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거란의 유종(遺種)인 금산왕자(金山王子)와 금시왕자(金始王子)가 나라를 세워 대요수국(大遼收國)이라 칭하니 몽골이 이를 치므로 쫓겨서 고려로 침입해 왔다. 이에 5군(五軍)의 후군병마사(後軍兵馬使)가 되어 1217년(고종 4)에 출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 결과 최충헌(崔忠獻)이 왕에게 적을 만나 싸우지 않았으니 그 군내(軍內)의 모든 장군의 직을 파하고 종신토록 서용하지 말라고 하므로, 왕이 그 말을 따랐으나 유돈식은 최충헌의 외조카이므로 용서를 받았다.
또 11월에 거란병이 다시 고주(高州: 지금의 함경남도 고원)·화주(和州: 지금의 함경남도 영흥)에 침구하므로 중군병마사 문한경(文漢卿), 가발병마사(加發兵馬使) 기윤위(奇允偉)와 함께 후군병마사로서 적을 막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