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국방 조직인 진관체제(鎭管體制)가 전국적으로 체계있게 짜여졌으나, 모든 지역에 군비를 갖춘 군사가 상주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전국 각지에 군정(軍丁)이 있었지만 징발되면 중앙에 번상하거나, 특수 지역에 부방하였다. 평상시에는 각종 군사가 비번인 상태로 거주지에서 자기 생업에 종사하였다. 따라서 전략상의 특수 지역이면서도 군비가 취약한 곳은 어쩔 수 없이 새로운 군비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와 같이 전략상 취약 지구인 제진(諸鎭)을 설정하여 항상 군사를 체류시킴으로써 불시의 위급에 대처하기 위해 만든 제도가 유방이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기록된 전국의 유방 일람표와 병력 규모를 도시해보면 〈표〉와 같다.
도명\진명 | 주진(主鎭) | 제진(諸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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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 (3) | 비인(2) · 남포(2) · 태안(2) |
경상도 | (4) | 동래(3) · 웅천(3) · 영해(2) · 김해(2) · 사천(2) · 영일(2) · 남해(1) · 거제(1) |
전라도 | (3) | 옥구(2) · 무장(2) · 부안(2) · 순천(2) · 흥양(1) · 진도(1) |
황해도 | 강령(2) · 장연(2) · 황주(1) · 수안(1) · 풍천(1) · 옹진(1) | |
강원도 | 강릉(1) · 삼척(1) | |
〈표〉 전국 유방 일람 | ||
*주: ( )안은 군사[旅]의 수. 1려(旅)는 약 125인. *자료: 『경국대전』 |
[표]에 의하면, 양계 지방과 경기, 개성부를 제외한 전국 각 도의 국방상 요지에는 4여(旅)로부터 1여의 군사가 상주하였다. 지역은 대체로 『세종실록』 지리지에 나타나는 영진(營鎭)과 거의 동일하다. 이들 지역에는 각 도의 정병 가운데 유방을 주임무로 하는 유방 정병이나 유방군이 4교대로 부방, 복무하였다. 영진군(營鎭軍)의 후신인 이들은 번상 정병보다 약간 뒤지는 존재였지만, 1보(保)를 지급받는 양인 군사였다.
한편 개성부의 경우에는 관내의 정병이 순라(巡邏: 도둑 · 화재 등을 예방하기 위해 돌아다님)을 통해 주로 치안 유지에 종사하였고, 양계는 정병뿐만 아니라 갑사(甲士)도 모두 거주지에 유방하였다. 즉, 영안도 · 평안도는 모든 지역이 곧 요새지였으므로 관내의 정병과 갑사는 중앙에 번상하지 않고 자기의 거주지를 지키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