰ마한, Ⅱ백제, Ⅲ신라 이후)로 구분되고Ⅰ · Ⅱ기를 세분하여 5단계로 편년된다. 고고학적으로 Ⅰ(A)기에는 영서지방에 처음으로 덧널무덤〔木槨墓〕이 출현하고, Ⅰ(B)기에는 덧널무덤이 보편화되면서 한성백제의 표지유물이 출토된다. Ⅱ(A)기에는 앞트기식 돌방무덤〔橫口式石室墳〕이 축조되고, Ⅱ(B)기에는 굴식 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으로 발전한다. Ⅲ기에는 소형 돌덧널무덤과 신라계의 지역양식 토기가 나타난다.

의의와 평가

법천리고분군은 강원도와 경기도, 충청북도가 만나는 곳으로 남한강과 섬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다. 이 일대는 고대 한반도 중부지역 고분문화의 변천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법천사(法泉寺), 거돈사(居頓寺) 등의 대사찰이 번성하였으며, 고려 · 조선시대에는 흥원창(興元倉 또는 興原倉) 이라는 조창(曹倉)이 있어 개성, 한양을 잇는 창구 역할을 하는 등 수운을 이용한 교역의 중요 역할을 수행하였다.

참고문헌

『법천리』Ⅲ(윤형원 외, 국립중앙박물관, 2009)
『법천리』Ⅱ(윤형원 외, 국립중앙박물관, 2002)
『법천리』Ⅰ(윤형원 외, 국립중앙박물관, 2000)
「남한강 지역 마한·백제·신라의 무덤-원주 법천리를 중심으로-」(윤형원,『삼국의 접점을 찾아서』, 한국상고사학회, 2002)
「원성군법천리석곽묘와 출토유물」(김원룡,『고고미술』120,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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