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백실(伯實). 유자해(柳子諧)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종온(柳宗溫)이다. 아버지는 생원 유팽성(柳彭成)이며, 어머니는 완산 이씨(完山李氏)이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났고 시와 부(賦)를 잘 지었다.
1531년(중종 26) 진사시에 합격하고, 이어 정시 문과(庭試文科)에 급제하여 교서관정자·저작·박사를 지냈다. 내자시주부(內資寺主簿)를 거쳐 공조·호조의 좌랑을 지냈다. 1538년 무주현감이 되어서는 관리를 엄히 다스리고 백성들을 은혜로 무마하였으며, 향교를 개축하는 등의 치적을 남겼다.
그 뒤 예조정랑이 되고 해운판관을 지낸 뒤, 1544년 성균관직강을 거쳐 김제군수가 되었으나 재해조사에 차질이 생겨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효성이 뛰어나 3년 동안 죽을 먹으면서 시묘하였다.
이 일이 조정에 보고되어 장흥부사에 제수되었다. 평생을 검소하게 살아서 비단옷을 몸에 걸치지 않았고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으며, 검소를 가훈으로 삼아 자손들을 가르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