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유사(淸溪遺事)』 권2에 해당하는 그의 국문가사집인 『청계망사공유사가사(淸溪妄士公遺事歌詞)』에 수록되어 있다.
임병양란(壬丙兩亂) 뒤 극심하게 피폐된 시대상을 바라보던 작자가 임금을 그리워하는 충성심과 나라를 걱정하고 세상을 경계하는 생각을 읊고 있다.
또 노부의 순상지변(舜象之變: 형인 순을 동생인 상이 죽이려 했던 일)을 만난 애달픔과 당시 그를 괴롭혔던 악당들에 대한 분노를 통탄하면서 지은 작품이다. 이 가사를 지은 동기가 자신의 원망스럽고 억울한 회포를 마음껏 펼쳐보이는 데 있었기 때문에 한문 사부(辭賦)와 같이 파격적인 산문시형으로 서술된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작품의 음보를 정확히 따지기가 힘들며, 작품의 행수도 헤아릴 수 없다. 몇 구절만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평생에 강개(慷槪)만 품고 천하를 다 돌면서/굶으락 먹으락 이러가며 저러가며 주야에 헵뜨다가/천운(天運)이 불행하여 조선국가(朝鮮國家)도 역유불행이로다/……(중략)……/애고 서룬지고 이 내 뜻 어데 두리/내 나히 젊었으면/용천검(龍泉劒) 막야검(莫耶劒) 비수검(匕首劒)을 둘러메고/추풍낙엽(秋風落葉) 나죄 그리매 같은/세상의 분운(紛紜) 아해들을 신시경(身始輕)아/내 몸이 일장검 둘러쳐 다 베혀 바리고서/두만강(豆滿江) 말을 씻겨 장백산(長白山)에 기를 박고/살배만 통음(痛飮)하고 무용천(舞龍泉)을 아니하랴/……(중략)……/심심야야(沈沈夜夜)에 장단가(長短歌)만 벗을 삼고/장탄식 장탄식 통가(痛歌)만 하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