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로, 평장사 유광식(柳光植)의 아들이다.
1011년(현종 2) 4월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 1016년 4월에 어사잡단(御史雜端), 1019년 10월 사헌중승(司憲中丞), 1022년 10월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가 되고, 1025년 동지중추사'로서 태자빈객(太子賓客)을 겸하였다.
1029년 12월 서북면판병마사(西北面判兵馬事)로 왕명을 받아 흥화진(興化鎭) 서북쪽 40리에 있던 석성(石城)을 수리하여 위원진(威遠鎭)을 두고, 흥화진 북쪽에 있던 석보(石堡)를 수축하여 정융진(定戎鎭)을 두어 백성을 옮겨 살게 하였다. 이때 거란의 동경장군(東京將軍) 대연림(大延琳)이 난을 일으켜 흥료국(興遼國)을 세우고 고려에 구원을 청하였으나 현종이 응하지 않았다.
1030년 2월 중추사(中樞使), 1031년 5월 이부상서 참지정사(吏部尙書參知政事)가 되었고, 그 해 7월 덕종이 즉위하자 중군병마원수(中軍兵馬元帥)를 거쳐 10월 문하시랑 동내사문하평장사(門下侍郎同內史門下平章事)가 되었다.
1033년(덕종 2) 평장사로서 왕명으로 북경관성(北境關城:千里長城)을 쌓았는데, 그것은 서해안의 압록강 하구에서 동으로 위원등 13성을 거쳐 화주(和州)에 이르는 1,000여 리에 걸치는 것이었다. 1034년 장성축조의 공으로 추충척경공신(推忠拓境功臣)에 봉하여졌으며, 은청광록대부 상주국 태위 문하시랑평장사(銀靑光祿大夫上柱國太尉門下侍郎平章事)가 되었고, 1038년(정종 4) 4월 세상을 떠났다. 덕종의 묘정(廟廷)에 배향되었으며, 시호는 양의(襄懿)이다.